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 관계자들이 9일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전격 압수수색, 물품을 들고 차량에 오르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사정당국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의 또 다른 주역으로 지목받고 있는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을 비롯해 이른바 비선라인까지 수사 대상이 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검찰 일각에선 드러난 인사들 외에 그 ‘윗선’ 내지는 일부 정권 실세들까지 수사 대상에 포함될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검찰 관계자들은 ‘검사 스폰서’ 파문으로 땅에 떨어진 검찰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권력형 게이트’ 형태를 갖춰가고 있는 이번 사건을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과연 살아있는 권력을 상대로 맞짱 승부를 펼칠 수 있을까.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 의지는 강경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지 하루 만에 구성된(7월 5일) 특별수사팀이 9일 국무총리실을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한 대목에서 검찰의 초강경 의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검찰이 국가정보원이나 국세청 등 주요 권력기관을 압수수색한 전례는 있었지만 내각을 총괄하는 총리실을 압수수색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수사 초기 ‘속도전’ 입장을 밝혔던 검찰이 ‘지구전’으로 전환하는 동시에 수사팀을 보강한 것도 심상치 않다. 실제로 검찰은 수사 착수 당시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해 마무리 짓겠다”는 입장을 보인 바 있다. 하지만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연일 사건과 관련된 새로운 의혹들이 불거지자 사건 관계자들을 재소환하는 등 속도를 늦추면서 신중 모드로 선회하고 있는 분위기다. 사정당국 관계자들은 검찰의 수사 패턴 변화는 이 전 지원관의 ‘윗선’ 내지는 청와대 등 정권 실세를 겨냥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 성격이 짙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이 전 지원관 소환 이전 주변 인물들을 잇따라 소환하는 등 ‘대어’ 사냥을 위해 치밀한 사전 정지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먼저 검찰은 13일 NS한마음 전 대표 김종익 씨 사찰을 주도한 지원관실 점검1팀장 김 아무개 씨와 조사관 원 아무개 씨를 잇따라 소환 조사했다. 두 사람은 이 전 지원관과 함께 이명박 대통령을 비방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는 이유 등으로 김 씨를 내사하고 그를 서울 동작경찰서에 수사 의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 두 사람을 상대로 김 씨에 대한 내사를 시작한 경위 및 당시 국민은행 부행장이었던 남 아무개 씨와 노무팀장이었던 원 아무개 씨를 만나 김 씨의 대표이사직 사임과 회사 지분 매도를 강요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특히 당시 김 씨에 대한 사찰이 누구의 결정이었고, 사찰 내용이 어느 선까지 보고됐는지 여부 등 보고체계 및 지휘라인에 대한 수사에 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검찰은 이번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이 전 지원관을 주초 소환해 김 씨 사찰 경위와 경찰 수사에 실제로 압력을 행사했는지 여부와 보고 라인 및 비선라인 실체 등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검찰은 사실관계가 어느 정도 확인된 만큼 이 전 지원관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검찰은 이 전 지원관을 비롯해 실무자와 주변 인물들을 대상으로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한 기초 사실을 파악한 결과 비선라인의 실체 및 일부 정권 실세가 개입한 정황을 어느 정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 이인규 전 지원관. MBC 캡처 |
민주당 조영택 원내대변인은 12일 국회 브리핑을 통해 “김종익 씨 사건 이외에도 민간인 사찰 의혹 피해 제보가 무수히 들어오고 있다”며 구체적 상황이 담긴 추가 피해 사례를 공개하기도 했다. 조 원내대변인이 공개한 사례 중에는 김 씨의 경우처럼 공직윤리지원관실로부터 사찰을 받고 경찰에 넘겨져 구속된 사례도 있었다.
‘영포라인’의 전횡 의혹도 속속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전병헌 정책위의장은 11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영포라인’의 청와대 모 비서관이 한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국문화콘텐츠산업협회에 대한 수십억 원의 후원금 요구가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해 또 다른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문화콘텐츠산업협회는 선진국민연대 출신의 유선기 선진국민정책연구원 이사장이 부회장으로 있는 곳이다. 전 의장은 이날 “모 비서관이 모 그룹에 수십억 원을 요구해 해당사가 수억 원을 냈다는 신빙성 있는 제보를 받고 확인 중”이라며 “이 한 건만이 아니라 여러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새로운 의혹과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만큼 검찰은 불거진 각종 의혹에 대해 전 방위적인 수사를 전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검찰 관계자들은 ‘검사 스폰서’ 파문으로 땅에 떨어진 검찰의 위상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사건을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가뜩이나 이번 사건과 관련해 야권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국정조사 내지는 특검 문제가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 수사가 미진할 경우 더 큰 역풍에 시달릴 수 있다는 우려감도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검찰 일각에선 이번 사건과 관련해 드러난 인사들 외에 일부 정권 실세 등 거물급이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게 될 것이란 섣부른 관측마저 제기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 ‘몸통’으로 지목하고 있는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외에 현 여권 실세인 A 씨와 B 씨 등 거물급이 이번 사건에 개입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 관계자들은 살아있는 권력을 상대로 한 검찰 수사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야당이 주장하고 있는 민간인 추가 사찰 정황이 드러나거나 ‘비선라인’의 실체가 드러날 경우 수사 확대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경우에도 비선라인의 윗선 내지는 몸통을 들춰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의 주역으로 지목받고 있는 이 지원관이나 이 전 비서관 등이 자신들이 모든 것을 안고 가겠다는 각오로 입을 봉할 경우 비선라인 실체나 윗선 개입의혹을 해결하지 못한 채 수사가 종결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수사 착수 초기에 검찰이 이번 사건과 관련한 수사 범위를 ‘총리실이 수사를 의뢰한 부분’으로 한정한 것도 ‘용두사미’ 수사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검사 스폰서’ 파문으로 검찰조직 전체가 흔들리면서 결국 ‘특검’ 수사를 받게되는 치욕과 불명예를 안고 있는 검찰이 ‘권력형 게이트’ 형태를 띠고 있는 이번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국민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