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의 누드 이미지는 이 사건의 합성사진과 무관함. |
2009년 2월 수도권 소재 I 대학 로스쿨에 입학해 예비 법조인의 꿈을 키워가던 B 씨는 그해 8월경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을 발견하고 아연실색했다. 자신을 포함한 동기 여학생 11명의 얼굴이 누드모델 사진과 합성된 채 해외 포르노사이트는 물론 같은 학교 남학생들의 이메일에도 전송됐기 때문이다.
B 씨와 동기들의 알몸인 것처럼 완벽히 합성된 사진은 순식간에 화제가 됐고, 결국 B 씨는 범인을 밝혀내기 위해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사진을 확인한 경찰은 원본 사진과 유포 경로 등을 확인한 후 내부자 소행으로 가닥을 잡았다. 합성 사진에 쓰인 원본 사진이 친분이 없으면 얻을 수 없는 사적인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해당 게시물의 게재 시간을 확인한 후 인터넷 접속시간이 이와 동일한 재학생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법률적 상식이 뛰어났기 때문이었을까. 범행 역시 단서를 잡을 수 없을 만큼 완전범죄에 가깝게 이뤄져 있었다.
범인은 호주의 한 음란사이트에 게시물을 올렸는데 혹시나 모를 추적을 피하기 위해 미국 서버에 접속해 인터넷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남학생들 메일로 사진을 전송했을 때에는 해외 사이트 메일을 사용하는 남학생들에게만 합성 사진을 보내는 치밀함도 보였다. 해외 사이트의 경우 국내에서 발신자 및 전송기록 추적 등의 수사협조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결국 경찰은 미국 서버에 여러 번 접속한 학생을 조사하는 쪽으로 수사의 방향을 잡았다. 그러자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그전까지만 해도 알몸 누드사진에 자신의 얼굴이 포함돼 있어 자신 또한 피해자라고 주장했던 A 씨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것이다. 해외 사이트와 남학생들의 메일로 모두 6번에 걸쳐 사진이 유포됐는데 A 씨의 미국 서버 접속시간은 이와 모두 동일했다. 경찰은 결국 A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PC의 하드디스크를 압수해 증거를 찾고자 했다. 그러나 A 씨는 압수수색 바로 전날 하드디스크를 아예 새 것으로 교체했다.
A 씨는 “사적인 이유로 교체했다”며 “서버 접속 기록만 보고 범인으로 단정 짓는 것은 증거가 불충분하지 않느냐”며 자신의 법률적 상식을 동원해 경찰의 수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은 “결정적 단서가 없을 뿐이지 여러 가지 정황상 A 씨의 범행사실이 너무 확실하다”며 수사를 계속 진행했다.
경찰이 이렇듯 A 씨를 범인으로 확신하던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A 씨가 자신이 용의선상에 올라 수사가 계속되자 경찰에 출두해 거짓 증언을 하는 등 수상한 행각을 보였기 때문이다. A 씨는 “검찰에서도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었다. 검찰은 증거를 확보해 범인이 내가 아닌 남학생 C 씨라고 파악해 이미 수사를 종결했다”며 경찰 측에 공소장을 제출하기도 했다.
또 이 공소장을 로스쿨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남학생 C 씨가 범인인 양 허위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A 씨가 제출한 공소장을 본 순간 경찰 측에선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A 씨가 제출한 공소장은 수 년 전에나 쓰여 이제는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문제집에나 기록될 법한 옛날 양식이었기 때문이다. 또 A 씨가 제출한 공소장에는 인적사항이 호주법이 개정되기 전 양식으로 기록돼 있기도 했다. 결국 공소장은 A 씨가 직접 만든 허위문서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A 씨에게 현재 쓰이고 있는 공소장을 보여주며 “누드사진 유포 증거는 없지만 경찰에 허위 문서를 제출해 C 씨에 대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는 분명하지 않느냐”며 A 씨의 덜미를 잡았다.
A 씨의 이상한 행각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경찰의 수사가 주변인 진술로 확대되며 학생회장 D 씨도 경찰 조사에 응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A 씨는 휴대폰 발신번호를 바꿔 수차례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D 씨에게 ‘나는 현직 검사 김 아무개다. A 씨는 내 여자친구인데 겁 없이 깝치면 앞으로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조사 결과 문자에 찍힌 김 씨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통신기록을 조회한 결과 A 씨의 소행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이 같은 A 씨의 행각 때문에 경찰은 더욱 A 씨가 범인이라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범행을 숨기려는 의도가 아닌 이상 이렇듯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하지만 A 씨는 자신의 수상한 정황은 드러났지만 경찰이 누드사진 유포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나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여전히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7월 29일 기자와 통화한 경찰 관계자는 “그동안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해 여러 정황이 확실함에도 A 씨를 기소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A 씨가 공소장을 위조해 허위사실을 유포해 같은 재학생에 대해 명예를 훼손하는가 하면 익명으로 협박 문자를 전송해 상대에게 불안감을 조성하는 등 스스로 범죄행각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했다. 현재 A 씨는 불구속 기소된 상태로 조만간 법정에서 그 진실이 가려질 것이다”고 말했다.
A 씨는 자신의 혐의에 대한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지자 학교에 돌아오기 어렵다는 말만 남긴 채 로스쿨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이 벌어진 학교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해당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