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일 ‘항명 파동’을 일으킨 채수창 전 서울 강북경찰서장이 감찰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청에 정복차림으로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서울강북경찰서 채수창 전 서장은 최근 발생한 양천경찰서 고문 사건과 관련해 6월 28일 기자회견을 열어 직속상관인 조현오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화살을 겨눴다. 검거점수 실적으로 보직인사를 하고 승진기준을 제시하는 등 오로지 검거에만 치중하도록 몰아가는 시스템이 결국 이번 사태를 유발시켰으며 근원적 책임이 있는 조 청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것이다.
초유의 항명사태와 관련해 강희락 경찰청장은 직무태만으로 낮은 평가를 받은 경찰서장의 ‘돌출행동’으로 판단, 채 전 서장을 직위해제하는 등 조기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경찰 안팎에서는 실적주의의 폐단 등 현행 실적평가 시스템에 대한 수정 및 전반적인 조직문화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등 파문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채 전 서장의 항명 이유를 둘러싼 갖가지 추측도 난무하고 있다. 경찰대 출신 간부들과 경찰 수뇌부 간의 전면전 양상으로 확전될 조짐이 일고 있는 ‘항명 파동’ 후폭풍 속으로 들어가 봤다.
채전 서장이 문제 삼은 것은 조 서울청장의 지나친 실적주의다. 채 전 서장은 “조 청장이 30등급제를 도입해 경찰들을 옥죄었으며 검거실적으로 평가되는 분위기가 경찰들로 하여금 양천경찰서 사태를 야기시켰다”며 사태의 책임을 조 청장에게 돌렸다.
일선 경찰서에서 발생한 사건의 화살이 경찰 수뇌부로 향하면서 경찰은 내부 분란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채 전 서장이 인사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직속상사의 퇴진을 요구하는 항명을 하게 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이번 사건은 채 전 서장이 실적만능주의에 기반한 현행 실적평가시스템에 대해 반기를 든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경찰 안팎에서는 채 전 서장의 항명 배경에는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이유들이 있을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 조현오 서울지방경찰청장. |
하지만 그간 경찰내부 기류를 감안하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경찰대 출신과 비경찰대 출신 간의 알력다툼설이다. 채 전 서장이 거론한 ‘과도한 실적주의’는 형식상 명분에 지나지 않고 항명의 내면에는 현 정부 출범 이후 경찰인사에서 약진한 이른바 ‘고려대-TK(대구 경북)라인’과 경찰조직내 파워엘리트로 부상한 경찰대 출신 간의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로 현 정부에서 경찰인사의 키워드는 ‘고려대-TK’였다. 강희락 경찰청장(고려대-경북 성주)을 비롯해 김석기 전 서울청장(고려대-영일), 주상용 전 서울청장(고려대-울진) 등 이른바 경찰 최고 노른자 요직을 ‘고려대-TK’ 인사가 차지했다. 이 때문에 승진 때마다 최고 ‘정점’ 입성에 실패했던 경찰대 출신들의 불만이 쌓여왔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1985년 이후 매년 120명씩 배출되는 경찰대 출신들은 대학졸업과 동시에 경위로 임명되는 등 다른 출신보다 고속승진을 이루며 조직 내에서 권력 이너서클을 형성해 왔다. 현재 50세 미만의 경대 출신 중 총경급만 70명이 넘는데 서울 일선경찰서 31곳 중 경찰대 출신 서장은 절반이 넘는 17명에 달한다. 특히 경찰대 1기 인사들은 입학 당시 전국석차 상위 0.5%내에 들어야 지원이 가능했던 전국의 최고 수재들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자존심과 엘리트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들은 다른 출신들보다 고속승진을 하며 파워를 과시해왔음에도 사법고시와 외무고시 출신의 이른바 ‘고려대-TK’ 인사에 밀려 최고 수뇌부 진출이 사실상 봉쇄되어 왔다는 얘기도 있다. 이번 사태가 외무고시 출신인 조 청장과 경찰대 1기생인 채 전 서장의 묵은 갈등이 폭발한 것이라는 얘기도 근본적으로 이러한 이유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채 전 서장의 행동은 경찰 수뇌부를 향한 경찰대 출신 간부들의 근본적인 갈등을 드러낸 것으로 경찰대 1기가 본격적인 용틀임을 시작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경찰조직 수뇌부를 장악해왔던 고려대-TK인사에 대한 일종의 쿠데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채 전 서장은 “경찰의 무엇부터 바뀌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결국 사람이 바뀌어야 조직이 바뀐다. 지휘부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채 전 서장이 ‘지휘부 교체’를 언급한 것으로 볼 때 이번 그의 도발은 지휘부 물갈이를 염두에 둔 포석이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이는 추후 경찰대 출신의 지휘부 장악을 예고하는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경찰조직 내에서 전대미문의 항명파문을 일으킨 채 전 서장과 양천서 고문사건으로 대기발령 중인 정은식 전 양천경찰서장은 경찰대 1기다. 경찰 관계자들은 채 전 서장이 7월로 예정된 경찰 인사를 앞두고 조 서울청장의 사퇴를 요구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경찰청 내부에서는 경찰청장 승진 인사를 놓고 유력 후보인 조 서울청장과 경찰대 출신 인사들 간에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기 진행돼 왔다. 이 과정에서 경찰대와 비경찰대 간 갈등도 깊어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조 서울청장은 이강덕 부산지방경찰청장과 윤재옥 경기지방청장과 함께 유력한 차기 경찰청장 후보로 거론돼 왔다. 특히 조 서울청장은 강희락 청장과 고대 3년 선후배 사이로 평소 호형호제하며 지내온 것으로 알려져 차기 청장 후보군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채 전 서장의 주장대로 조 서울청장이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날 경우 차기 청장은 이강덕 부산청장과 윤재옥 경기청장 등 경찰대 출신 2명이 거론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이와 관련 채 전 서장이 조 서울청장과 경쟁관계에 있는 경찰대 동기생들을 밀어주는 데 동원된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없지 않다. 경북 영일 출신인 이강덕 부산청장과 경남 합천 출신인 윤재옥 경기청장은 둘 다 영남권 인사로 조 서울청장이 사퇴할 경우 이들이 차기 경찰청장과 서울청장에 동반 입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채 전 서장의 행동을 경찰대 출신들의 포석 다지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윤재옥 경기청장이 치안정감에 오르는 등 경찰대 출신들이 요직을 독점하면서 경찰 내부에서는 경찰대 출신들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또 일선 형사들 사이에서도 경찰대 출신 팀장들이 반가운 인사는 아니었다. 현장 실무경험도 없는 새파란 경찰대 출신들이 졸업과 동시에 팀장으로 들어앉아 나이 많고 노련한 형사들을 어설프게 지휘하며 실적 경쟁만 부추기고 있다는 불만이었다.
이것이 경찰 하위 조직 일각에서 ‘경찰대 폐지론’을 부추긴 이유이기도 하다. 비경찰대 출신들을 중심으로 ‘경찰대 축소론’ 내지는 ‘경찰대 폐지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간 12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는 경찰대 출신이 큰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이에 채 전 서장이 총대를 메고 미리 포석을 다진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로 채 전 서장은 경찰대 출신이라는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양천서 서장과 형사과장이 경찰대 동문인데 경찰대 출신들이 승진에 눈이 멀었다고 하는 일부 언론 기사를 보고 참담했다. 경찰대 출신이 승진에 매달리는 비겁하고 치사한 조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재 경찰은 사면초가에 직면해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경찰비리와 아동성범죄 등 치안부재에 대한 국민적 비난에 이어 피의자 고문사건이 야기한 조직내 자중지란과 초유의 항명사태로 인해 경찰조직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대 출신과 비경찰대 출신 간의 전면전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경찰 조직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항명 파동’ 후폭풍이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 ‘최초’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윤재옥 경기청장(왼쪽)과 차기 청장으로 거론되는 이강덕 부산청장. |
윤재옥·이강덕 주목하라
1985년 불과 24세의 나이로 경위 계급장을 달며 경찰 내 신엘리트 계급으로 부상한 경찰대 1기생들 중에는 화려한 프로필을 자랑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단연 윤재옥 경기경찰청장이다. 윤 경기청장은 항상 ‘최초’ ‘1등’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 신화적인 인물이다. 경찰대를 수석 입학·졸업한 그는 경찰대 출신 1호 경감, 경정의 자리에 올랐다. 98년 경찰대 최초의 총경이 된 그는 2005년 경무관, 2006년 치안감을 거쳐 급기야 올 1월 경찰총수에 가장 근접한 치안정감의 자리에 올랐다.
현 치안감인 이강덕 부산청장도 빼놓을 수 없다. 경찰대 1기로 포항 출신인 이 청장은 경북지방경찰청 차장을 지낸 후 현 정권 출범 초기인 2008년 3월 청와대로 파견돼 공직기강팀장을 맡았고 1년 후인 작년 3월 치안감으로 승진하는 기염을 토했다. 현재 경찰 내 대구·경북 출신 가운데 그와 겨룰 만한 상대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유력한 서울청장으로 거론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경찰대 1기인 서천호 경찰청 경비국장은 지난 2006년 12월 총경에서 경무관으로 승진한 후 경남경찰청 차장, 경찰청 본청 기획정보심의관을 거쳐 서울경찰청 정보관리부장으로 근무했다. 2007년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폭행 사건 은폐의혹과 관련, 당시 이택순 경찰청장의 퇴진을 요구했다가 감봉 3개월의 경징계를 받은 황운하 서울경찰청 형사과장도 경찰대 1기 간판스타다.
충북 충주 출신의 조길형 충남청장도 경찰대 1기생으로 수원남부서장, 대통령 치안비서관실 행정관, 서울경찰청 경비1과장, 경기경찰청 1부장, 경찰청 경비국장 직대 등을 역임한 후 치안감을 달았다. 조 치안감과 경찰대 1기 동기인 백승엽 충남청 차장은 경찰청 인사과장, 서울서대문서장 등을 거쳐 경무관으로 승진했다. 또 대전청 차장으로 발령받은 전남 무안 출신의 정철수 경무관 역시 경찰대 1기로 전북장수서장, 서울영등포서장 등을 거쳐 지난해 경무관으로 승진했다.
충북청 수사과장 등을 지낸 이세민 충주서장과 서울청에서 정보 수사 경비 감사 등 주요보직을 거친 김성용 경남 거창서장, 경찰청 보안국 보안2과, 대전청 보안과장, 충북청 경비교통과장 등을 역임한 김창수 서울3기동대장, 송파서장 등을 거친 김호윤 경찰청 대변인, 서울경찰청 강경량 생활안전부장, 경찰청 홍보담당관 등을 역임한 박병국 북경 주재관, 박기선 경찰청 외사기획과장, 장전배 서울청 교통지도부장, 황성찬 서울청 정보관리부장도 약진하고 있는 경찰대 1기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