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환 8단이 박카스배 한-중 천원전에서 중국 천야오예 9단을 꺾고 처음으로 세계 타이틀을 거머줬다. |
박 8단의 이번 통합 천원전 우승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그동안 국내 기전에서 승승장구하면서 김지석 7단(21)과 함께 한국 바둑 차세대 선두주자로 꼽혀왔지만 국제기전에서는 이렇다 할 성적이 없어 ‘국내용 아니냐’는 일부의 우려가 있었으나 그걸 불식한 것. ‘국내용 아니냐’는 우려는 김지석 7단에게도 그대로 해당되는 것이어서 김 7단에게도 자신감을 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또하나는 국제 라이벌 천야오예 9단에게 이겼다는 것. 천야오예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중국이 자랑하는 천재기사로 박정환 8단과 천야오예 9단은 본인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한·중 바둑계로부터 차세대 세계 바둑의 라이벌로 지목되어 왔지만, 이번 한·중 천원전 직전까지 정작 두 정예의 전적은 천야오예의 3전 전승이었다. 박정환이 이번에 연패의 사슬을 끊은 것.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제14회 삼성화재배. 세계 최초로 더블 일리미네이션으로 진행된 본선에서 박정환은 천야오예에게 두 번 다 흑을 들고 불계패했고, 두 번째 만난 올해 6월에 열린 제15회 LG배 32강전에서는 백을 들고 불계패를 당했다. 박정환 8단으로서는 심기일전의 계기를 찾은 셈이다. 정식 세계대회는 아니라 이벤트성 기전이고, 아직도 종합 전적에서는 2승4패로 열세이긴 하지만, 승부에서는 과거의 전적보다 오늘의 기세와 흐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천야오예는 알려진 만큼 실제로도 대단한 기사다. 1989년생으로 불과 열한 살이던 2000년에 프로가 되었고 2007년에는 제10회 LG배와 제19회 TV아시아선수권전 등 국제대회 두 곳에서 준우승한 실적으로 일약 9단에 승단했다. 18세, 만으로 17세 7개월로 세계 최연소 9단 승단 기록이었다.
1980년대 후반 한국 바둑이 급성장하면서 세계 바둑은 일·중의 대결에서 한·중의 대결로 바뀌었다. 2000년대 개막 전후까지는 한국이 앞섰다. 중국 현대 바둑의 전설적 영웅 녜웨이핑 9단은 일본은 제압했지만 결정적인 장면, 1989년 제1회 잉창치배 세계대회에서 조훈현 9단에게 무릎을 꿇었고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녜웨이핑의 뒤를 이어 등장한 마샤오춘 9단은 돌의 가벼움에서는 당대 제일이라는 칭송을 들었지만, 느리고 육중한 이창호 9단을 넘지 못한 채 좌절했다. 창하오 9단도 마찬가지.
이세돌 9단과 구리 9단, 콩지에 9단의 대결은 일진일퇴. 현재는 중국이 추월하는가 하는 느낌도 있지만, 그건 조금 더 두고 봐야 하겠거니와 이제 그와 함께 박정환과 천야오예, 한·중 두 천재의 각축이 앞으로 세계 바둑계 판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지켜볼 일이다.
동아제약이 후원하는 박카스배 천원전은 규모는 크지 않으나 일찍이 1983년, 신문기전 일색이던 상황에서 국내 최초로 민간기업 주최로 탄생한 기전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으며, 우연인지 필연인지 지금까지 신예 강자들이 정상으로 가는 등용문 역할을 해왔다. 박카스배를 차지하면, 혹은 박카스배를 차지해야 정상까지 간다는 징크스 아닌 징크스를 만들어낸 것. 이창호를 비롯해 이세돌 박영훈 송태곤 최철한 고근태 조한승 원성진 강동윤 등의 면면이 그를 입증하고 있다.
박카스배는 1994년, 12기까지 ‘박카스배 프로기전’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후 1996년 ‘박카스배 천원전’으로 옷을 갈아입고, 동시에 한·중 천원전을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천원전은 일본 랭킹 5위의 기전이기도 해서 한때는 중·일 천원전이 있었고, 한국 천원전이 생긴 후에는 그야말로 한·중·일을 망라, 명실상부한 ‘통합 천원전’을 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얘기도 있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아마도 일본 측에서 좀 난색을 표했던 모양이다. ‘천원’ 말고는 또 하나 한·중·일에 모두 똑같은 이름으로 있는 기전이 명인전. 일본이 좀 분발해 ‘한·중·일 명인전’ 같은 것도 열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올해까지 한·중 천원전의 종합 전적은 8승6패로 한국이 리드하고 있다. 제1회부터 4회까지는 이창호 9단과 창하오 9단이 계속 겨루었는데, 이창호의 4연승. 5회 때도 중국에서는 창하오가 나왔는데 상처는 이미 깊을 대로 깊었겠지만, 그래도 당시 떠오르는 별이었던 이세돌을 꺾어 체면치레를 했다. 6회 때는 박영훈이 우리에게는 약간 생소한 중국 황이중에게 이겨 컵을 찾아왔는데 제7, 8, 9회는 중국 구리의 독무대였다. 이창호의 4연승만큼은 못했지만 한국의 송태곤, 최철한, 또 최철한을 연파해 3연승을 달린 것. 10회에서 우리 고근태가 구리를 물리쳐 설욕했고, 11회에서는 다시 구리가 조한승을 제압했다. 12회 때는 원성진이 구리를 눌러 조한승의 빚을 갚았다. 지난해 13회는 천야오예가 강동윤에게 이겼다. 강동윤은 천야오예와 동갑. 그래서 사실은 강동윤과 천야오예를 라이벌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은데, 그러려면 요즘 좀 뜸한 강동윤이 힘을 내야 한다. 이제 나이 겨우 스물하나인데 말이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