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 남원 국립민속국악원에서 아프리카 한국문화 페스티벌에 참가했다가 말라리아에 감염돼 사망한 고 고은주 단원의 영결식이 열렸다. 이날 참석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고인에게 대통령 표창을 수여했다. 연합뉴스 |
6월 23일 사망한 김수연 씨는 남원국립민속국악원(국악원) 최연소 무용수였다. 어린 시절부터 각종 무용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으로 입상하는 등 재원으로 꼽혔다. 김 씨가 올해 아프리카 한국문화축제에 참여한 것은 그의 첫 해외공연이었다. 그는 19일 동안의 여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고은주 씨는 남원국립민속국악원 소속으로 국내 중요무형문화재 진주검무 전수자다. 이번 아프리카 문화축제에 참가해 한국문화를 알리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이 아프리카 공연이 두 무용수의 마지막 여정이 되고 말았다. 해외 순회 공연 중에 발병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말라리아 감염으로 귀국 후 두 사람 모두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이런 불행한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질병안전관리본부에서는 김수연 씨 사망 직후(6월 24일) 역학조사결과를 발표하며 무용단원들 전체가 현지에 적합하지 않은 항 말라리아 약을 투약한 점과 말라리아 위험지역에서 야외 저녁식사가 있었던 점을 감염의 원인으로 추정했다.
취재결과 두 사람이 투약한 항 말라리아 약의 경우 국악원 측에서 일괄적으로 처방한 약이었다. 이에 대해 국악원 측은 “약품을 처방한 의료전문가의 실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담당의사는 “나이지리아와 라오스에 방문할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나이지리아에서 있었던 야외에서의 저녁 식사 역시 논란이 일고 있는데 이 자리에 대한 진술도 엇갈리고 있다. 현지에서 일정을 관리한 것은 문화체육관광부 해외홍보원 쪽이지만 취재결과 이날 밤의 일에 대해 함구하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고 대답을 회피했다. 7월 15일 기자와 통화한 나이지리아 대사관 관계자는 “환영 자리가 있긴 했지만 야외는 아니었다”고 일축한 후 전화를 끊었다.
당시 동행했던 단원들의 진술도 엇갈렸다. 7월 15일 기자와 통화한 한 단원은 “야외회식 같은 것은 없었다. 팀 별로 각자 자유롭게 술자리를 가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외출은 주최 측 허락 없이는 할 수 없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른 단원 역시 “현지상황이 열악해 단체로 뭔가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공연단의 가이드를 맡았던 A 여행사 관계자는 “실내외 할 것 없이 모기가 많아 도저히 머물 수가 없어 이튿날 밤에는 급히 새벽 비행기를 타고 이집트로 이동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질병안전관리본부의 역학조사에서 드러난 부분에 대해 언급하자 “민감한 부분이다. 나이지리아에서의 일정은 물어보지 말아 달라”며 대답을 회피했다.
이처럼 감염 장소와 시점 등 원인을 둘러싼 관계자들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감염 증상 발현 이후의 책임소재도 불분명한 상태다.
7월 14일 기자와 통화한 고은주 씨의 부모님은 “딸의 발열이 이집트에서부터 시작됐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귀가 조치를 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동행한 단원들과 국립국악원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김수연 씨는 마지막 이집트 공연 때(6월 3일)부터 발열증세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국악원에서는 단순한 감기로 판단하고 감기약을 줬고, 열이 순간적으로 내려가 단원들은 말라리아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귀국 비행기에서 발열은 다시 시작됐고 고은주 씨 역시 발열 증상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악원 측은 귀국 후 “열이 있는 사람은 병원에 가보라”고 권유한 후 해산했다.
남원에 있는 각자의 자취방으로 돌아온 후 두 사람의 발열은 더욱 심해졌다. 다음날 상황이 더 나빠지자 남원으로 두 사람의 부모님이 찾아왔고, 함께 인근 병원을 찾고 나서야 말라리아 발병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
문제는 다음부터 일어났다. 의사의 권고에 따라 두 사람은 인근 원광대학병원으로 급히 입원수속을 밟았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이 병원에서 의료진의 잘못된 치료 때문에 더 큰 병을 얻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 씨의 아버지는 “고열에 목마름을 호소하니 의사가 물을 줬다. 이후 상황이 더 악화되며 호흡곤란까지 왔다”고 주장했다. 말라리아에 감염됐을 경우 합병증을 우려해 물은 물론 음식물을 섭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의료진의 실수였다는 것이다.
가족들은 김 씨와 고 씨를 데리고 급히 남원에서 서울아산병원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중 국악원 쪽에 입원수속과 관련해 도움을 요청했다. 국악원 측은 “조치를 해놨으니 안심하라”는 답변을 했지만 아산병원에 도착했을 때 접수된 방은 즉시 입원할 수 있는 중환자실이 아닌 입원실이었다. 두 사람의 가족들은 망연자실한 채 입원실 배정을 받기 위해 응급실에서 반나절을 대기해야 했다. 결국 빈 방은 생기지 않았고, 극심한 호흡곤란을 겪는 두 사람을 데리고 가족들은 다시 병원을 찾아 헤맸다.
다행히 서울대학교 병원 중환자실에 자리가 있었지만 한 명의 환자밖에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김 씨의 부모님은 상태가 훨씬 심각했던 고 씨에게 병실을 양보하고 후에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옮겼다. 그러나 숨을 가빠하던 김 씨는 인공호흡기 치료 후에도 호흡곤란을 호소하다 6월 23일 숨지고 말았다. 의사는 “도착했을 땐 이미 폐렴이 악화돼 인공호흡 치료에도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대학교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고 씨 역시 7월 5일 호흡곤란으로 숨을 거뒀다.
두 사람의 부모님은 “빨리 조치를 취할 수 있게끔 도움을 줬더라면 죽음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며 오열했다. 현재 행사 주최 측인 문광부에서는 두 고인의 죽음을 국가를 위해 헌신하다 순직한 것으로 보고 적합한 보상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악원 측 역시 여행자 보험과 국민연금에 관한 보상절차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족들은 “사인 규명은 뒤로한 채 생색내기식 ‘보상’만 운운하고 있다”며 관계당국과 국악원 측의 탁상행정에 울분을 토하고 있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