▲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LIG넥스원의 전시 홍보관. |
특히 검찰은 방산비리 수사 과정에서 국내 대형 방산업체들이 수백억 원대의 부당이득을 챙기는가 하면 이 중 상당액을 비자금으로 조성해 정·관계 로비 자금으로 사용한 정황을 잡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당국 일각에서는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LIG넥스원 비리 사건과 관련해 이른바 ‘넥스원 리스트’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검찰은 정·관계를 겨냥한 수백억대 초대형 방산비리 뇌관을 건드릴 수 있을까.
방위산업은 국가안보와 직결돼 있고 막대한 자금이 오고간다는 점에서 숱한 의혹과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받아 왔고, 정치권과 유착 의혹도 끊임없이 제기돼 왔던 게 사실이다. 새 정권이 들어설 때 과거 정권의 비자금을 들추기 위해 방산업체 비리를 파헤쳐 왔던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에도 방산비리 수사는 줄기차게 진행돼 왔다. 실제로 검찰은 지난해 삼성테크윈의 자주포 납품비리 사건을 비롯해 두산인프라코어의 고속정 납품비리 사건을 집중적으로 수사해 왔다.
또 올해 들어서는 휴니드, STX엔진, LIG넥스원 등 대형 방산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하는 등 방산비리를 대대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2008년 9월에는 국세청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 진행된 ‘FX 사업’과 관련해 무기중개상들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하는 등 방산비리를 조사하기도 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사정당국이 대대적으로 방산비리를 조사한 배경에는 방산업체나 무기중개업체 자체 비리를 겨냥하기보다 해당 업체들이 진보정권 10년 동안 권력 실세들에게 비자금이나 정치자금을 전달했는지 여부 등을 파헤치기 위한 복심이 투영돼 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진행된 사정당국의 방산비리 수사 결과 과거 정권이 개입된 구체적인 정황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정보당국의 한 관계자는 “과거 정권이든 현 정권이든 방산비리를 철저히 파헤칠 경우 먼지 안나는 업체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사정당국은 현 정부 출범 후 전개되고 있는 각종 방산비리 수사 과정에서 일부 대형 방산업체들이 수백억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뒤 과거 정권 실세들에게 로비 및 정치자금 명목으로 상당액을 건넨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방산비리 사건과 관련해 정치권 관계자들은 LIG넥스원 사건을 주목하고 있다. 검찰이 두 달 이상 LIG넥스원의 비리 사건을 집중적으로 수사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중앙지검 특수 3부는 지난 4월 7일 LIG넥스원과 4개 협력업체의 본사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것을 시작으로 두 달 이상 방산비리 의혹을 수사해왔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LIG넥스원이 협력업체와 짜고 부품원가와 완제품 단가를 부풀려 100억여 원이 넘는 부당이득을 취한 것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4개 협력업체가 2004년부터 최근까지 LIG넥스원에 납품한 40만 개 부품단가에 대해 분석작업을 한 결과 ‘원가 부풀리기’ 혐의를 포착했고, 이 과정에서 LIG넥스원이 개입한 정황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협력업체들은 해외부품 구매를 대행하면서 원가를 10~100%까지 부풀린 것으로 검찰 수사결과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LIG넥스원이 협력업체들의 ‘원가 부풀리기’를 묵인하거나 방조한 배경에는 방위사업청 납품단가를 올리기 위한 의도가 담겨져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부품단가가 올라갈 경우 완제품 단가도 인상돼 그만큼 LIG넥스원의 수익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검찰은 방산비리 수사 과정에서 LIG넥스원 등 대형 방산업체들이 부품단가 부풀리기 수법 등으로 챙긴 수백억대의 부당이득금 중 상당액을 비자금으로 조성해 정ㆍ관계 로비 자금 등으로 사용한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검찰은 LIG넥스원과 협력업체 대표들에 대한 마무리 조사가 끝나는 대로 법리검토 작업을 거쳐 사법처리 수위를 결정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검찰은 또 이번 사건을 기폭제로 대형 방산업체들의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해서도 철저히 파헤칠지 여부를 적극 검토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LIG넥스원의 전신인 넥스원퓨처의 대표였던 A 씨가 조사를 받던 중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검찰 수사는 급제동이 걸렸다. 일각에서는 ‘강압 수사’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A 씨는 참고인 신분에서 조사를 받았지만 피의자로 바뀔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었다”며 “방산 비리에 대한 자책감이 자살의 동기로 작용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A 씨가 남긴 유서에 검찰 수사를 비난하는 내용이 없었고, 별다른 자살 동기 또한 없었던 것으로 보아 검찰 수사에 대한 압박감이 원인이 된 게 아니냐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A 씨의 자살로 10여 일간 잠정 중단됐던 방산비리 수사는 검찰이 6월 21일 LIG넥스원 대표 이 아무개 씨를 소환 조사하면서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검찰은 이 씨를 상대로 LIG넥스원의 해외부품 구매를 대행하는 S 사 등 4개 협력업체와 거래하는 과정에서 방산장비 부품의 납품가격을 정상적으로 책정했는지 여부 및 비정상적 거래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는지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씨의 소환조사를 끝으로 방산비리 수사를 마무리하고 조만간 수사 결과를 발표할 방침이다. 다만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 방산비리 사건을 자체 비리사건으로 종결할지 아니면 대형 방산업체의 비자금 조성 및 정ㆍ관계 로비 사건으로 확전시킬지 여부를 놓고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당사자로 지목된 A 씨가 자살한 만큼 LIG넥스원의 자체 비리사건으로 마무리 짓자는 의견이 있는 반면 수사 과정에서 정황이 포착된 일부 대형 방산업체들의 비자금 조성 및 정·관계 로비 의혹 사건도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LIG넥스원 비리 사건을 수사한 이면에는 과거 정권 실세들을 겨냥한 측면도 없지 않았을 것”이라며 “과거 정권 실세들에 대한 로비 의혹을 규명할 핵심 당사자로 지목된 A 씨가 자살한 만큼 LIG넥스원 자체 비리 사건으로 마무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일부 민주당 관계자들은 A 씨가 참여정부 중후반기인 2004년 중반부터 2006년 말까지 넥스원퓨처 대표를 맡았다는 점에서 검찰 수사 칼끝은 궁극적으로 참여정부 실세들을 겨냥했을 것이란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특히 LIG넥스원이 참여정부 시절 밀월설이 나돌았던 LG그룹에서 분사한 LIG그룹 계열사라는 사실도 이러한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중앙지검 특수3부가 A 씨와 이 대표 등 LIG넥스원 전·현직 임원들에 대한 전방위 수사를 통해 LIG넥스원의 비자금 조성 의혹 및 정관계 로비 정황을 상당 부문 포착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검찰 수뇌부 주변에서는 과거 정권 실세들이 포함된 이른바 ‘넥스원 리스트’가 떠돌고 있는 실정”이라고 귀띔했다.
LIG넥스원의 방산비리 사건이 자체 비리로 마무리될지 아니면 방산업체 전체를 아우르는 비자금 조성 및 정·관계 로비 사건으로 확전될지 검찰 수사 향배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