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입주해 있는 서울 종로구 정부중앙청사 창성동 별관 전경.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정부는 고위공직자들의 부패를 발본색원하기 위해 각 부처마다 촘촘하게 그물망을 쳐놓고 있다. 부처 내부에 감찰팀을 따로 두는 것은 물론이고 청와대, 감사원, 국무총리실에도 팀을 만들어 공직사회의 기강을 바로잡고 있다.
청와대는 민정수석실 산하에 공직기강비서관을 두고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감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감사원도 제2사무차장 산하에 특별조사국 등을 두고 공직사회에 대한 폭넓은 감찰 활동을 벌여왔다. 이번에 문제가 된 국무총리실 지원관실도 비슷한 활동을 벌인 조직이다. 세 조직 모두 업무 내용은 비슷하지만 약간의 차이는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는 “청와대의 공직기강팀은 주로 3급 이상의 고위공무원만을 대상으로 감찰 활동을 벌이는 반면 지원관실은 굳이 그 범위를 정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청와대나 총리실에 비해서 업무가 약간 수동적인 편이고 이른바 암행감찰 같은 활동도 웬만해서는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나 감사원과는 달리 국무총리실 내 지원관실의 활동은 굉장히 적극적인 데다 감찰 대상도 광범위한 편이다. 미행이나 잠복수사 같은 강력부 형사들의 수사기법을 사용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 2009년 초반 과천에 있는 정부 모 부처에서 일하다가 총리실로 파견을 나간 한 직원은 당시 기자와 만나 이런 하소연을 한 바 있다. “주로 사무실에 앉아서 사무를 보는 일을 하다가 이곳에 와서 승용차 타고 다니며 남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다 보니 돌아버릴 노릇이다. 이거 내가 경찰도 아니고….”
이처럼 워낙 집요하게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감찰활동을 벌이다보니 공직사회에서는 그들을 ‘관가의 저승사자’로 부르고 있을 정도다.
총리실 소속 지원관실이 원래부터 관가의 저승사자로 불린 것은 아니었다. 참여정부에서는 조사심의관실이라는 이름의 감찰조직을 두고 70여 명의 부처 파견 직원이 활동하기도 했다. 규모는 더 컸지만 주로 경찰이나 국세청 직원들 위주였다. 참여정부 당시 이 팀에 파견 나갔던 한 국세청 직원은 “얘기를 들어보면 당시 활동은 지금의 지원관실 활동에 비하면 훨씬 ‘루즈’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조직은 정권이 바뀌면서 사실상 해체됐다. 이 조직에 대한 공직사회의 불만이 적지 않았고, 작은 정부를 지향했던 이명박 정부가 청와대나 감사원에도 비슷한 조직이 있는 만큼 이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 검찰 수사에서 공직윤리지원관실이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왼쪽)의 부인과 정두언(가운데)·정태근 의원까지 사찰했다는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
그러나 촛불 시위로 인해 이명박 정권이 위기감을 느끼면서, 정부는 공직사회 기강확립 차원에서 다시 조직을 부활시켰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사직동팀’이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했다.
2008년 7월에 정식으로 출범한 지원관실은 공직사회에 대한 전방위적인 감찰 활동을 벌였다. 파견 인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각 부처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수집하는 감찰 정보는 청와대나 감사원을 능가했다. 최근 민간인 불법사찰이나 정치인 사찰로 인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사실 지원관실이 해왔던 순기능 역시 부인할 수 없다는 게 적지 않은 공무원들의 설명이다.
다음은 이 팀 활동을 잘 보여주는 몇 가지 사례다. 한번은 지원관실 직원 몇 명이 팀을 꾸려 경남지방에 암행감찰 차 내려간 적이 있다. 모 지방 세무서 앞에서 잠복을 하고 있는데 마침 세무서장이 점심식사를 위해 승용차를 타고 한 고급 일식집으로 향했다. 서장이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급 승용차 두 대가 같은 일식집 앞에 섰다. 이 승용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세무서장과 합석했다.
이 사람들과의 식사를 마친 세무서장은 다시 사무실로 향했고 지원관실 소속 직원들은 뒤를 밟아 세무서장실을 급습했다. 직원들은 세무서장의 서랍에서 돈봉투를 발견했고 이를 상부에 보고한 후 이번에는 세무서장의 자택으로 갔다. 여기에서는 와이셔츠 상자에 담긴 돈다발이 발견됐다. 얼마 후 이 세무서장은 파면됐다.
또 한번은 한 공공기관장의 불륜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고 이 기관장을 미행한 끝에 불륜 현장에 직접 들이닥친 적도 있다고 한다. 이 기관장 역시 최근에 옷을 벗었다. 이런 식으로 지원관실에 꼬리가 잡히면 거의 옷을 벗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2009년 초에는 지원관실에 전남 광주지역의 한 고위공직자가 돈을 받았다는 제보가 입수됐다. 지원관실 직원들은 이 고위공직자의 집무실을 수색하기 위해 내려갔으나 공직자가 압수수색 영장을 요구하는 바람에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고 한다. 이 인사는 일단 급한 불을 끈 후 개인적인 인맥을 동원해 감찰 활동을 무마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지원관실 소속 직원들은 본인들의 감찰활동이 마치 무소불위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일각의 시각에 대해서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지원관실 소속의 한 직원은 “공직사회에서는 수많은 음해성 루머들이 돈다. 루머를 입수했다고 해서 무조건 암행감찰을 하거나 사무실에 들이닥치지 않는다. 일단 전체적인 내용을 스크린해보고 신뢰성이 있다고 판단된 후에야 실제적인 감찰 활동을 벌인다. 금전 문제가 사실로 확인되면 거의 옷을 벗어야 하고 사적인 일은 경고를 주는 차원에서 마무리한다. 언론에서 보도하는 것처럼 무턱대고 감찰 활동을 벌이지는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지원관실이 장·차관급의 고위공직자들에 대해서도 서슬퍼런 감찰 활동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이인규 전 지원관과 이 조직을 보호해주는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번 사건의 비선으로 지목되고 있는 이영호 전 청와대 노사고용비서관은 조만간 검찰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일요신문>은 지원관실 사정에 밝은 인사로부터 이 전 비서관이 지원관실 워크숍뿐만 아니라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전체 회식에도 참여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전 지원관의 경우 언론에서 그를 비판적으로 보는 것과 달리 내부에서는 평가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지원관실 소속의 한 직원은 이 전 지원관에 대해 “융통성이 없는 부분이 아쉽긴 했지만 강직하고 리더십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공무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사평가에 대해 신뢰를 줬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파견 직원들에 대한 인사평가는 원 소속기관에서 이뤄지다보니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운 것이 관례였다. 파견 나가 눈에 띄지 않는 직원을 인사권자 입장에서 좋게 평가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전 지원관은 이들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음은 이 전 지원관이 직원들의 신뢰를 얻게 될 수 있었던 에피소드다. 월간 <신동아>는 총리실 지원관실이 조흥희 서울지방국세청장이 유흥업소에 자주 드나든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이에 대한 감찰활동을 벌였다는 내용의 기사를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이 기사가 나가자 청와대 측에서는 기자와 접촉했던 총리실 직원들에 대해 정보 유출 등으로 문제를 삼았다. 몇몇 직원들은 원대 복귀 얘기까지 거론됐지만 이 전 지원관이 나서서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고 전해진다.
이 에피소드를 보면 한편으로는 이 전 지원관의 힘이 너무 센 것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업무 특성상 외압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지원관실 직원들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지원관실의 이러한 공직감찰 활동은 일부 정치권 인사들에 의해 악용되면서 서서히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 조직을 자신의 정치권력을 지키기 위해 휘둘렀다. 대표적인 사례는 이번에 물의를 일으킨 민간인 불법 사찰이나 여당 중진의원에 대한 사찰이다.
지원관실의 활동이 한창이던 2009년 기자는 이 조직의 정치적 편향성에 의문을 던지게 된 계기가 있었다. 얼마 전 민주당 이석현 의원이 제기한 서희건설 사찰 의혹이 그것이다.
지난해 10월경 기자는 몇 주에 걸쳐 서희건설과 관련한 여러 가지 의혹에 대해 취재를 진행한 바 있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에서 수사를 진행하던 시기였다. 당시 기자는 서희건설의 평택 미군기지 사업 수주나 여수산업단지와 관련한 여러 가지 의혹을 확인하던 참이었다. 취재 과정에서 서희건설이 박영준 국무차장과 연관됐다는 소문을 접할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가까운 유명교회 목사의 이름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총리실에서는 기자의 취재 사실을 알아채고는 직접 전화해 각종 의혹들을 해명한 바 있었다. 지원관실은 관련 의혹을 모두 알고 있지만 박 차장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감찰 활동을 벌이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이 조직의 정치적 성향에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공직사회의 분위기는 정치권이나 언론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공직자들로 하여금 허튼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 데에는 지원관실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권력은 양날의 칼과 같아서 자칫 잘못 사용할 경우 자기 자신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지원관실이 휘둘렀던 칼끝은 민간인 사찰 파문이 터지면서 이제 칼을 만든 그 누군가를 향하고 있는 형국이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
입바른 소리하는 ‘꼴통’들 차출
▲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이 지난 24일 새벽 구속수감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예를 들어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의 경우에는 파견 인원을 뽑을 때 영남 ○명, 호남 ○명 식으로 지역 안배에도 신경 을 쓴다.
그러나 지원관실의 인원 구성 방식은 달랐다. 주로 이인규 전 지원관이 각 기관을 직접 돌며 인원을 차출해 오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이 팀이 최초 출범하던 2008년 중순경 인원은 20여 명이었다. 참여정부 때 감찰팀에 비해 국세청, 경찰 파견 직원이 확연히 줄었고 대신 금융감독원이나 한국거래소, 공정거래위원회 등에서 인원을 뽑아왔다.
2008년 말부터 2009년까지 조직을 확대개편하면서 노동부, 환경부, 농림부 등 각 부처마다 1명 이상씩 골고루 인원을 선발했다. 일부 언론에서 2008년 9~11월 당시 지원관실 직원 42명의 명단을 입수해 출신 지역을 분석한 결과 출신지가 확인된 36명 중 TK(대구 경북) 출신이 17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 중 경북 영일과 포항 출신은 7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총리실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인원 구성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 전 지원관은 각 조직에서 일명 ‘꼴통’으로 불리는 사람들을 주로 뽑았다. ‘꼴통’이란 나쁜 의미가 아니다. 일은 잘하지만 조직 내부에서 워낙 ‘입바른’ 소리를 잘해서 승진에 밀려있던 사람들을 지칭했다. 이런 사람들을 주로 뽑았다. 정부 부처에서 근무하다 지원관실로 파견 오게 된 한 직원은 7급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지만 20년간 한 번도 승진을 못한 경우도 있었다. 윗 상관들에게 잘 보이는 걸 못하다 보니 인사에서 항상 불이익을 받았다. 이런 사람을 불러다가 감찰 업무도 시키고 승진도 약속하니 자연스럽게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높았다. 특히 이 전 지원관은 자신이 찍은 사람은 꼭 데려왔다.”
영포회 출신인 이 전 지원관에게 사실상 인사에 관한 전권이 주어지다보니 포항 출신들이 많아지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인지상정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부에선 이 조직에도 실세들이 추려보낸 인사들이 상당수 포함됐다는 얘기도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