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다른 우정을 자랑하는 강동희, 허재, 전창진 감독(왼쪽부터)이 태백 전지훈련지에서 함께 모였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세 감독 모두 태백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지고 있다. 태백전지훈련을 처음 시도한 전창진 감독과 그 밑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허재 감독, 그리고 전 감독이 원주 동부를 맡을 당시 코치 신분으로 태백전지훈련에 참가했던 강동희 감독, 모두 태백 훈련을 통해 쓴맛, 단맛을 봤던 주인공들이다. 원주 동부 때부터 여름만 되면 태백으로 선수들을 이끌어 온 전 감독과 원주 동부 감독으로 부임 후 자연스레 태백 훈련을 이어 간 강 감독, 그리고 올 시즌 처음으로 태백 훈련에 동참한 허 감독이 비슷한 시기에 모이다보니 모든 훈련을 마친 후에는 저녁에 모여 술도 한 잔 하고 수다도 떠는 등 2주간의 전지훈련을 재미있게 보낼 수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세 감독이 공통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인터뷰를 진행해 나갔다.
승부욕
허재(허): 승부욕은 (전)창진 형이 대단하지 않아? 나야 뭐 겉으로 소리치고 화내면서 펄펄대기만 하지만 창진 형은 조용히 목표를 이루잖아.
전창진(전): 승부욕이 없는 감독이 누가 있겠어. 우리 말고도 더 한 감독들도 있고. 모두 코트에 들어서면 이기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고, 상대팀 감독이 친한 감독일수록 더 잘하고 싶은 마음도 있거든. 솔직히 나야 무명 선수 출신이고, 너희 둘은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니까 조금만 액션을 취해도 더 많은 관심을 받는 편이잖아.
강동희(강): 게임 앞두고 허재 형이나 전 감독님이랑 붙으면 같이 식사도 하고 당구도 치고 그러는데 코트에만 나가면 얼굴이 변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시즌 끝날 쯤에는 약간의 후유증이 남더라고요(웃음). 그래도 한두 달 지나면 금세 해소되고 당시의 상황들이 이해가 되기 때문에 이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서로 이기려고 하는 게 아름답지 않아요? 제가 막내 감독이지만 기죽을 필요는 없고 코트에선 제가 갖고 있는 걸 당당히 펼쳐 보이고 싶었어요. 그거 아세요? 지난 시즌 동부가 KT, KCC 상대해서 모두 3승3패의 성적을 냈다는 거. 크게 진 적도, 크게 이긴 적도 없이 여섯 게임 모두 알차고 좋은 경기를 벌였다고 생각해요.
▲ 위부터 전주 KCC, 부산 KT, 원주 동부의 훈련 모습. |
전: 허재랑은 어렸을 때부터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지. 남들이 샘을 낼 정도로 말이야. 내가 허 감독한테 부러운 건 국제대회, 국내대회 등 오랜 선수 생활을 통해 쌓은 다양한 경험이야. 그 부분이 팀을 이끄는 지금,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 것 같아. 위기 대처 능력이나 순발력이 정말 대단하거든. 동희는 늦게 인연을 맺었지만 배움의 자세나 농구에 대한 열정이 엄청났어. 강 감독 또한 허 감독 못지않은 스타플레이어 출신인 데도 이상하게 주목을 받지 못한 면도 있었어. 그에 대한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한데 내색하지 않고 성적으로, 행동으로 보여주려 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야.
강: 감독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웃음). 허재 형은 선수 때 너무 좋아했던 선배였어요. 전 감독님은 제가 지도자 생활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신 분이고요. 허재 형이 불같은 성격을 지녔으면서도 의외로 순수한 면이 있어요. 길게 만나면 허재 형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재 형 성격에 중간에 떨어져 나가고 말죠. 우리만이 알고 있는 허재 형의 매력이 있어요.
허: 난 여기서 보낸 2주일이 너무 행복했어. 감독 되고 나선 가끔 ‘혼자’라는 생각 때문에 외로움이 깊었거든. 가끔 창진 형이랑 동희를 만날 때도 있었지만 오랜만에 만나서 힘들다고 하소연할 수도 없잖아. 그런데 여기선 매일같이 얼굴 보니까 훈련에 대한 문제점도 상의할 수 있고, 선수들 ‘뒷담화’도 하고(웃음), 훈련 없을 때 같이 골프도 치고, 사람 사는 것 같았어. 내일 오전에 산악훈련 마치면 용인 숙소로 돌아가는데, 여기서 보낸 시간들이 그리울 것 같아. 물론 선수들은 떠올리기 싫은 태백이 되겠지만 하하.
태백 전지훈련은?
허: 오랜만에 태백에 와서 느낀 점이 많아. 특히 창진 형이 하는 거 보니까 훈련 스케줄이 매우 치밀하고 계획적이더라고. 어쩔 수 없이 다른 팀 선수들 기록에 신경쓰게 되더라고. 동부랑 KT 선수들이 몇 분 몇 초로 들어오는지 관심있게 지켜봤거든. 우리 선수가 더 잘 뛰면 좋겠지만 그건 어려운 일이고, 그래도 KCC 선수들은 산악 훈련을 처음 했는데 부상 없이 잘 마무리한 것 같아 다행이야.
전: 사실 태백에서 훈련한다고 우승한다면 모든 팀들이 다 여기로 올 거야. 우리가 바라는 건 정신력이잖아. 인내와 극기를 스스로 깨우치고 이겨내는 법을 배워야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거니까. 사실 이 무지막지한 더위에 선수들을 보면서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고, 잘 이겨냈으면, 그래서 긴 농구 시즌 동안 여기서 닦은 체력들이 베이스가 될 수 있길 바라는 거잖아.
강: 전 선수들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자신을 속이지 말고, 감독을 속이지 말라’고. 이 훈련을 너 자신을 위해 하는 거지, 선수들이 감독이 안 보면 대충 뛰다가 감독이 지나가면 막 뛰는 시늉을 할 수도 있잖아. 우리 팀에는 그런 선수는 한 명도 없지만 극한 상황, 모든 걸 때려치우고 싶은 상황을 이겨내는 선수가 시즌 들어가서도 잘하는 것 같아요.
전: 훈련을 하다보면 일등하는 선수는 항상 일등이고 꼴찌로 들어오는 선수는 항상 꼴찌하고, 그러지 않아? 꼴찌하는 선수는 분명 이유가 있어. 조금 더 노력하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선수가 그걸 넘어서지 못하거든. 그런 선수를 볼 때 안타깝지.
그때 왜 그랬어?
전: 이 질문과 관련해선 허재한테 물어 볼 게 있어. 지난 1월 27일 KT와 KCC 정규리그 5차전에서 김도수가 허리 부상을 당했잖아. 그 부상으로 시즌을 접어야 했고 우리 팀으로선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고. 그런데 당시 허 감독이 나한테 전화 한 통 해줄 줄 알았는데 안 하더라고. 조금 섭섭했었지.
허: 형, 제가 만약 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전화했을 거예요. 하지만 굉장히 충격받고 마음 아파하고 있을 분한테 상대팀 감독의 전화가 오히려 더 부담만 주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나중에 편한 자리에서 얘기해야지 했던 게 형한테는 괘씸한 놈이 되고 말았던 거죠. 이해해 주실 거죠?
전: 이미 다 지난 일인데 뭐(웃음).
강: 저도 전 감독님께 한 가지 말할 게 있어요. 표명일이 FA 신분이 돼 KT로 옮겨갔을 때 솔직히 만감이 교차했어요. 그래도 한 가지! 우리가 명일이를 잡지 못해 보내야 한다면 제가 좋아하는 전 감독님 밑으로 가는 게 낫다 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좀 불편한 부분이 있긴 있었죠?
전: 그래 알아. 나도 후배 팀에서, 그것도 전에 몸 담고 있던 팀에서 선수를 데려온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어. 그래도 동부는 새로운 가드진이 풍부하고 서른 여섯 살의 명일이를 내보낸다고 해도 큰 공백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작업을 했던 거지. 그 과정에서 동희랑 오해가 빚어지기도 했지만 금세 풀었잖아. 솔직히 나 그때 여러 가지로 힘들었다. 내가 의지했던 (신)기성이도 다른 팀으로 가게 되고 명일이도 어찌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인간 관계에 대해 고민이 많았었다고.
식사와 함께 술잔이 돌긴 했지만 아무도 전창진 감독한테 술을 권하는 사람이 없었다. 폭탄주 한 잔에 응급실에 실려간 ‘화려한’ 전적 때문이다. 세 감독은 소속팀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솔직한 의견을 나타냈지만 올 시즌 모두 4강 진입을 노리는 것만큼은 공통적인 목표였다. 큰형 전창진 감독의 후배 감독들을 아우르는 넉넉함과 여유, 둘째 허재 감독의 카리스마 내면에 숨겨 있는 속 깊은 정, 막내 강동희 감독의 형들을 배려하고 위하는 따뜻한 마음씨…. 코트 밖에서는 ‘패밀리’로 코트 안에서는 ‘경쟁자’로 만나는 세 사람의 ‘우정+애정’이 태백에서 단단히 똬리를 틀고 있었다.
태백=riveroflym@ilyo.co.kr
▲ 기자가 호기 있게 부산 KT 산악 훈련에 동참했지만 얼마 못 가 선수들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
“정말 뛰시려고요? 에이 안 될 걸요”
지난 8월 4일 오후, 태백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오투리조트 입구에 부산 KT 선수들이 나타났다. 오전에 체육관에서 훈련을 한 그들은 오후에 산악훈련이 예정돼 있었고 오투리조트 입구에서부터 해발 1330m에 위치한 태백선수촌까지 이어진 8.4㎞의 심한 경사 길을 걷는 것도 아닌 달려서 올라가야 하는 스케줄이다. 이날 태백의 낮 기온은 섭씨 35도!
기자가 이 훈련에 참여해 보겠다고 하자, 전창진 감독이 두 손을 저으며 만류한다. 선수들 뒤꽁무니만 쫓다 그만둘 것이라며 자신과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자고 권유한다. 적잖이 걱정은 됐지만 오기로 정중히 거절하고 선수들 몸 풀기 훈련부터 동참하면서 크로스컨트리를 준비했다. 준비 운동만 20여 분. 몸만 푸는 데도 벌써부터 저질체력의 증세가 여실히 드러났다. 주장 조동현과 표명일이 기자를 전담하고 함께 보조를 맞춰가면서 훈련을 했다. 표명일은 “정말 뛰시려고요? 에이 안 될 걸요”하며 묘한 눈웃음을 짓는다. 과묵한 조동현은 기자의 산악 훈련 동참에 대해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냥 감독님이랑 차 타고 오세요”라는 말로 기를 팍팍 죽인다.
드디어 출발! 이정래 트레이너의 구호에 맞춰 산으로 달려가는 선수들. 처음엔 기자도 호기 있게 선수들과 함께 뛰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경사진 길을 뛰어서 올라가려니 200m도 못 가서 숨이 차 올랐다. 앞서 나가던 선수들은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지고 기자만 혼자 달랑 남게 되었다. 그때 승용차에 탄 전 감독이 지나가면서, “어서 차에 타라니까. 이 기자 기다리려면 밤새울 것 같은데”라면서 은근히 회유와 협박(?)을 해왔다. 걸어가기에도 벅찬 길을 뛰어서 간다는 건 도저히 무리라는 생각에 어쩔 수 없는 척하며 전 감독의 차에 올라탔다. 한참을 올라가니 마지막에 뛰고 있는 박상오가 보였다. 얼굴 표정만으로는 도저히 뛸 수 없을 것 같은데도 걷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뛰어 올라가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선두는 윤여권. 윤여권은 산악훈련 때 1위를 도맡아 하는 선수라고 한다. 마른 체형이지만 어렸을 때 달리기를 잘해서인지 산악 달리기도 그한테는 큰 숙제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전 감독은 중간 중간 차를 세우고 선수를 독려하고, 달리기를 포기한 기자는 물통을 들고 선수들 머리에 물을 뿌리며 더위를 씻어주려 하는데, 이미 기자의 낙마를 예상했던 표명일은 기자를 보자마자, “에이, 뭐예요? 선수촌까지 뛰어 오신다면서요?”하며 잔뜩 비웃고 올라갔다.
태백선수촌에 미리 올라가서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예상대로 윤여권이 1등으로 들어온다. 속속 선수들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지난 시즌 허리 부상으로 6개월가량 재활을 했던 김도수한테 다가갔다. 땀으로 흠뻑 젖은 유니폼이 너무 무겁다며 벌러덩 매트 위에 누워버린 그는 “태백훈련이 힘은 들어도 시즌 들어가면 이 운동이 왜 필요한지 느끼게 해줘요”라면서 “감독님 오시고 나서 프로도 이렇게 심하게 운동하는지를 처음 느꼈습니다”라고 말했다. 주장 조동현은 “태백전훈이 잡히면 가기 전부터 선수들이 심란해 해요”라면서 “그래도 이 훈련을 마치고 나면 할 수 있다는,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선수들 사이에 응집력이 더 좋아진다는 사실이죠”라고 설명했다.
선수촌에서 다시 내려갈 때도 선수들이 뛰어갈까? 이에 대해 전 감독은 “그러다 다리 부상당하게. 내리막길은 안 뛰어요. 내려갈 때는 편안히 버스 타고 가지”라고 얘기한다. 버스에 올라타는 선수들, 오늘 하루도 이렇게 마무리하는구나 하는 안도감과 또 다시 해냈다는 만족감이 동시에 오버랩되는 표정들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