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미국 법원의 통지서에 그룹 핵심 임원들은 영문을 모른 채 안색이 창백해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소송을 제기한 사람이 A그룹의 전직 직원이라는 사실이었다.
사건의 내막은 이랬다. 90년대 후반 A그룹 총수인 C씨는 회사일로 열흘 정도 미국을 방문했다. 당시 IMF사태로 기업들의 수출이 최대 화두였던 탓에 C회장 역시 직접 해외시장을 찾아가 바이어들과 접촉하고 다녔다. C회장은 호방한 성격에 사생활도 비교적 깨끗한 편이었다.
여독 탓이었을까. 서양 음식에 식상해 있던 C회장은 미국의 한 도시에 있는 한국음식점을 찾았다. C회장은 오랜만에 김치찌개와 삼겹살을 시켜 포식했다. 그런 뒤 소주를 몇잔 들이키자 기분이 최고였다.
일이 벌어진 것은 그때였다. 취기가 오른 C회장에게 미국 현지법인에서 근무하는 T씨가 흥미로운 제안을 하나 했다.
“회장님 여독도 푸실 겸 제가 자리를 한 번 보아드릴까요?”
가뜩이나 취기가 올라 기분이 좋아진 C회장은 이 직원의 제안에 귀가 번쩍 트였다.
“그게 뭔데?”
“제가 잘 아는 여잔데, 오늘밤 회장님 좀 모시라고….”
뜻밖의 제안에 C회장은 가슴속에서 묘한 흥분이 일었다.
C회장의 속마음을 읽은 이 직원은 문제의 여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10여 분 후에 그 여성은 술자리에 합석했다. C회장을 비롯해 함께 동행한 임원 두 사람, 그리고 직원 T씨와 문제의 여성 등 다섯 명은 밤늦도록 술자리를 가졌다. 그러다가 임원들은 술에 취해 호텔로 가버렸고, 직원 T씨도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 나갔다. 남은 사람은 C회장과 문제의 여성 두 사람뿐이었다.
현지 지리에 어두웠던 C회장은 문제의 여성에게 호텔로 자신을 데려다 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호텔로 함께 가게 됐고, 문제의 여성은 호텔방까지 C회장을 데려다 주었다.
사건은 그때 터지고 말았다. 호텔방에 들어간 C회장은 오랜만에 여자의 몸과 맞닿자 자신도 모르게 이성을 잃고 말았다. 게다가 술기운까지 올랐으니 그는 이미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버렸다. 결국 C회장과 문제의 여성은 그날밤을 호텔에서 함께 보내고 말았다.
그런 뒤 며칠 후 C회장은 귀국했다. 물론 귀국 후 C회장은 미국에서 있었던 일을 까맣게 잊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미국 법원에서 C회장 앞으로 출두통지서가 날아온 것은 이 일이 있은 지 정확히 1년 뒤였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있던 C회장은 갑작스런 법원의 통지서에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자칫 미국에서 있었던 사실이 공개라도 되는 날엔 망신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C회장은 즉시 측근 임원을 미국으로 보내 사태를 알아보도록 지시했다. 이 임원이 파악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소송을 제기한 문제의 직원 T씨는 A그룹의 현지법인에서 4년째 근무하고 있다가, 소송을 제기하기 얼마 전 본사로 다시 복귀하라는 명령을 받게 됐다. 그러자 T씨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다며 회사의 명령을 거부했고, 계속 미국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그러나 이미 발령이 난 사항을 다시 뒤집기도 어려워 회사와 T씨는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던 중 T씨는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그는 사표를 제출하자마자 C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T씨가 제기한 소송 사유는 ‘부당해고’였다. 미국에 근무하는 자신을 본사로 발령낸 것은 사실상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소장에 담긴 내용이었다.
T씨는 소장에서 “C회장이 미국에 출장왔을 때 유부녀와 간통까지 하는 등 온갖 추잡한 일까지 시켰다. 그런데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고했다”는 주장을 폈다.
물론 이 소송에서 부당해고 부분은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인 해석이었다.
그러나 A그룹측으로선 정작 걱정은 법정에서 다루어질 C회장의 미국내에서 있었던 행적에 대한 부분이 까발려질 것이라는 점이었다. 만약 그 같은 행적이 사실로 드러나게 되면 그는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는 데다, 사업상 큰 피해를 받을 수도 있었다.
결국 C회장은 고심 끝에 T씨와 협상을 하기로 결정했다. 핵심 측근 임원인 B씨가 이 협상을 맡게 됐고, 그는 미국으로 곧바로 건너가 T씨가 소송을 자진 취하하도록 유도했다. 밀고당기는 협상 끝에 T씨는 스스로 소송을 취하하면서 일단 이 문제는 종결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쯤에서 끝나지 않았다. T씨와의 협상이 매듭된 뒤 이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은 한 달 뒤 C회장과 하룻밤을 보낸 문제의 여성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여성은 유부녀였다. 그녀는 자신이 하룻밤을 보낸 남자가 C회장이라는 사실을 알고나서 남편에게 이 같은 사실을 고백했고, 남편과 이 여성은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결국 이들 부부는 공동으로 C회장을 상대로 법원에 고소장을 낸 것이었다.
문제가 봉합된 것으로 알고 있던 C회장측은 한 달 만에 다시 날아온 미국 법원의 통지서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이번에도 T씨와의 협상을 맡았던 임원이 미국으로 건너가 문제의 여성측과 접촉했지만 간단하게 풀리지 않았다.
‘봉’을 잡았다고 생각한 문제의 여성은 소송 취하조건으로 거액을 요구했다. 돈을 주지 않으면 한국내 언론에도 이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C회장측은 이 문제로 무려 반년이나 시달렸다. 그러다가 해를 넘겨 사건은 무사히(?) 처리됐다. 어떻게 처리됐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소송 자체는 모두 취하됐다.
나중에 전해진 얘기에 의하면 C회장은 이 문제로 적지 않은 가정불화까지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C회장의 부인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병원에 입원하는 등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다.
정선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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