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보다 각계의 경제통 인사들의 국회 진출이 두드러진 데다, 특히 노동계 출신들의 입성이 많은 때문이다. 국회 내에서 경제계 출신 인사들간의 경제정책을 둔 보수-진보 대결이 불을 뿜을 전망이다. 특히 경제계 출신 인사들은 향후 국회에서 경제 관련 소위 활동이나 입법활동을 통해 경제계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경제관료 출신 인사들. 열린우리당 간판 아래 국회에 진출한 재경부 장관 출신만 해도 역대 최다인 3명이나 된다.
노무현 정부의 초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낸 김진표씨(수원 영통)가 대표적인 케이스. 현직 재경부 장관 출신이 총선에 출마하면 낙선한다는 징크스를 깬 김 전 부총리는 이번 선거에 블로그를 이용한 선거전을 치러 화제를 모았다. 젊은 층에서 인터넷 블로그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에 착안한 그는 ‘친절진표’(jinpyo.net)라는 아이디로 네이버에 블로그 서비스를 시작, 젊은 유권자 그룹에 적극적으로 다가섰다.
또 김대중 정부에서 재경부 장관을 지낸 진념씨(전북 군산)도 재선에 성공했고, 김영삼 정부 시절 재경부 장관을 지낸 홍재형 의원(충북 청주·상당)도 재선에 성공했다.
관료 출신으로는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을 지낸 이종구 전 금융감독원 감사(서울 강남갑)가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그는 부친인 이중재 전 의원에 이어 부자가 모두 지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기록을 세웠다.
재경부 인맥 못지않게 괄목할 만한 진출을 이뤄낸 그룹은 정보통신 분야 인맥. 이번 총선에서 정통부 인맥은 장관 출신 2명, 차관 1명, 산하 연구원 원장 출신 1명 등 4명이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진념 당선자는 재경부 장관이 되기 전 정통부 장관을 지냈고, 김대중 정부 말기에 정통부 장관을 지낸 안병엽씨도 열린우리당 간판으로 경기 화성에서 당선됐다.
차관급 인사로는 변재일 전 차관이 충북 청원에서 당선됐고 과학기술분야 직능대표로 비례대표 2번에 영입된 홍찬선 한국과학기술원 총장과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출신인 민주당의 김효석 의원(전남 담양·장성·곡성)도 재선에 성공했다.
경제 관료 인맥만을 놓고 보면 재경부 인맥과 정통부 인맥이 국회 내에 가장 막강한 군단을 형성하게 된 셈이다.
산업자원부 장관 출신들도 이번 선거에서 2명이나 당선됐다. 정덕구 전 장관과 신국환 전 장관은 모두 김대중 정부에서 산자부 장관을 지낸 케이스. 정 전 장관은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신 전 장관은 경북 문경·예천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금배지를 달았다.
신 전 장관의 경우 김대중 정부 시절의 관료 출신이라는 점, 또 열린우리당이 경북에서 당선자를 내지 못한 데다, 비례대표의 박찬석 전 경북대 총장을 6번에 배치한 것 말고는 이렇다 할 인물이 없었다는 점에서 향후 그의 거취가 주목되고 있기도 하다.
재계 출신으로는 이계안 전 현대캐피탈 회장(서울 동작을)과 김태환 금호아시아나그룹 상임고문(경북 구미을)이 처음으로 금배지를 달아 주목된다.
▲ (위 왼쪽부터)김진표 전 부총리, 진념 전 부총리, 안병엽 전 장관, (아래 왼쪽부터)신국환 전 장관, 이계안 전 회장 | ||
또 대우그룹 출신인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16대 국회에서 전국구를 지낸 뒤 대구 수성갑에 출마해 재선의원이 됐다.
이번 총선에서 국회 입성에 성공한 경제인 중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인물은 이계안씨. 그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지난 76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현대그룹 종합기획실, 경영전략팀을 거쳐 99년 현대자동차 사장에 오르는 등 고속 승진을 거듭한 현대차그룹의 브레인이었다. 그는 정몽준 의원과 대학 동창이자 현대중공업 입사 동기다.
또 다른 화제인물인 김태환 금호아시아나그룹 고문은 작고한 김윤환 전 한나라당 부총재의 친동생. 그는 금호그룹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아시아나항공 부사장, 금호쉘화학 사장을 지내는 등 성공적인 전문경영인의 길을 걸어왔다.
이번 선거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그는 구미을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무난히 당선됐다. 하지만 그는 선거과정에서 1억원에 가까운 세금을 체납했다는 사실 등이 알려지면서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삼성그룹 경영인 출신으로는 한행수씨가 열린우리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이름을 올렸지만 하위 순번에 배치돼 금배지를 다는 데는 실패했다.
LG그룹의 경우 오랫동안 그룹 고문 변호사를 지낸 진영씨가 서울 용산에서 당선됐다.
경제 학계 출신으로는 미국 라이스대 종신 교수인 채수찬씨가 전북 전주·덕진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와 당선됐다. 그는 지난 98년 환란 때부터 국제경제 분야 전문가로 이름을 알려온 경우.
또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인 윤건영씨가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KDI연구원을 거쳐 여의도연구소장으로 한나라당의 브레인으로 활약해온 유승민씨도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17대 국회에 진출했다.
이들과 함께 재계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인물은 민주노동당 의원들이다. 민주노동당은 이번에 10명을 당선시켜 원내 제3당으로 떠올랐다.
민주노동당의 가장 큰 후원자는 민주노총. 민주노총은 그간 재계 단체인 전경련이나 경총 등과 대척점에서 활동해왔다. 때문에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들이 기업의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연결된 정무, 재경, 산업, 건설교통, 노동 등 관련 소위에 배치될 경우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것으로 예측된다.
재계 관계자들은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이 선명경쟁에 나설 경우 경제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과거 대기업들이 대관업무를 위해 국회 출입자를 따로 뒀던 것은 널리 알려진 일. 그러나 경제계의 이런 기존의 맨투맨식 접근이 민주노동당 의원이 활동하고 있는 17대 국회에선 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