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북 보은으로 전지훈련을 떠난 U-18 여자 국가대표 상비군 선수들. 왼쪽부터 최소미 오은아 정하나.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30도를 웃도는 무더위 속 훈련에도 3인방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날 줄 몰랐다. 여자대표상비군으로 뽑혀 훈련을 시작한 지 8일째. 각종 전술, 기본기 등 처음 받아보는 체계적인 훈련에 하루하루 시간 가는 게 아쉽단다. “흙먼지 날리는 학교 운동장에서만 축구를 하다가 천연잔디구장에서 공을 차니 실력이 쑥쑥 느는 것 같다.” “이런 전술들은 처음 배워본다. 친선경기에서 배운 전술을 바로 응용해볼 수 있어 좋다.” 최소미, 정하나, 오은아 3인방 모두 여자대표 상비군으로 뽑힌 지금, 가능한 많은 것들을 배우고 돌아가겠다는 각오로 가득 차 있었다.
강일여고 최소미는 2005년부터 여자대표상비군을 지도하고 있는 김회성 감독이 최고로 꼽은 유망주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꼼꼼히 체크하고 뭐든지 배우려 한다고. 포지션은 중앙 수비수지만 공격력도 좋아 코너킥 상황에서 헤딩골을 전담한다.
김 감독은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성실한 선수다. 한국 여자 축구의 새로운 역사를 쓸 인재”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골 넣는 수비수’ 최소미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진 육상선수였다. 그의 재능을 높이 산 축구부 김태희 코치의 권유로 축구를 시작하게 됐다고. 중학교 때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포지션을 전환한 그는 170㎝의 큰 키가 자랑이다. 제공권 다툼에선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단다.
최소미는 U-20 월드컵에서 가나와의 조별리그 2차전을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꼽았다. 후반 41분 가나의 추격의지를 완전히 꺾은 지소연의 헤딩골을 잊을 수 없기 때문. 최소미는 “월드컵에 출전해 헤딩골로 팀 승리에 기여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정하나는 ‘제2의 지소연’으로 주목받는 대표 공격수다. 다음 달 열릴 U-17 여자월드컵 대표로 발탁돼 태극마크를 단다. 순간 스피드가 좋아 공간 창출 능력이 수준급이고, 골 결정력까지 좋아 이번 U-17 여자월드컵의 득점포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 감독 또한 “지소연 못지 않은 개인기를 갖추고 있는 선수”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축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지소연과 쏙 닮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운동장에서 남자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고 축구부 감독이 스카우트를 한 것. 남자 아이들보다 더 축구를 잘해 감독조차 입을 다물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정하나는 U-20 월드컵에서 김나래가 보여준 30m 프리킥 골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단다. 김나래의 강력한 중거리 슛 능력을 닮고 싶다고. 정하나는 “U-17 월드컵에서 선배들처럼 멋진 슛을 넣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대표팀 차기 골키퍼로 꼽히는 오은아는 한양여대와의 연습경기에서 본 지소연의 화려한 개인기에 대해 입을 열었다. “드리블, 패스, 슛 모두 일품이었다. 골키퍼가 어떻게 해보지도 못하고 당했다. 그때 이미 ‘지메시’의 강림을 느꼈다.” 오은아가 축구를 시작하게 된 건 같은 학교 축구부에서 뛰던 한 남학생을 짝사랑하면서부터다. 그가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레 축구가 좋아졌다고. 마침 동일초등학교에서 여자축구부를 창단해 공격수로 입단했다. 남자 축구부 연습을 지켜볼 기회는 많아졌지만 결국 고백도 못한 채 짝사랑을 접었다고. 중3 때 발목 수술을 해 스트라이커의 꿈을 접고 골키퍼가 됐지만 후회는 없다. 오히려 본인 적성에 잘 맞는 것 같아 만족한단다.
김 감독도 “171㎝의 큰 키에 점프력까지 갖춘 기대되는 선수다. U-17 대표로 발탁됐었는데 어깨 인대가 파열되는 바람에 월드컵에 못 나가게 됐다”면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3인방은 서로의 장점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최소미는 공격수를 능가하는 헤딩력, 순발력, 성실함이 장점으로 꼽혔다. 오은아는 “소미 언니는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다재다능하다. 우리 학교로 전학 와 같이 뛰었으면 좋겠다”고까지 말했다. 정하나는 스트라이커답게 빠른 스피드와 드리블, 골 결정력이 뛰어나다는 찬사를 받았다. 오은아는 다이빙 능력과 일대일 상황에서도 골문을 잘 지켜내 골키퍼로서 천부적인 감각을 갖췄다는 칭찬이 이어졌다.
한국 여자축구의 척박한 땅에서 발견한 보석들의 빛나는 미래가 기대된다.
보은=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
선수 뒷바라지 위해 ‘맨땅에 헤딩’
여자대표상비군 지도 5년차에 접어든 김회성 감독에게 2010년 여름은 너무나 달콤했다. 여자축구 발전을 위해 뛴 지난 20년 노력의 결실이 이제야 맺어졌기 때문이다. U-20 대표팀 선수들 대부분은 여자대표상비군에서 김 감독의 손을 거쳤다.
김 감독은 여자축구 감독을 처음 맡은 91년, 뉴질랜드에 15 대 0, 호주에 9 대 0으로 충격적인 패배를 경험했다. 선수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고 한국 여자축구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김 감독은 여자축구 발전을 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대한체육회, 문화체육관광부는 물론 기획재정부까지 찾아가 여자축구 지원을 호소했다.
그의 눈물겨운 노력 덕분에 선수들은 해외 전지훈련을 떠날 수 있었고, 2년 만에 각국 친선경기에서 전승을 거두며 한국 여자축구의 돌풍을 예고했다. 김 감독은 2008년 베트남 호찌민에서 열린 AFC U-13 여자 페스티벌에 U-13 여자대표팀을 이끌고 참가했다. 중국을 8 대 1, 호주에 5 대 1로 꺾고, 여자축구 최강 북한에게도 1 대 0으로 승리하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김 감독은 북한과의 경기에서 있었던 재미난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북한 선수들 몸이 어찌나 유연한지 모두 무용수 같더라. 축구할 때도 ‘방어선을 지켜라. 장벽을 구축하라’며 군사 용어를 써서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경기 후엔 북한 선수들이 ‘통일되면 꼭 만나자’라며 포옹해왔다.”
김 감독은 코칭스태프 전원을 여성으로 구성했다. 혹시 발생할지 모를 성추행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김 감독은 “여자축구를 선택한 선수들, 가족들, 지도자들 모두에게 감사해야 한다. U-20 월드컵을 계기로 여자축구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길 바란다”며 팬들의 응원을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