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을 하는 탓에 평소 회식을 포함한 술자리가 잦은 회사원 L 씨(28·대전). 그는 몇 개월 전부터 엄지발가락에 통증을 느꼈다. 며칠간 아프다가 저절로 증상이 사라져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얼마 전 2010남아공월드컵 응원을 하다 응급실을 찾아야 했다.
그리스전이 있는 날, 아예 빨간 티를 입고 출근했다가 퇴근길에 동료들과 함께 응원하기 위해 맥주와 치킨을 잔뜩 사들고 집으로 갔다. 맥주를 몇 병 마시고 기분 좋게 잠이 든 L 씨는 새벽에 갑자기 왼쪽 엄지발가락에 심한 통증을 느껴 응급실을 찾았다. 원인을 찾기 위해 발 관절 엑스레이를 촬영했지만 ‘별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이후 별 증상 없이 지내다가 10일 정도 지날 무렵 다시 엄지발가락의 통증으로 다른 병원을 찾았다. 이때 혈액 검사에서 요산 수치가 높게 나왔다. 바로 통풍이었다.
L 씨처럼 만성 관절염인 통풍으로 고생하는 이들이 많다. 통풍 하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이나 셰익스피어, 알렉산더 대왕, 나폴레옹도 앓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왕의 병’으로도 불린다. 이것은 그만큼 그들이 고기와 술을 즐기는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다른 관절염은 여자에게 많지만 통풍 환자의 대다수는 남자다. 환자의 80~90%가 남자일 정도다.
“원래는 젊은 사람보다는 40~50대에 통풍 환자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20~30대의 발병률이 증가하는 추세”라는 것이 을지대학병원 류마티스내과 심승철 교수의 설명이다.
통풍은 관절 자체가 나빠서 통증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혈액 내의 찌꺼기인 요산이라는 물질이 증가하는 것이 원인이다. 우리가 밥을 먹으면 배설을 하듯이 우리 세포들도 영양분을 먹은 뒤에는 배설을 한다. 이 배설물이 바로 요산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우리 몸은 찌꺼기인 요산이 몸 안에 쌓이지 않도록 소변으로 배설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유전적인 이상으로 세포에서 정상보다 많은 양의 요산을 만들어 내거나, 요산이 소변으로 배설되지 못하면 몸속에 요산이 조금씩 쌓이게 된다. 짧은 기간이 아니라 10~20년 동안 요산이 차곡차곡 쌓이면 관절 안으로 들어가 통증을 일으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더운 날씨에 땀을 많이 흘리면 혈액 내의 요산의 양에 크게 변화가 없어도 수분이 부족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요산의 농도가 진해진다. 반대로 겨울철에도 통풍이 많이 발생하는 편이다. 추위로 인해 혈액순환이 느려지면서 증상이 악화되는 것이다.
비만이나 과체중이면서 술을 많이 마실수록 통풍에 걸리기 쉽다. 또한 당뇨병이나 고혈압 같은 대사성 질환이 있어도 통풍의 위험이 높아진다. 가족 중에 통풍 환자가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족 중의 한 사람이 통풍이나 혈액 검사에서 요산이 정상보다 높다면 다른 가족들도 한번쯤 혈액검사로 요산의 양을 검사해 볼 필요가 있다.
이미 건강검진 등을 통해 요산치가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과식, 과음을 삼가는 등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 이런 사람이 과식을 하거나 술을 자주 마시면 갑자기 엄지발가락에 통증이 나타난다. 또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수술을 받은 후, 무리한 운동으로 몸이 피로할 때도 몸속 노폐물이 쌓이면서 혈액 내 요산이 많아지므로 통풍 증상이 나타난다.
통풍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요산의 생성을 억제하는 요산 생성 억제제, 요산을 소변으로 빨리 내보내는 요산 이뇨제 등의 약을 주로 처방한다. 이들 약을 복용할 때는 복용량과 시간을 잘 맞추되, 마음대로 끊어서는 안 된다.
심승철 교수는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면 혈액검사에서 요산 수치가 내려가는데, 그렇다고 약의 복용을 줄이거나 중단하는 것은 금물”이라며 “혈액 내의 요산 수치는 계속 높은 상태지만 관절 통증은 혈액 내 요산이 너무 많아 관절로 넘쳐날 때만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계속 요산 수치가 높으면 관절뿐만 아니라 신장, 심장, 뇌혈관 같은 다른 장기에도 쌓여 크고 작은 합병증을 일으킨다. 실제로 통풍 환자의 사망원인을 보면 관절염 자체보다는 심장질환, 뇌혈관 장애 등 합병증이 더 많다고 한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을지대학병원 류마티스내과 심승철 교수
통풍이 걱정된다면 다음의 증상이 있는지 한번 체크해 보자.
□여러 관절이 아프기보다는 한 관절에 심한 통증이 있고, 서서히 아프기보다는 갑자기 통증이 있다.
□주로 엄지발가락, 발목, 무릎 등 하지의 관절에 통증이 있다. 특히 엄지발가락은 통풍 환자의 90% 이상에서 관절염이 나타나는 부위다.
□극심한 통증뿐만 아니라 관절이 부어오르며 붉어지거나 열감이 느껴진다.
□통증이 나타날 때는 참기 힘들어 밤에 잠을 못 이룰 정도이며, 심지어 신발을 신기조차 힘들다.
□이런 증상이 1~2일 동안은 통증과 염증이 점점 심해지다가 1~2주에 걸쳐 저절로 좋아진다.
□피부 아래에 단단한 혹이 생겼다. 요산 결정체가 덩어리를 이루면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단단한 혹이 귓바퀴와 팔꿈치, 발가락, 손가락 등 관절 주변부에 생겼다.
통풍상식 허와 실
관절에는 독한 술이 나쁘다?
모든 술이 좋지 않지만 남들보다 통풍이 걱정된다면 순한 술에 속하는 맥주를 피하는 것이 좋다. 맥주에 들어 있는 성분이 몸속에서 요산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풍이 있거나 걱정되는 경우 부득이하게 술을 마셔야 한다면 맥주보다는 차라리 소주나 양주를 마시는 것이 낫다.
굶으면 통풍이 완치된다?
흔히 비만이나 과체중인 사람들에게 통풍이 많다 보니 단식을 하면 통풍이 낫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통풍을 멀리하려면 과식을 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단식 역시 피해야 한다. 적당한 양의 식사를 하는 것이 최선으로, 평소 먹는 양의 70% 정도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단식을 하면 우리 몸의 근육이 손상되면서 혈액 안으로 평소에 없는 물질들이 흘러나온다. 문제는 이 물질이 요산이 소변으로 배출되는 것을 막아 혈액 내에 요산이 더 많이 쌓이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 통풍에는 고기 대신 생선을 먹는 게 좋을까? 통풍에는 요산을 많이 만드는 음식을 피하는 것이 좋은데,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도 그 중 하나다. 고기든 생선이든 지나치게 먹으면 요산 수치가 높아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운동을 많이 하면 통풍이 예방된다?
비만한 사람에게 통풍이 많이 생기므로 적당한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무리한 운동으로 몸이 피로해지면 몸속에 노폐물과 혈액 내 요산이 많아져서 오히려 통풍 증상이 나타난다. 무리가 되지 않는 정도의 유산소 운동을 하루 1시간 이내로 하는 것이 좋다.
덥다고 선풍기 좋아하면 안 된다?
통풍이 주로 엄지발가락에 오는 이유는 발가락이 우리 몸에서 가장 온도가 낮고 혈액순환이 안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풍기나 에어컨 등으로 지나치게 몸을 차게 만들면 통풍 증상을 악화되기 쉽다.
아픈 관절은 찜질을 하면 빨리 가라않는다?
다른 관절질환과 달리 통풍에는 찜질이 해롭다. 냉찜질이든 온찜질이든 모두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냉찜질을 하면 관절 내에 쌓이는 요산의 양이 늘어나고, 온찜질을 하면 염증이 더 심해진다.
통풍 환자는 혈압을 잘 조절해야 한다?
고혈압 환자는 통풍이 오기 쉬우므로 혈압을 잘 조절해야 한다. 다양한 고혈압 약 중에서 가장 흔히 복용하는 것이 이뇨제. 그런데 이뇨제를 복용하면 혈중 요산이 증가해 오히려 통풍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이뇨제를 복용하는 고혈압 환자는 정기적으로 혈중 요산 수치를 검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스피린을 복용해 혈관이 막히는 것을 막는 게 좋다?
혈액 내 찌꺼기인 요산이 증가해 나타나는 것이 통풍이기 때문에 혈관이 막히는 증상이 나타날 우려가 다른 사람보다 크다. 때문에 고혈압 환자가 혈관이 막히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저용량의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것처럼 통풍 환자도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금물이다.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혈액 내의 요산 수치가 높아진다.
고혈압으로 아스피린을 복용할 때는 혈액 내 요산 수치를 검사해 정상인지 확인한 후에 복용하고, 복용 기간에도 정기적으로 요산 수치가 높아지는지 확인하면서 복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