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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 월드컵에서 외신이 가장 지루했던 경기로 꼽는 파라과이 대 일본전. 사진제공=아디다스 | ||
월드컵 기간을 보내는 동안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다. 축구 기자들에게도 이는 마찬가지. 한국 경기나 일본 경기들은 아주 특별한 사안인 만큼, 그렇다손 쳐도 이상하리만치 2010남아공월드컵은 유독 재미가 없게 느껴진다. 뭔가 2% 부족한 듯한 묘한 느낌. 현장이든, TV 중계를 보든 심드렁하기는 마찬가지다. BBC스포츠가 최악의 경기로 꼽은 일본-파라과이의 16강전은 그 정점을 찍었다. 전 세계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라는 월드컵이 왜 이렇게 재미가 없을까. 전문가들의 입을 빌어 전혀 흥미롭지 않은 남아공월드컵의 현상을 짚어봤다.
‘선수비 후역습’ 너무하네
축구의 묘미는 뭐니뭐니해도 역시 득점포. 화끈하지 않아도 좋다. 일단 어떤 상황이든지 골만 많이 터지면 어지간한 부분은 양해를 구할 수 있다.
헌데 남아공 무대는 다르다. 지독히도 골이 터지지 않고 있다. 조별리그 1라운드가 끝났을 때 무득점 경기는 2차례, 1-0 스코어는 6회나 됐다. 그나마도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흐름이 팽팽하고 서로가 승리를 고집하기보단 ‘지지 않으려는’ 인상이 다분했다. 유럽의 스포츠 전문채널 스카이스포츠는 조 예선 1차전이 끝난 뒤 “역대 최악의 월드컵이 될 것 같다”는 짤막한 평가를 내놨고, 막바지를 향해 치닫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솔직히 월드컵에서 팬들이 가장 기대하는 장면은 약체가 강호를 꺾는 이변이다. 물론 객관적인 전력에 따라 열세인 팀들이 종종 강호들을 잡는 장면이 이번 월드컵에서도 연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평을 받는 까닭은 약체들이 강하게 엎치락뒤치락 되받아치는 대신, 지나치게 소극적인 플레이를 구사한 탓이다.
김학범 전 성남 일화 감독은 “실속이 있는 실리축구가 대세라고는 하지만 일본 등 일부 팀들은 지나치게 움츠러든 경향이 짙다”며 “강한 상대와 만났을 때 ‘선 수비-후 역습’ 전략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나 매번 카운터어택을 노리는 것은 미래지향적이지 못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사실 일본이 선전하고도 미움(?)을 받은 것도 여기에 있다. 외신들 상당수가 한국보다 열세라고 평가받는 일본이 카메룬, 덴마크를 꺾고 16강에 오르자 찬사를 보내는 한편, 한심하다는 눈초리를 보냈다. 90분 내내 디펜스에만 열중하다 한 번 찾은 찬스만 노리는 모습이 시종일관 이어진 때문이다. 세계 최강 중 하나로 꼽히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당당하게 맞선 허정무호가 1-4로 대패했음에도 호평을 받았던 상황과는 180도 다르다.
FIFA 심판위 ‘강 건너 불’
이쯤 되면 FIFA는 ‘눈을 뜬 장님’ 정도로 치부해도 될 듯싶다. 어처구니없는 오심이 남발되면서 대회 전체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스포츠계의 오랜 격언이 있지만 남아공 대회는 지나치다. 뻔히 보이는 반칙이나 파울 상황도, 명백한 골도 제대로 보지 못해 지나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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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르헨티나와 멕시코의 남아공월드컵 16강전에서 이탈리아의 로세티 주심이 양팀 선수들의 판정 항의에 팔을 들어 진정시키고 있다. AP/연합뉴스 | ||
심판 판정에 대한 FIFA의 생각도 놀라울 정도. 반성은커녕, 너무 긍정적이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자칭타칭 최고의 국제 판관으로 오랜 경력을 자랑하는 대한축구협회 권종철 심판위원장(직무대행)은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조별리그가 끝난 뒤 1차 결산회의를 가졌는데, FIFA 심판위원회는 ‘비교적 잘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이유도 황당하다. “결과적으로 오심으로 인해 골을 인정하더라도 스코어가 뒤집어질 만한 상황이 없었다”는 것. 이를테면 한국-아르헨티나전에서 아르헨티나의 세 번째 골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1-3으로 한국이 패하는 것에는 결과가 뒤바뀌지 않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조 3위 팀에게 상위 성적에 따라 16강 진출의 혜택을 주는 ‘와일드카드’ 제도가 폐지된 상황에 한 골이 갖는 의미는 대단할 수밖에 없다. 결국 FIFA는 조금도 뉘우치는 기색 없이 앞으로 앞으로만 외칠 태세다.
스타플레이어가 없다
어쩌면 ‘재미없는 월드컵’의 핵심 포인트가 될 법하다. 많은 득점을 올리는 선수들은 몇몇 눈에 띄지만 유럽 무대를 주름잡았던 스타들의 이름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세계 축구 전통의 강호로 군림하던 여러 유럽 국가들이 조별리그에서 일찌감치 짐을 꾸린 것과 궤를 함께한다.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대표적인 예. 특히 프랑스는 내분까지 겹쳐 자중지란을 겪었고, 결국 참담한 성적표를 안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나마 조별리그를 통과했던 잉글랜드와 포르투갈마저 맥없이 8강 진출에 실패해 더욱 큰 실망감을 안겼다.
이영진 대구FC 감독은 “스타가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잉글랜드 미드필더 스티븐 제라드가 전문 골잡이라서 인기가 많은 게 아니다. 그저 골을 많이 터뜨리는 선수와 경기를 재미있게 풀어줄 수 있는 스타는 엄연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월드컵 공인구 자블라니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드는 요소였다. 국가대표 수문장 정성룡은 “자블라니에 스핀을 걸도록 하면 휙 떠서 종잡을 수 없었다”고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골키퍼에게는 지옥이 될 수 있었다는 얘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적은 득점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4년 뒤 열릴 브라질월드컵. 똑같이 남반구에서 열린다. 최고의 열성 팬들을 보유한 지역이라지만 우려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