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가 13일 정부종합청사 별관으로 출근하고 있다. ‘젊고 참신한 40대 후보’라는 처음의 평과 달리 김 후보와 관련된 의혹들이 자고 일어나면 하나씩 쏟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김 내정자를 둘러싼 ‘스폰서’ 논란은 그의 수상한 재테크와 도지사 신분에 맞지 않은 극빈생활이 공개되면서 서서히 수면위로 부상했다. 경남도지사 시절 재산을 축소 신고한 김 내정자는 최근 3년 7개월 사이에 재산이 10배가량 늘었는데도 그 기간에 신용카드 사용실적은 ‘전무’하다시피해 의혹을 사고 있다. 김 내정자는 2006년 말 3800만 원이던 재산이 3년 7개월 만에 3억 7439만 원으로 급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김 후보자 측은 부동산 가격 상승과 도지사 급여를 저축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신용카드 공제신고액이 ‘0’으로 기록된 것도 석연치 않다. 김 내정자가 별도의 소득원이 있어 지출 내역을 노출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 내정자 측은 “신용카드 사용액이 공제 기준액에 못 미치기 때문에 공제를 받지 못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 특위 위원들은 급여 대부분을 저축하고, 신용카드 사용실적이 전무한 배경에는 분명 ‘스폰서’가 존재하고 있을 것이란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김 내정자가 형수와 동생으로부터 빌린 금액이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점도 ‘가족 스폰서’ 논란으로 비화되고 있다. 김 내정자는 2006년 동생 창호 씨와 형수 유 아무개 씨에게서 2억 2300만 원을 빌렸다. 하지만 김 내정자는 2006년 말부터 지난해 말까지 3년 동안 개인채무를 2억 500만 원이라고 신고했다. 무려 3년 동안 본인의 개인채무를 실제보다 1800만 원 적게 알고 있었던 셈이다.
김 내정자는 또 2006년 말 개인채무 등으로 3억 8900만 원 상당의 창원시 용호동에 소재한 한 아파트를 구입했다. 하지만 이때 증가한 그의 채무는 1억8500만 원으로 두 사람에게 빌린 금액보다 3800만 원이나 적다. 가족들로부터 채무를 가장한 ‘스폰’을 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 청문특위 소속 의원들(박영선 박선숙 박병석 이용섭)은 지난 18일 김 내정자의 ‘스폰서’ 의혹을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나섰다. 이들은 “김 내정자가 경남지역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스폰서’ 역할을 한 조직 또는 인맥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며 “김 내정자가 경남도지사 시절 활성화했던 도정 자문기구인 ‘뉴경남포럼’이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뉴경남포럼’은 김 내정자가 2004년 6월 경남도지사에 취임한 뒤 전임자였던 김혁규 전 지사가 만든 ‘경남포럼’을 승계한 모임으로 도지사와 정무부지사를 포함해 주로 경남 출신의 행정·경제·학계·법조계 등 지역 유력 인사들로 구성됐다. 일부 대기업 최고경영자와 중견기업 회장, 이달곤 전 행정안전부 장관 등 행정 관료 출신, 현직 대학 총장과 대학교수, 법조계와 사회단체 인사들이 회원으로 포진해 있다. 특이한 점은 김 내정자에게 수만 달러를 제공한 혐의를 받았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도 이 포럼 회원이라는 사실이다.
▲ 지난 19일 이용섭 의원이 민주당 고위정책회의에서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와 관련된 의혹을 준비한 도표로 설명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김 내정자 부인의 뇌물 수수 의혹 및 낙하산 인사 논란은 ‘스폰서 의혹’의 실체를 규명할 또 다른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청문특위 위원인 이용섭 민주당 의원은 8월 19일 김 내정자의 부인이 2004년 경남지사 보궐선거 직전 경남도가 출자해 만든 경남개발공사의 사장 자리를 대가로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해 적잖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이 의원은 또 지역신문이 이러한 내용을 보도하려 하자 외압을 행사해 발행된 신문 6만 부가 전량 폐기됐고, 이 과정에서 박연차 전 회장이 지역신문에 거액을 투자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4년 5월 경남지사 보궐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김 내정자의 부인 신 아무개 씨는 경남도청 과장으로 퇴직한 강 아무개 씨로부터 “경남개발공사 사장 자리를 달라”는 청탁과 함께 거액의 현금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다. 로비가 성공했던 탓일까. 실제로 강 씨는 김 내정자가 경남지사에 당선된 뒤인 2004년 7월 경남개발공사 사장으로 임명됐다. 당시 경남도는 전임 사장의 잔여임기 동안 사장을 맡도록 돼 있는 공사의 정관을 무시하고 강 씨를 3년 임기로 임용해 한바탕 논란이 일기도 했다.
신 씨의 뇌물 수수 의혹은 2006년 2월 민간부동산 업체인 T 개발 정 아무개 회장이 지역언론인 <조간경남>에 제보하면서 처음 불거졌다. 이 신문은 정 씨의 제보를 토대로 2006년 3월 27일 창간호에 ‘김태호 지사의 인사 관련 뇌물 수수’ 의혹을 기사화해 6만 부를 인쇄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김 내정자의 기사가 실린 신문 6만 부는 돌연 전량 소각됐고, 신문은 다른 기사로 교체해 발행됐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같은 날 김 내정자는 마산 창동의 모 한정식 집에서 이 신문사 사장과 제보를 접한 기자 등과 함께 식사를 했고, 기사를 쓴 이 아무개 상무와 단둘이 밤 늦게까지 술자리를 했다고 한다”며 김 내정자의 외압 의혹을 제기했다.
이 과정에 박연차 전 회장의 연루됐다는 의혹도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박 전 회장은 당시 재정여건이 어려웠던 <조간경남>에 2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박 전 회장이 언론사에 투자한 사실이 없고, 막 창간한 언론사에 투자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며 “김 내정자가 ‘신문 폐기’를 조건으로 박 전 회장에게 요구해 2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8월 20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김 내정자의 부인 신 씨가 인사청탁 명목으로 받은 금액이 3억 원이라는 제보를 받았다”며 “관련 내용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녹취록도 확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녹취록은 언제 공개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의원은 “청문회장에서 김 내정자에게 관련 의혹을 추궁하고 그의 해명과 반박 내용에 따라 하나씩 공개할 방침”이라고 답했다. 김 내정자 측과 강 씨가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사실이 아니라면 검찰 수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라며 “검찰 수사가 이뤄질 경우에 자료를 검찰 측에 제공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신 씨의 인사청탁 수뢰 의혹과 관련해 김 내정자 측 최기봉 실장은 8월 21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전혀 근거 없는 3류 소설 같은 얘기다. 대응가치도 없다”며 “제보자는 사기 혐의로 실형을 산 바 있는 사기꾼이다. 그런 사람 얘기를 듣고 의혹을 제기한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최 실장은 또 박연차 전 회장 연루 의혹에 대해서는 “전혀 근거 없는 소설”이라고 일축했고, 김 내정자와 <조간경남> 사장과의 식사 여부와 관련해서도 “소설 같은 얘기라 답변할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신 씨가 인사와 관련해 거액의 뇌물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는 가운데 김 내정자가 도지사 재임 시절 측근들을 요직에 임명한 것으로 드러나 또 다른 ‘스폰서’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김 내정자는 지난 3월과 4월에 자신의 측근인 이 아무개 씨와 안 아무개 씨를 각각 K 도립대학 총장과 K 개발공사 사장으로 임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3월 10일 총장에 취임한 이 씨는 경남 하동 출신으로 9급 토목직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해 통영시 거제시 김해시 등을 거쳐 김 내정자에 의해 경남도에 발탁된 인물이다. 이 씨는 이후 남해안경제실장(2급)-기획조정실장(1급) 등을 거쳐 K 도립대학 총장에 오를 만큼 김 내정자의 최측근으로 알려졌다. 경남도 고위 간부가 K 도립대학 총장으로 가는 것은 관행처럼 여겨졌으나 이 씨에 대한 학내 여론은 별로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실상 낙하산 인사인 데다 이 씨의 전공이 토목기술이라는 점에서 총장으로 부적격한 게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나왔다고 한다.
김 내정자는 또 퇴임 전인 4월 29일 또다른 측근인 안 씨를 K 개발공사 사장으로 임명했다. K 개발공사 사장은 경남지역 개발을 총괄하는 노른자위 자리다. 안 씨 역시 지방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9급으로 출발해 K 개발공사 사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급부상한 상태다. 경남도청 내부에서는 전체 직군 중 소수에 속하는 토목직 출신들이 요직에 중용된 것에 대해 원성이 자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 도내 일각에서는 김 내정자가 측근들을 요직에 배치한 배경에는 대망론 등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펼치기 위한 노림수가 투영돼 있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른바 ‘스폰서’ 양성 차원에서 자격 미달의 측근들을 요직에 임명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김 내정자 측 최기봉 실장은 “K 도립대학 총장과 K 개발공사 사장에 임명된 측근 이 씨와 안 씨에 대해 충분히 자격이 있는 분들이고 공정한 인사였다”고 답했다.
과연 김 내정자는 청문회를 통해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해소하고 총리실로 직행할 수 있을까. 김 내정자의 총리실행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시한폭탄으로 부상한 ‘스폰서’ 논란 및 그 실체가 어떤 식으로 결론날지 국민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
동창 회사에 부인 위장취업?
실제로 전업주부였던 신 내정자의 부인 윤 아무개 씨(52)는 지난 2007년 모 감리회사로부터 5600만 원의 급여를 지급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이 회사의 회장 이 아무개 씨가 신 내정자의 중학교 동창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윤 씨는 이 회사에 한 번도 출근을 하지 않았으나 신 내정자가 <조선일보>를 그만둔 뒤 이명박 캠프에서 특보로 활동하던 2007년 5600여만 원의 거액을 받았다.
신 내정자는 부인의 위장취업 의혹에 대해 “아내가 아나운서 경력을 살려 임직원들에게 프리젠테이션 교육 등을 했으며 그 회사가 먼저 요청을 해왔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야권 관계자들은 윤 씨가 급여를 지급받은 2007년은 신 내정자가 <조선일보>를 퇴직하고 이명박 캠프에서 활동하던 시절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수입은 없고 지출만 많던 시기라는 점을 감안할 때 친구가 부인 취업 형식을 빌어 사실상 ‘스폰서’ 역할을 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당시 대선정국이 이명박 후보의 승리 가능성에 무게감이 실렸다는 점도 ‘스폰서’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신 내정자는 검증 과정에서 위장전입 5차례, 증여세 탈루 의혹, 부인의 땅 투기 의혹 등이 불거진 데다 부인의 위장 취업 및 ‘스폰서’ 의혹까지 제기돼 장관 입각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을 겪게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실제로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복수의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인사는 의혹이 해소되지 않으면 정부에 부담 주지 말고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 옳다”며 일부 장관 내정자들의 자진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각종 의혹과 함께 ‘스폰서’ 논란에 휘말린 신 내정자가 산적한 난제를 극복하고 장관직에 무사히 연착륙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청문회 정국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