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희 회장. | ||
최근 에버랜드가 여론의 도마 위에 다시 오른 것은 이 회사가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요건을 갖춘 것으로 나타나 이달 말까지 공정위에 지주회사 전환신고를 해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되었기 때문.
에버랜드는 에버랜드가 대주주로 있는 자회사 삼성생명보험에서 보유한 주식 평가액이 에버랜드 자산총액의 50%를 넘어 지주회사 요건을 갖추게 되었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및 자회사 기준에 따르면 자산총액 1천억원 이상인 회사 중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주식가액의 합계액이 자산총액의 50% 이상인 경우 지주회사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2003년 말 기준으로 자산총액이 3조1천7백49억원인 에버랜드가 19.34%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삼성생명보험의 주식 평가액이 1조7천4백2억원으로 자산총액 대비 54.8%를 차지해 지주회사 요건을 갖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공정위는 지난 9일 에버랜드가 2004년 4월 말까지 지주회사 전환신고를 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삼성은 왜 에버랜드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까.
이 문제의 발단은 에버랜드의 계열사 지분 내역에서 시작된다. 에버랜드의 지분형태를 요약하면 이재용 상무가 25.10% 지분을 보유해 최대주주로 있고, 이 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의 지분 19.34%를 보유하고 있다. 또 삼성생명은 2003년 12월31일 기준으로 삼성전자 주식 1천62만2천8백14주(지분율 6.99%)를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삼성전자의 주식값이 폭등한 데서 비롯된다. 삼성전자의 주가가 60만원대를 돌파하면서 삼성생명의 순자산 가치가 폭발적으로 상승, 에버랜드 자산총액의 50%를 넘어버린 것이다.
공정위가 삼성 에버랜드를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에 해당되는 것으로 확인함에 따라, 삼성은 지주회사로 전환하느냐 아니면 지주회사 요건에서 벗어나느냐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일단 삼성은 ‘삼성 에버랜드를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로 운영할 뜻이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 구조본 관계자는 “에버랜드가 대주주로 있는 자회사가 보유한 주식가격이 상승하면서 일부 지주회사 요건에 해당하게 된 것 같은데, 지주회사 전환을 고려하지 않고 있어 논의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 전체의 볼륨이 너무 커진데다, 무리하게 에버랜드 중심으로 소유 지배구조를 조정해 놓은 상태라 지분조정 문제는 간단치만은 않을 것으로 재계에서는 관측하고 있다.
특히 에버랜드가 대주주로 있는 삼성생명이 금융회사라는 점에서 법률상 금융지주회사 요건에 충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또다른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마저 배제하기 힘들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는 일반지주회사와 금융지주회사로 구분된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비금융 지주회사의 경우 금융 관련 기업을 자회사(출자 혹은 투자)로 거느릴 수 없도록 돼 있고, 금융지주회사의 경우 비금융 기업을 자회사로 거느리지 못하도록 돼 있다.
▲ 삼성 본관건물. | ||
금융지주회사에 대한 감독권을 갖고 있는 금감위 관계자는 “삼성이 지주회사 전환신고를 할 경우 검토해 볼 사항”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만약 특별한 지분 변동 없이 현 시점에서 에버랜드를 지주회사로 전환신고하면 삼성생명을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다는 점에서 금융지주회사법이 정하는 요건을 충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럴 경우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주식은 전량 처분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에버랜드-삼성생명보험-삼성전자로 라인업된 소유구조도가 원점에서부터 재검토될 수밖에 없다. 삼성생명보험을 축으로 한 금융지주회사와 삼성전자를 축으로하는 비금융 지주회사로 재편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
그러나 이 같은 재편을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난관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일단 금융계열사를 중심으로 금융지주회사를 출범시키기 위해서는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계열사의 지분 30%, 비상장의 경우 50%까지 소유해야 한다.
현재 삼성 금융계열사 가운데 상장사는 삼성증권과 삼성화재 2곳이고, 비상장사는 삼성생명과 삼성카드, 삼성투신운용 등 3곳이다. 상장사인 삼성증권 발행주식 6천6백83만여 주의 30%를 23일 종가 2만6천4백50원으로 사들이는 데는 약 6백억원이 소요되고, 8만원대에 이르는 삼성화재 지분 30%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1조원 이상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더욱이 비상장인 삼성생명과 삼성카드의 경우 장외거래 가격이 상장사보다 훨씬 높다는 점에서 수조원의 자금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에버랜드가 비금융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문제도 간단치 않다. 외국인 보유지분이 이미 60%를 넘어선 상황에서 삼성전자에 대한 지분을 정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현상황에서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게 삼성의 고민이다. 에버랜드를 금융지주회사로 하든, 비금융 지주회사로 하든 둘 중 하나는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버랜드를 통해 그룹지배구조의 핵심인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지배하고 있는 현재의 소유구조는 일대 조정이 불가피하다.
이달 말로 잡혀 있는 ‘지주회사 전환신고’ 마감시한을 앞두고 삼성이 어떤 카드를 들고 나올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