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의 부인을 목졸라 숨지게 한 후 토막내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이모 목사가 목회사역을 하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의 한 교회.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이 씨가 주장한 살해동기 는 한마디로 ‘가정불화’였다. 하지만 이 사건 이면에는 언론에 보도된 것 외에 또다른 의혹들이 숨겨져 있었다. 기자는 7월 6일 사건을 담당한 성남수정경찰서 형사1팀 우영철 경위를 만나 사건의 자세한 내막 및 수사진행과정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다. 경찰은 여지껏 보도된 내용은 100% 이 씨의 진술에 의한 것으로 특히 범행동기 및 자수경위 등과 관련해서는 가족들 및 주변인물들이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의 수사 추이에 따라 더욱 복잡한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는 토막살해 사건을 둘러싼 또 다른 쟁점과 의혹들을 들여다 봤다.
이씨는 살해동기에 대해 “부인이 평소 남편의 권위를 무시했다. 매번 모든 일을 일언반구 상의조차 없이 멋대로 처리했으며 성도들 앞에서도 나를 심하게 무시했다. 1985년 상의도 없이 낙태수술을 해 부부간에 신뢰가 깨지기 시작했는데 5년 전 자궁근종수술을 받은 이후로는 잠자리조차 거부했다. 이런 것들이 쌓이다 보니 부인에 대한 미운 감정이 내재되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사건은 2009년 3월 5일 자정 무렵 발생했다. 이 씨는 “화장을 지우고 있는 부인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구역질이 나도록 증오스러웠다”고 털어놨다. 결국 이 씨는 뒤에서 부인의 목을 졸랐다. 그리고 얼마 후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이 씨는 사체를 식구들도 알지 못하는 자택 내 후미진 곳에 17일 동안이나 방치했다. 하지만 이후 사체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범행이 발각될 것이 두려웠던 이 씨는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사체를 여덟 토막 냈다. 그리고 몸통과 허벅지 부분을 집 담벼락 밑에 파묻고 시멘트를 발라 은닉했다. 또 얼굴을 포함한 나머지 부분은 교회 승합차를 이용해 팔당호에 유기했다.
여기까지는 이 씨가 밝힌 자신의 범행 개요다. 그는 “목회자로서 회개하는 심정으로 자수하게 됐다”고 자수동기를 밝혔다.
하지만 유가족 및 일부 교회 관계자들은 “이 씨는 남편을 무시하고 제 멋대로 행동해온 부인에게 잘못이 있는 것처럼 진술했지만 이 씨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사실과 다르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실제로 7월 6일 오후부터 밤 11시까지 진행된 참고인 조사를 마치고 나온 측근들은 거의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특히 사건의 발단이 최 씨에게 있는 듯 보도된 것에 대해서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한 유가족은 “엉터리로 보도됐다. 사실이 왜곡되고 있어 참담하다”고 말했다. 이 씨의 딸은 “말할 힘도 없다. 지금 내 정신이 아니다”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또 다른 측근은 “이쯤에서 그냥 묻히길 바란다. 진실이 무엇이든 가족들에게는 엄청난 상처가 될 것”이라며 기사화를 만류하기도 했다.
▲ 이 씨는 부인의 사체를 집 담벼락 밑에 파묻고 시멘트를 발라 은닉했다. 유장훈 기자 |
이들은 장시간에 걸친 참고인 조사에서 “평소 사모님이 목사를 굉장히 존경했고 내조를 잘했다. 영세한 개척교회가 자리잡는 과정에도 사모님의 역할이 컸다. 가족들 앞에서는 물론이고 성도들 앞에서도 항상 ‘우리 목사님’이라 깍듯이 부르며 존대했다”고 진술했다. 특히 한 측근은 “25년 전 낙태사건 및 잠자리 거부 등의 이유로 그런 끔찍한 짓을 했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언론에 나온 살해동기는 사실과 다르며 숨겨진 진실이 있다”고 귀띔했다.
기자가 확인한 결과 일부에서 제기한 ‘진실’은 놀랍게도 이 씨의 불륜행각이었다. 한 측근은 “이 목사는 교회 여러 성도들에게 끊임없이 추파를 던졌으며 그중 2명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 심지어 한 성도는 남편과 같이 이 목사를 찾아가 더 이상 이상한 문자를 보내지 말라는 ‘각서’까지 받고 교회를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목사는 그 후에도 다른 성도와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했다. 힘들게 개척한 교회를 살리고자 했던 사모님은 무릎까지 꿇고 남편의 마음을 돌리려고 했고 신앙으로 이겨내려 했지만 목사의 불륜행각은 계속됐다. 이로 인해 사모님이 마음고생을 많이 했고 부부간 다툼도 잦았다”고 전했다.
기자는 경찰을 통해서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 씨의 불륜행각은 그가 1년 4개월이나 지난 시점에서 자수하게 된 경위와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경찰은 판단하고 있다. 일부 측근들은 “이 씨는 자신에게 수사망이 좁혀오는 것과 주변인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는 것, 또 불륜사실 발각 등에 따른 심적 압박에 어쩔 수 없이 ‘목회자로서의 양심’을 내세워 자수를 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 경위 역시 이 씨에 대한 인지수사가 진행되고 있었음을 인정했다. “사실 이 씨가 ‘실종’이 아닌 ‘가출’로 신고했다는 점부터 이상했다. 보통 실종과 달리 ‘가출’은 자발적인 것으로 여겨져 범죄 연루 가능성이 배제된다. 따라서 당시 가출신고를 받은 경찰이 할 수 있는 것은 가출동기를 조사하는 일이었다. 압수수색하거나 사체를 찾기 위해 집을 파헤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없었고 더구나 목사인 이 씨를 섣불리 의심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이 사건을 계속 주시하고 있던 실종팀에서 수차례 이 씨를 위로순방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제보를 듣게 됐다. ‘목사에게 여자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씨에게 혐의점이 있다고 판단한 수사팀은 통신수사를 의뢰하고 금융계좌를 추적하는 등 수사에 들어갔다. 또 뭔가 눈치채고 있었던 일부 측근들도 ‘잘못을 저질렀으면 털어놓고 회개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이 씨를 계속 추궁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주변인에 대한 탐문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수사망이 좁혀오는 것에 심한 심적 압박을 느낀 이 씨가 결국 어쩔 수 없이 ‘자수’를 선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경찰은 범행동기 및 공범 유무와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특히 불륜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사건은 전혀 다른 국면으로 치닫게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 씨가 ‘부인 탓’으로 돌린 범행동기는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우 경위 역시 “최 씨가 목사의 불륜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은 범행의 성격 및 우발·계획 범행 및 공범 여부를 밝히는 데 상당히 중요하다. 어느 여자가 남편의 불륜사실을 알고 가만있겠나. 이것이 직접적인 살해동기로 작용했을 수 있다”며 추가 조사 계획을 내비췄다.
하지만 경찰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피의자와 피해자가 부부라는 사실이었다. 참고인 조사를 받아야 했던 자녀와 양가 가족들은 물론이고 목사 부부를 잘 알고 있는 교회 성도들이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에 경찰은 “아버지를 범인으로 어머니를 피해자로 둔 자녀들의 심정은 어떻겠나. 어떤 경우라도 유족들을 힘들게 하면 안된다는 심정으로 조사에 임하고 있지만 애로가 많다. 사실왜곡이나 유족의 정서에 반하지 않도록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겠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이 씨는 범행 후에도 검거 직전까지 버젓이 교회에서 설교를 해왔던 것으로 드러나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 씨의 한 측근은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체중이 6~7㎏ 이상 빠졌더라. 말도 안하고 울기만 하신다”고 전했다. 조사를 받으면서도 이 씨는 “큰 잘못을 했다. 범행 후 설교하는데 너무 힘들었다”며 많은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이 씨 별명은 맥가이버…개도 잘 잡았다”
이사건이 더욱 큰 충격을 준 이유는 이 씨가 25년 이상 사역을 해온 목사라는 사실 때문이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우영철 경위(51)는 “22년 경찰생활 중 온갖 끔찍한 사건을 다뤄봤지만 이번 사건은 피의자가 사회지도자인 성직자라는 점에서 정말 충격적이고 통탄스럽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렇다면 이 씨는 대체 어떤 인물일까. 이 씨는 지역사회에서 그저 성실하고 덕망 있는 목사였을 뿐 별다른 특징이 없었다. 이웃들도 그를 그저 ‘선하게 생기고 평범한 사람’ ‘얌전한 개척교회 목사’로만 기억했다. 선한 외모에 내성적인 성격인 그는 소위 말하는 ‘범죄형’ 인물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우 경위는 그간의 경험으로 미뤄볼 때 엽기·잔혹 범죄 피의자 중에는 상식에 반하는 외형적 특성을 지닌 인물이 상당수라고 전했다. 선한 얼굴과 얌전한 성격, 또 왜소한 체형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상상도 못할 ‘반전’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였다.
이 씨 역시 겉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이 씨는 칼을 잘 다루고 집안에서 직접 개를 잡아먹을 만큼 숨겨진 잔혹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우 경위는 “이 씨가 평소 잔인하게 개를 잘 잡았다고 한다. 도살업자도 아닌 그가 집에서 키우던 개를 직접 잡아 껍데기를 벗기고 뼈와 내장을 바른다는 건 기술적으로도 그렇고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못한다. 형사인 나도 개는 못 잡는다. 그것도 가족처럼 키우던 개를…. 또 이 씨는 ‘이 맥가이버’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각종 장비나 도구들을 잘 다뤘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목사인 이 씨가 부엌칼로 혼자 어떻게 사체를 여덟 토막 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드러나는 정황상 그는 또 다른 잔혹성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특히 우 경위는 이 씨가 겉으로는 성실한 성직자였지만 한편으로는 철저히 자신을 감추는 이중성을 지닌 인물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부인이 집을 나가버렸다’고 가출신고를 한 점은 꺼림칙하다. 성인의 가출은 바람이 났거나 금전문제 등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의도가 강했다고 본다. 또 살해 후 사체를 17일간이나 집 한켠에 방치한 것, 미리 준비한 비닐봉지에 사체를 나눠담고 일부는 집에, 일부는 다른 곳에 유기한 것, 그간 계속 목회활동을 한 점과 1년 4개월이나 지나서 자수했다는 점 등을 종합해볼 때 그는 이중적인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현장 분위기와 주민 반응
“아내 돌아오길 그렇게 기도했던 사람이…”
기자는 7월 6일 이 씨가 부인을 살해한 사건현장을 찾았다. 태평동 한 주택가에 자리잡은 이 씨의 교회는 2층짜리 단독주택으로 2층과 별채는 교회로, 1층은 이 씨 가족이 거주하는 형태였다. 커다란 목판에 성경구절이 걸려있는 교회는 끔찍한 살인사건과 도저히 어울리지 않았다. ‘사모님’의 행방을 궁금해하던 주민들은 ‘선한 목자’였던 이 씨의 엽기행각에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6일 이 씨의 교회 앞에는 수많은 주민들이 모여 수군거리고 있었다. 인근 초등학생들도 저마다 모여서 “선생님들이 말해줘서 모르는 애들이 없다”고 한마디씩 했다. 오후에는 성남시 유기견 센터에서 출동해 이 씨 집에 있는 개 한 마리를 데려갔다. 한 주민은 “아휴~ 저 개 말고 큰 개들도 있었는데… 좋은 주인 만나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이 씨가 사체를 유기한 집 담벼락 밑 구덩이 주변에는 시멘트 조각들이 흐트러져 있는 등 참혹했던 사체발굴 흔적이 남아있었다. 주민들은 구덩이 주변을 기웃거리며 직접 땅을 파고 감쪽같이 사체를 유기했다는 사실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교회 모임방에 모여있던 성도들은 “제발 그만하고 가라”며 소리를 질렀고, 급기야 집안에 있던 이 씨의 아들이 나와 “뭐하는 거냐. 사진 찍지 말라”며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대화를 시도했지만 아들은 “말 안해요. 할 말 없어요”라며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 주민은 “겉으로 볼 때 흠잡을 데 없는 분이었는데 너무 충격적이다. 이 사건이 기독교에 대한 지탄으로 이어질까 염려스럽다. 무엇보다 남은 두 자녀들을 생각해서라도 묻어뒀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평소 온화하고 덕망 있는 성품으로 평판이 좋았던 최 씨가 사라졌다는 소식은 주민들은 물론 교회 성도들에게도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고 한다. 한 주민은 “언제부턴가 동네에는 별별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심지어 기도원이나 정신병원에 감금됐다는 얘기도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주민들 중 이 씨를 의심한 사람은 드물었다. 주민들은 “태평동뿐 아니라 옆동네까지 전단지를 붙이고 그랬다. 자녀들에게는 기도하면 엄마가 무사히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수시로 대문밖을 나와 서성거리거나 ‘꼭 돌아올 수 있게 기도해달라’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얼마나 안타까워했는데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입에 담지 못할 짓을 해놓고 어떻게 성도들 앞에서 ‘하나님’을 들먹이며 설교를 해왔는지 소름이 끼친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 주민들은 성직자 범죄의 경우 사회적 파장을 감안해 더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