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너무 무서운 얘기만 들어서 그런지 지금 그이의 모습을 보면 꼭 보너스 받은 기분이 들어요.”
뇌경색으로 쓰러져 대수술을 받고 나온 김동재 코치는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긴 지 3일 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문병 온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간간이 움직임도 보이지만 아직 상대방을 인식할 단계는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기자가 이런저런 말을 건네며 쾌유를 빌 때 그의 눈빛은 분명 상대를 알아보는 듯했다. 김 코치의 아내 이은숙 씨는 “처음엔 잠만 잤다. 내 눈을 똑바로 마주보지도 못했었다”면서 “그런데 이젠 사람들이 오면 고개를 돌리고 반응을 보인다. 이젠 휠체어를 타고 산보 나갈 정도가 됐다. 정말 상대를 알아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곧 일어날 거란 희망을 가지고 응원하고 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김 코치는 선수 시절 명품 수비로 이름을 날렸다. 96년 LG에서 은퇴한 이후 삼성, 한화, SK 코치를 거쳐 지난 2008년부터 KIA 수비코치를 맡아왔다. 그는 불안했던 KIA 수비를 탄탄하게 다져나갔다. 김 코치가 지난해 KIA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숨은 공신으로 꼽히는 이유다. 야수의 실책은 승패를 좌우한다. 단 한 번의 실수가 경기 흐름을 좌우하는 만큼 수비 코치는 매 순간 긴장할 수밖에 없다. 김 코치의 아내는 코치란 직업을 갖고 있는 남편의 생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아프단 말을 절대 안 하는 사람이다. 피곤해 보이긴 했지만 그렇게 힘든지는 몰랐다. 우승 이후 받은 압박감이 스트레스로 다가온 것 같다. 좋은 남편, 좋은 아빠, 좋은 코치가 되려다보니 남들보다 세 배로 더 힘들었을 것이다.”
LG 염경엽 수비코치 역시 스트레스로 인해 두 번이나 쓰러진 경험이 있다.
“브룸바를 미국에서 현대로 데려올 때였다. 새벽 4시에 나와 2~3일씩 이동하면서 용병 선수들을 찾아다녔다. 브룸바는 당시 평범한 선수였지만 선구안이 뛰어났고 신체적 조건이 좋았다. 그의 부인이 반대해 애를 먹었는데 끈질긴 설득 끝에 함께 한국으로 올 수 있었다. 몸이 너무 지쳐있어서 그랬는지 아침에 일어나니 컨디션이 너무 안 좋더라. 몸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에 사우나에 갔는데 순간적으로 참을 수 없는 졸음이 찾아왔다. 정신을 차리려 했지만 몸은 이미 고꾸라져 있었다. 당시 사우나에 나뿐이었기 때문에 더 위험한 상황이었다. 나중에 의사 말로는 스트레스 때문에 뇌에 산소 공급이 순간적으로 중단됐었다고 하더라.”
너무 무리한 탓일까. 염 코치는 지난해 6월 또 한 차례 쓰러지고 만다. “사실 몸에서 계속 신호를 보내왔다. 그러나 쉴 수가 없었다. 매 경기 중요한 순간이 거듭됐기 때문이다. 결국 뇌에 산소 공급이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바람에 또 쓰러지고 말았다.” 선수들 마음을 움직이고 적절한 훈련을 시켜 팀의 좋은 성적을 이끌어내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힘든 내색을 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는 “수비코치만큼 매력 있는 직업도 없다”며 이내 웃음을 보인다. 타격이나 마운드 운영은 개인적인 능력이 중요시되지만, 수비 부분은 열심히 노력하면 80% 이상 훈련 성과를 나타내기 때문이란다. 염 코치는 “하고픈 일을 원 없이 할 수 있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코치들 모두 선수가 발전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보람으로 살아간다”는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선수들의 몸과 맘을 치료해 그라운드 위에서 이들이 제 실력을 발휘하도록 만드는 ‘마법의 손’ 한화 조대현 컨디셔닝 코치를 만났다. 선수들의 컨디션은 기술력, 전력만큼이나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다. 좋은 실력을 가진 선수도 그날 몸 상태가 어떠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성적을 내곤 한다. 물리치료를 전공하고 병원에서 환자들의 재활을 돕던 조 코치는 어느 날, 평소 좋아하던 야구 선수들의 몸을 돌봐주는 컨디셔닝 코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 체육대학원에 들어가 운동역학을 전공하면서 본격적인 코치 수업에 들어갔고 한화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그때쯤이다.
조 코치는 “13년간 한화 선수들과 함께하다 보니 이젠 걸음걸이만 봐도 선수들이 전날 뭘하고 지냈는지까지 알 수 있게 됐다”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근력 보강, 재활만이 아니다. 그는 선수들의 심리 치료사 역할도 병행한다. 선수들은 조 코치에게 개인 사생활 문제부터 성적에 대한 압박까지 자신의 다양한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을 통해 차근차근 해결해나간다. 덕분에 선수들의 말 못할 개인 사정까지 다 알게 됐다고. 그러나 치료 중 들은 선수들의 고민은 절대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단다. 선수들과의 무언의 약속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로마 향이 폴폴 풍기는 트레이너 실은 선수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비밀의 방’이 돼버렸다. 조 코치는 “어떻게 하면 선수들이 더 좋은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을지 매 순간 고민을 거듭한다. 경기 때뿐만 아니라 시합 전후에도 선수들을 수시로 체크해야 하기 때문에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다. 내 몸보다 선수들의 몸을 더 신경 쓰게 되는 건 당연하다”라며 미소를 보인다.
조 코치는 WBC 대표팀에 합류해 국가대표 선수들의 컨디션을 수시로 체크해 선수들이 큰 부상 없이 좋은 경기를 펼치도록 만든 숨은 공로자이기도 하다. 그는 “팔꿈치 인대수술을 받고 대표팀에 합류한 추신수의 경우 팀에서 미국 트레이너를 파견해 선수의 몸은 물론 심리적인 부분까지 세밀하게 체크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도 전문 트레이너의 수를 늘려 선수들을 위한 인프라 조성에 힘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트레이닝 코치가 부상을 당할 때도 있다. 그는 “선수들에게 운동 시범을 보일 때 무리하다 허리를 다친 코치들을 종종 봤다. 트레이닝 코치들의 직업병으로 ‘끊임없는 허리통증’을 꼽고 싶다”라며 다소 재치 있는 답변을 내놓았다. ‘머리는 차갑게, 몸은 빠르게’. 조 코치가 선수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말이다. 그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강한 정신력을 보유하는 것이야말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라며 따뜻한 조언을 남겼다.
‘불방망이 타선’으로 ‘화끈한 야구’를 선보이는 롯데의 김무관 타격코치를 만났다. 막강 클린업 트리오를 둔 그에게도 고민이 있을까. 김 코치는 “성적이 좋은 요즘 스트레스가 더하다. 타자들의 좋았던 타격감이 갑자기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매 경기 긴장의 연속이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김 코치는 선수 생활 은퇴와 동시에 별 어려움 없이 주루 코치로 현장에 나가게 됐다. 그는 “처음엔 ‘선수 때 경험을 살려 지도하면 되겠지’란 안이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지인이 ‘김 코치는 스타 출신도 아닌데 선수 때 경험만으로 코치 생활을 하려면 안 되지 않느냐’는 충고를 했다. 이 말이 나를 더욱 성장하게 만들었다”며 입을 열었다.
김 코치는 그때부터 미국 전문 야구 서적을 번역해가며 자신만의 비법 노트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노력 덕분일까. 그의 손을 거쳐 간 타자들은 연신 홈런을 터뜨리며 타격왕 자리에 오르내렸다. 시련의 과정도 있었다. 김 코치는 “코치들은 항상 불안정한 위치에 있다. 성적이 안 좋을 땐 언제든 잘릴 수 있다. 나 또한 세 번이나 팀을 나와야 했다”고 설명한다.
감독이 총 연출을 맡은 무대 위 주인공은 단연 선수들이다. 코치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연 역할을 맡아 주연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김 코치는 “작년 3, 4, 5, 6번 타자들이 모두 80타점 이상을 기록했다. 시즌 전 나와 선수들이 세운 목표를 달성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기록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더라”며 감독과 선수의 빛에 가린 코치들의 수고를 조심스레 전해왔다. 그는 “야구로부터 자유롭고 싶을 때도 많다. 그러나 밥을 먹을 때, 씻을 때, 모처럼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조차 야구가 좀처럼 내 머릿속에서 떠날 줄 모른다. 아마 대부분의 코치들이 야구 이외의 것에서 ‘생각하는 즐거움’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천이 연고지인 김 코치는 간혹 롯데 팬들로부터 질타를 받기도 한다. 김 코치는 “등 뒤에서 ‘부산이 연고지도 아닌 것이’라며 날 겨냥한 어떤 팬의 외침을 들은 적이 있다. 난 부산을 ‘제2의 고향’이라 생각하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롯데에 쏟아붓겠단 각오가 돼있는데 그런 얘길 들을 때마다 가슴에 대못이 박히는 통증을 느낀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그러나 그는 “올해 클린업 트리오가 각각 30홈런 100타점이란 목표를 세웠다. 타자들이 너무 잘해준 덕분에 그 목표에 한발 다가서고 있어 너무 기쁘다”며 기대감을 보였다.
삼성 김태한 투수코치는 93년 한국시리즈에서 완봉승을 거둔 스타 출신이다. 2003년 은퇴 후 전력분석원으로 활동하며 타 팀 선수들의 모든 것을 꿰뚫는 ‘매의 눈’을 가지게 됐다. 이후 2군과 불펜코치를 오가며 삼성 투수들에게 ‘즐기는 야구’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두려워하는 타자가 생기는 순간 투수가 던지는 공의 위력은 몇 배로 떨어진다. 영리한 투수가 경기를 지배하는 법이다. 오늘 자신의 어떤 공이 좋은지 나쁜지를 빨리 판단해 상황에 맞는 공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며 조언을 남겼다.
김 코치는 선수 때부터 은퇴 후 지도자로 남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코치가 받는 스트레스나 압박감은 ‘긍정의 힘’으로 물리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만큼 그 정도는 감당해낼 줄 아는 게 진짜 프로라고 생각한다”며 자신감 있는 답변을 내놓았다. 김 코치는 행여 경기에 영향을 미칠까봐 징크스조차 만들지 않는다고. 앞으로 주목해야 할 투수로 정인욱, 백정현, 임진우 등을 꼽은 김 코치는 “기대해도 좋다”며 “선수들과 함께 성장하는 코치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푸른 그라운드 위에 선 선수들이 더욱 빛나도록 그림자를 자청한 코치들. 매 경기 받는 압박과 스트레스로 쌓인 이들의 애환은 야구를 향한 열정, 선수를 향한 사랑으로 승화되고 있었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
‘87 DJ’ 그대와 뜁니다
김동재 코치가 쓰러진 이후 KIA 선수들은 6월 29일, ‘87 DJ’ 문구를 헬멧에 새기고 경기에 임했다. ‘87’은 김 코치의 등번호다. 그의 빠른 쾌유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은 것이다. 지난달 한화로 이적한 장성호 역시 김 코치의 회복을 빌며 ‘COME BACK 87 DJ’ 문구를 모자에 새겼다. 장성호는 “마음이 아프다. 김 코치님만큼 야구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분은 찾아보기 힘들다. 예전에 내가 부상 때문에 일본에 건너갔을 때, 전화로 매일 안부를 물으며 응원해 주던 분이시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장성호 역시 1년 반 전에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지금도 치료 중이라고 한다. 그는 “아버지가 쓰러지셨을 때 정말 힘들었다. 당시 김 코치님이 옆에서 힘이 돼주셨다”며 조심스레 옛 기억을 떠올렸다. 장성호는 “이대수, 강동우 등과 병문안을 다녀왔다”면서 “감독님, 빨리 쾌차하시길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라운드에 복귀하신 모습 금방 볼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을게요”란 응원메시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