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전문기자 |
친구이자 같은 야구선수로 대호의 엄청난 대기록을 향해 진심으로 박수와 응원을 보내주고 싶고, 저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극을 받기도 합니다.
요즘 우리 팀 선수들은 저한테 ‘슈퍼맨’이라고 부릅니다. 엄지손가락 인대가 손상돼도, 상대 투수의 공에 무릎과 손등을 맞아도 멀쩡히 야구를 하고 있으니까요. 지난 13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기 때도 손등에 공을 맞았는데 맞는 순간 ‘딱’하는 소리가 너무 커서 아픈 건 고사하고 짜증이 마구 몰려왔습니다. 다행히 트레이너가 이상이 없다고 얘기를 해서 1루로 걸어 나가긴 했지만 요즘엔 이상하게 부상 위험에 자주 노출이 되고 있네요.
혹시 그거 아세요? 제가 우리 팀에서 나이로만 서열 두 번째라는 사실을. 외야수 셜리 던컨이 서른한 살로 최고참이고 그 다음이 스물여덟 살 ‘무빈이 아빠’입니다. 사이즈모어가 있을 때는 힘들 때 의지도 하고, 제가 잘 못할 때는 사이즈모어가 제 몫까지 열심히 방망이를 휘둘러줬기 때문에 부담도 덜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부상으로 그 친구의 존재는 찾아볼 수도 없고, 제 주변에는 제가 챙겨야 하는 나이 어린 선수들, 새로 이적해 온 선수들만 있을 뿐이니 종종 버겁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 앞뒤로 좋은 타격감을 갖고 있는 선수들이 빵빵하게 버텨준다면 상대팀 투수들도 절 일부러 거를 순 없을 겁니다. 그런데 주자 2·3루에 1아웃이나 2아웃이 돼도 무조건 고의사구로 내보내려는 투수들을 상대하다보면 안타, 타점을 내기가 결코 쉽지가 않아요. 제가 못 치면 우리 팀이 질 수 있다는 강박관념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잘 칠 때, 팀이 패한 적도 많았지만 말이죠.
클리블랜드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생활할 때는 야구가 안 돼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게임을 치르고 나서도, 집으로 돌아가면 아이들과 아내가 절 기다려주고 있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야구를 잊곤 했어요. 가족들이 모두 애리조나로 돌아간 지금은 집에 가서도 야구 생각만 하게 되더라고요. 환장할 노릇이죠^^. 가족들이 왜 절 놓고 애리조나로 돌아갔냐고요? 무빈이 야구 때문이죠. 학교 문제도 있고요. 홈경기 때 빼놓고는 매주 원정을 다녀야 하니까 아내 입장에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정착할 곳이 필요했고, 그런 고민 끝에 애리조나에 집을 장만해서 그곳을 베이스캠프로 삼은 뒤 가족들이 클리블랜드로 오거나 제가 원정 중일 때 원정지에서 해후하는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힘들어요. 아이들도 보고 싶고, 아내가 해주는 따뜻한 밥도 먹고 싶고….
오늘은 시애틀 매리너스와 클리블랜드 홈에서 2차전을 갖습니다. 시애틀에서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된 초기에는 시애틀만 만나면 무조건 잘 해야겠다는 욕심을 냈어요. 이상하게 승부욕이 더 강렬해지고 오기도 생기더라고요. 하지만 지금은 시애틀도 다른 여러 팀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고 이젠 시애틀에 대해 감정을 느낄 만큼 제 환경이 여유롭지도, 아쉽지도 않은 이유 때문일 거예요.
대호가 10연속 홈런도 쏘아 올릴까요? 친구의 맹활약이 지쳐가는 제 심신을 조금이라도 위로해주고 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네요.
클리블랜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