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부터 김승영 두산 단장, 김재하 삼성 단장, 김태룡 두산 본부장. |
야구단의 조직은 복잡하고 방대하다. 직접 경기에 뛰는 선수와 이들을 지휘하는 코치진부터 선수단을 지원하는 프런트까지 대개 한 구단마다 100명 넘게 근무한다. 이 가운데 프런트의 역할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프런트(Front Office의 준말)는 말 그대로 야구단이란 복잡한 조직을 앞에서 이끄는 존재다. 구단 운영서부터 회계, 마케팅 및 판촉, 구매, 구장 운영, 트레이너, 홍보 등 그라운드 밖의 모든 업무를 담당한다. 이 프런트를 이끄는 총책임자가 바로 단장이다.
흔히 단장을 구단의 ‘얼굴마담’쯤으로 아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단장은 프런트뿐만 아니라 감독과 코치진 등 현장 조직 구성에 관한 인사권을 쥐고 있다.
최종준(현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전 LG 단장은 단장의 역할을 가장 잘 파악한 이였다. 그는 프런트와 현장의 권한과 책임을 선박회사의 경영에 비유하곤 했다. “선박 회사(프런트)는 훌륭한 선장(감독)을 임명하고 선장을 도와 항해를 책임질 항해사와 갑판장(코치진) 등의 숙련된 전문가들을 잘 모집해야 한다. 이때 가능하면 선장과 호흡이 잘 맞는 전문가들을 구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인사의 최종 결정은 역시 회사 경영자(단장)가 내려야 한다. 왜냐하면, 선장은 어디까지 한시적인 자리지만, 선박 회사는 그 수명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선장이 한시적인 자리란 건 정확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선박회사 경영자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국내프로야구에서 감독과 단장은 공동운명체다. 팀 성적이 부진하면 동반 사퇴하거나 둘 가운데 한 명은 옷을 벗어야 한다. 대개는 감독이 희생양이다. 예외가 있긴 했다. 2007년 KIA 타이거즈다.
당시 KIA 최고위층은 정재공 단장에게 “서정환 감독을 해임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정 단장은 “꼴찌 책임을 감독에게만 물어선 안 된다”며 “계약기간이 1년이나 남은 감독을 자르면 앞으로 관행이 될 수 있다”라고 버텼다. 결국, 정 단장은 그해 9월 감독 대신 자신이 먼저 잘렸다. 그 반대도 있었다. 지방 모 팀의 단장은 야구계에서 ‘악동’으로 불렸다. 별명처럼 그는 팀 성적이 나지 않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감독을 퇴출시키기 일쑤였다. 그런 연유일까. 단장에서 물러난 지 십수 년이 됐지만, 그를 찾는 야구인은 아무도 없단다.
미 메이저리그는 선수 출신 단장이 많다. 그러나 국내프로야구엔 선수 출신 단장이 드물다. 현재 선수 출신 단장은 MBC(LG의 전신) 유격수였던 민경삼 SK 단장이 유일하다. 나머지 7개 구단 단장은 비야구인 출신이다. 과거는 더했다.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단장이 부지기수였다.
1980년대 수도권의 모 팀 단장은 “그라운드가 저리도 넓은데 왜 담장만 넘기려는지 모르겠다”며 “타율 3할을 치려면 공간을 향해 공을 때리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골프광이었던 그 단장은 선수들에게 골프를 배우도록 권유했다. 그리고 선수들이 골프에 채 맛이 들기 전 성적 부진으로 물러났다.
지방의 모 팀 단장도 야구라면 담을 쌓던 이였다. 그러나 구단주에게 잘 보이려 무던히 애를 썼다. 그가 구단주에게 아부(?)하는 방식은 상상을 초월했다. 구단주가 좋아하는 선수를 기용하도록 감독을 압박했고, 구단주가 경기를 보러오는 날이면 선발 로테이션도 무시하고 에이스를 등판시킬 것을 요구했다.
현장의 고유권한을 침범한 대가는 컸다. 팀 성적은 곤두박질쳤고, 선수단은 좌초 위기까지 몰렸다. 이 단장은 오래지 않아 그룹을 영원히 떠나야 했다.
▲ 김조호 KIA 단장(왼쪽)과 민경삼 SK 단장. |
SK 민경삼 단장은 본부장 시절 “무식한 야구인 출신이 구단 운영을 얼마나 알겠느냐”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고려대 출신으로 LG에서 선수와 매니저, 코치를 거쳐 미국 연수까지 다녀왔던 그는 “세간의 편견을 극복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며 “지금도 경영학 서적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용철 KBS 야구 해설위원은 “굳이 선수 출신 단장이 아니라도, 선수 출신 운영팀장과 본부장만 있어도 확실히 팀 색깔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두산 김태룡 본부장, 삼성 최무영, SK 진상봉, 한화 김정무 운영팀장은 모두 선수 출신이다.
그 가운데 김태룡 본부장은 현역 은퇴 뒤 말단 매니저부터 시작해 이사까지 진급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지금의 ‘강팀’ 두산을 만든 보이지 않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선수들이 “다른 팀보다 연봉이 낮아도 김 본부장 때문에 꾹 참고 야구한다”고 말할 만큼 선수단의 신망이 두텁다.
최무영 팀장은 화려함 대신 음지를 지향하는 이다. 다른 팀 운영팀장들과는 달리 1군 경기에 거의 동행하지 않는다. 대구에 남거나 지방을 떠돌며 2군 경기를 살핀다. 유망주를 발굴해 육성하기 위해서다. 그의 노력으로 ‘유망주의 무덤’이었던 삼성은 어느덧 최고의 백업요원을 갖춘 ‘유망주 천국’이 됐다.
공교롭게도 선수 출신이 프런트의 중심인 SK, 삼성, 두산은 몇 년째 상위권을 유지 중이다. 한화도 순조롭게 팀 리빌딩을 진행하고 있다. ‘선수’에만 집착하는 전력보강 대신 이제는 ‘선수 출신’으로 눈을 넓힐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