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KBS 다큐멘터리 3일
햇빛과 바람, 추위를 이겨내며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 완성되는 곶감. 40일을 넘게 얼고 녹기를 반복하는 곶감을 만들기까지 곶감에 웃고 우는 사람들이 있다. 1분 1초가 급한 ‘곶감 철’을 보내는 경남 산청 덕교마을 주민들을 다큐멘터리 3일이 찾아갔다.
11월 가을 추수가 끝나면 찾아오는 농한기. 농사일을 쉰다는 농한기 때에 가장 바쁜 마을이 있다. 바로 가을에 수확한 감을 깎아 곶감을 만드는 농가들이다. 한 해의 결실을 곶감 만들기로 마무리하는 마을에는 이맘 때 쯤엔 일손이 부족하다.
80가구 중 50여 가구가 감 농사를 짓는 지리산 산청 덕교마을도 마찬가지다.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덕교마을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 삼삼오오 집에 모여 곶감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가던 고양이도 일손을 도와야 한다는 ‘곶감 철’에는 도시로 나간 자식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일손을 돕는다. 아무리 따 놓은 감을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는 ‘저온 창고’ 등의 저장 시설이 구비되었다고 한들 홍시가 되기 전에 감을 빨리 깎지 않으면 한 해의 농사가 엉망이 된다. 그렇기에 자식들은 주말을 반납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하주상 씨(47)는 “보통 한 10월쯤 되면 뭐 단풍도 보러 가고 애들하고 캠핑도 가잖아요. 저흰 그게 없죠”라고 말한다.
주말 동안 조금이라도 일손을 많이 돕고 집으로 돌아가야 되기 때문에 자식들은 마음이 급하다. 자식들은 반복된 작업에 팔이 저려오지만 멈출 수 없다. 혹여나 연세 드신 부모가 힘드실까봐 휴일을 반납하고 모여든 이들 덕에 산청 덕교마을에는 ‘농한기의 효자’라는 곶감이 기를 못 쓴다.
코로나 19의 여파로 자식들의 얼굴을 못 본 지 몇 달째. 홀로 자식들에게 보내줄 곶감 작업을 하는 어르신은 자식들을 보고 싶은 마음을 담아 정성스레 곶감을 만든다.
하연수 씨(72)는 “와서 일 도와줄 때는 좋은데 가고 나면 서운하니 우리 둘만 남는데 보내고 나면 일만 힘들게 시켰다 싶고”라고 말했다.
코로나 19 속에서도 휴식해야 하는 주말에도 자식이 두 손을 걷고 도우러 온 것이 부모들은 고마우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자식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부모 눈에는 어린 자식이라지 않는가. 부모들은 일손을 돕고 다시 집으로 바쁘게 돌아가는 자식들의 뒷모습에 눈을 떼지 못한다.
이렇게 바쁜 곶감 철에는 마을에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바로 ‘5분 대기조’ 감 박피기(감 깎는 기계) 수리기사다. 감 깎을 때가 되면 산청 덕산으로 내려와 상주하며 전화 한 통이면 빠르게 달려와 고장난 기계를 뚝딱 고치고 다른 집으로 기계를 고치러 떠난다.
근처 대부분의 마을에서 곶감을 만들기 때문에 감 깎기에 도움을 보탤 일손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설상가상 손을 돕던 외국인 근로자들의 도움도 코로나 19 때문에 구하기 어려워졌다. 이럴 때 주민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작업이 먼저 끝난 주민은 동네 작업장을 돌아다니며 품앗이를 한다. 함께 모여 작업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은 곶감이 귀했던 시절 옛 추억을 떠올리며 웃음꽃을 피우고 감 박피기(감 깎는 기계)를 쓰지 않았던 때를 떠올리며 칼로 감을 깎아 보기도 한다.
그들의 정겨운 모습을 담던 제작진 역시 감에 핀 꼽기 작업을 도우며 일손을 보탠다.
이렇게 바쁘고 분주한 동네라면 올해도 곶감은 농한기의 효자여야 되건만, 실정은 그렇지 않다. 코로나 19부터 늦은 봄에 찾아온 냉해, 태풍, 긴 장마 때문에 올해의 감 수확은 반타작도 되지 않는다.
주민들은 걸어놓은 감이 거센 바람에 떨어질까 선잠이 들기도 하지만 떫은 감이 모진 바람과 추위를 견뎌내 달게 숙성되는 것처럼 고생 끝에 낙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