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아공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수비수로 맹활약한 조용형. 그는 최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로의 이적설이 나돌고 있다. 사진제공=아디다스 |
요즘 스포츠 언론들과 축구 팬들의 최대 관심사 및 화두는 단연 해외 진출 여부라고 할 수 있다. 월드컵을 전후로 여러 선수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고, 그 성사 가능성에 시선이 주목된다.
이번 남아공 무대를 밟았던 국가 대표팀 최종 엔트리 23명 중 이적 관련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는 K리거들은 3명 남짓. 조용형(제주), 김동진(울산), 김형일(포항) 등이 주인공이다.
범위를 넓혀 이미 해외에서 뛰고 있는 이들까지 포함한다면 숫자는 훨씬 많아진다. 박주영(AS모나코), 이청용(볼턴) 등이 리스트에 추가된다. 차두리의 경우 월드컵 직후 독일 분데스리가 프라이부르크에서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최고 명문 클럽 셀틱FC에 안착했다. 이정수도 J리그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사드로 이적해 지난 24일 새벽, 소속팀 합류차 카타르로 출국했다.
하지만 역시 우리에게 익숙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이적 루머들의 대세인데, 조용형은 애스턴 빌라-선덜랜드, 박주영은 풀럼-애스턴 빌라-에버턴-리버풀, 이청용도 자신의 잔류 의지와는 관계없이 리버풀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비록 거절하긴 했지만 김동진도 한때 몸담았던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에서 구애의 손짓을 보내왔다. 김형일 또한 버밍엄의 영입 리스트에 올랐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큰 특징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트라이커 혹은 미드필더 정도에 국한돼 있던 유럽 이적 선수들의 포지션이 수비수까지 넓게 분포돼 있다는 점. 이적 여부를 떠나 이는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선수들이 그만큼 기량 및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가장 각광받지 못했던 수비수가 갑자기 수면 위로 부상한 이유는 한 가지. ‘실리 축구’가 남아공월드컵에서 대세를 이룬 때문이다. 축구 전문가들은 “4년 마다 향후 3년간 세계 축구계 전술적 트렌드를 결정짓는 월드컵에서 유독 올해는 탄탄한 수비가 각광을 받아 새로운 시장이 개척됐다”고 설명한다.
이영진 대구FC 감독은 “모든 실점이 수비수 자체 실수라고 할 수 없다. 열심히 뛰긴 했지만 기성용-김정우-김남일 등 허리진 가운데를 맡는 이들이 100% 완벽한 임무 수행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한국 수비수도 득점력을 갖췄고, 예전처럼 몸 싸움이나 제공권에서 크게 뒤지지 않기 때문에 유럽에서도 통할 수 있다”고 긍정적인 시선을 줬다.
정말로 이적에 성공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하지만 여기서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게 있다. 과연 유럽 빅 클럽들이 먼저 ‘오퍼’를 던졌는지 여부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유럽 클럽에서 먼저 선수 측에 러브콜을 보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굵직한 선수들을 여럿 해외에 진출시켰던 한 중견 에이전트는 “대부분 우리 쪽에서 의사를 먼저 타진하고 있다고 봐도 좋다. 아직 한국은 세계 축구 전체에서 봤을 때 크게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K리그 구단 직원들은 “노란 머리와 파란 눈을 가진 외국 에이전트들을 경기장에서 보기 위해선 최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무대를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단 ‘간’만 보고 추이를 지켜보는 경우도 있다. 가령 어떤 클럽이 월드컵에서 스카우터를 파견해 실력이 있는 선수들을 발견할 경우, 이를 슬쩍 (해외) 언론에 흘려 상황을 체크하는 것이다.
사실 한국 선수가 해외 진출이 정말 어려운 까닭은 병역 문제에 있다. 월드컵 등 메이저 대회가 끝난 뒤 항상 병역 면제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에선 군 복무가 이슈가 될 수 있어도 유럽 축구에서 한국적인 현실을 고려할 턱이 없다. 상황을 보고, 안 된다는 판단이 서면 쉽게 포기한다.
아울러 선수들의 실력 못지않게 유럽 이적시장이 개장될 때마다 항상 언급되는 게 국내 기업 스폰서와의 연계다. ‘한국 기업이 스폰서로 있으니까 반드시 한국 선수를 영입해야 한다’는 영입 조건은 거의 사라진 것 같지만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게 에이전트 업계의 판단. 여기에는 메인 스폰서는 물론, 작은 서브 스폰서도 해당된다.
작년 네덜란드 등 이적을 타진했던 A 선수의 경우, 해당 클럽이 에이전트에게 만약 서브 스폰서를 구해오면 A를 영입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던 것은 아주 유명한 일화다. 그러나 결국 에이전트는 스폰서를 잡지 못했고, A도 유럽 진출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프리미어리그의 한 클럽이 아시아 시장 개척을 염두에 두고, 스폰서십 차원에서 한국 선수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같은 동아시아의 일본, 중국 등은 물론이고 중동과 동남아 전역까지 퍼져 있다.
계속되고 있는 한국 선수들의 이적설이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장기적 안목에서 볼 때 마냥 반갑지 않은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