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에 땀을 쥐는… 손학규 후보(가운데)가 3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됐다. 2, 3위 득표자는 정동영(왼쪽), 정세균 후보(오른쪽).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손 후보는 3일 오후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전당대회 대표·최고위원 경선에서 정동영, 정세균 후보를 누르고 대표 최고위원으로 뽑혔다. 이들 ‘빅3’에 이어 이인영 천정배 박주선 후보가 최고위원으로 당선됐고 조배숙 후보는 최재성 후보에 져 최하위에 그쳤으나 여성 배려 조항에 따라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지도부에 진출했다.
손학규 후보는 대표로 당선된 뒤 “동과 서, 진보와 개혁, …세대와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의 색채가 서로 다르고, 또 권력을 분점하는 ‘순수 집단지도체제’여서 ‘대표 손학규’가 키를 잡은 ‘민주호’가 앞으로 순항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빅3’의 승부는 1, 2위의 표차가 1128표(2.02%)에 그칠 정도로 박빙의 승부였다. ‘대의원 투표 70%, 당원 여론조사 30%’의 비중으로 1인2표제로 실시된 선거에서 가중치로 환산한 종합득표수는 손학규 1만 1904표(21.37%), 정동영 1만 776표(19.35%), 정세균 1만 256표(18.41%), 이인영 6453표(11.59%), 천정배 5598표(10.05%), 박주선 5441표(9.77%), 최재성 4051표(7.27%), 조배숙 1216표(2.18%) 등의 순이었다.
손 후보는 당초 조직표의 열세가 점쳐졌으나, 대의원 투표와 당원 여론조사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대의원 투표 순위는 손학규 7353표, 정세균 7203표, 정동영 6320표의 순이었고, 당원 여론조사는 손학규 4551표, 정동영 4456표, 정세균 3052표였다. 손 후보가 당심과 민심을 모두 얻은 것이다. 만만찮은 호남 지지세에다 수도권, 충청 지역의 지지세가 승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국 지역위원장의 절반을 확보해 탄탄한 조직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진 정세균 후보는 대의원 투표에서는 정동영 후보에게 앞섰지만, 당원 여론조사에서 밀려 종합 3위로 밀려나고 말았다.
‘빅3’ 못지않게 관심이 집중됐던 4~6위의 경쟁에서는 ‘486그룹’이 단일후보로 추대한 이인영 후보가 4위로 당선되는 ‘작은 이변’을 연출했다. 각 계파에서 고르게 2순위 지지를 받은 것이 큰 힘이 된 것으로 보인다. 비토세력이 많은 것 아니냐는 견제를 받았던 천정배 후보가 5위를 차지하며 그나마 체면치레를 했고, 호남 지지세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던 박주선 후보는 기대에 못 미치는 6위에 그쳤다.
이런 구도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대의원들과 당원들이 당의 안정적 관리보다는 2012년 총선과 대선에 대한 비전을 놓고 한 표를 행사했음을 보여준다. 전국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비(非)호남’ 주자를 당의 대표얼굴로 내세워 차기 집권 가능성을 높이라는 게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표심인 것이다.
특히 지난 2년간 민주당을 이끌었던 정세균 후보가 3위로 밀려나고, 그의 측근인 최재성 후보가 탈락한 것은 당내 주류-비주류의 갈등구조를 만든 데 대한 책임, 지난 6·2지방선거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 ‘수권정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한 데 대한 문책성의 여론이 반영돼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동영-천정배-박주선의 비주류연대에 속한 후보가 3명이나 지도부 입성에 성공한 것도 이러한 기존의 주류에 대한 견제심리가 크게 작용한 결과다.
당장 손학규 신임대표는 4일부터 제1야당의 새 항로를 개척해야 할 책무를 떠안았다. 그는 지난 2008년에도 당 대표를 맡아 대선 참패에 빠졌던 당을 추스르는 구원 투수 역할을 맡은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스스로 “잃어버린 600만 표를 되찾아오겠다”는 공언대로 수권정당의 면모를 만들어내는 것이 급선무다.
손 대표는 이날 대표직 수락 연설에서 “지금 이 순간 우리 민주당은 승리의 의지를 전 국민에게 선언했다”며 “이 순간부터 온몸을 바쳐 민주진보 세력의 승리의 역사를 써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힘은 국민에게 있다고 믿고 폭풍처럼 밀고 나가겠다. 동과 서, 진보와 개혁, 노동과 기업, 수도권과 지방, 세대와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민주당을 만들겠다”면서 “이 순간 승리를 위한 대장정을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 앞에 놓여 있는 과제들이 녹록지 않다. 우선 지도부를 형성할 최고위원들의 면면을 볼 때 당 노선을 놓고 삐걱거리는 모습을 연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손 대표가 ‘중도’를 중시하는 ‘실천적 진보’를 강조하고 있다면, 다른 최고위원들은 ‘진보 강화’를 주문할 태세다. 민주당의 해묵은 갈등 소재였던 ‘노선투쟁’이 지도부내에서 점화될 경우 차기 총선과 대선을 대비한 당의 전열정비는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당장 이번 정기국회에서 정동영, 이인영 최고위원 등이 부유세 신설과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 요구 등을 들고 나오며 진보적 색채 강화를 압박할 경우 손 대표의 당 장악력이 시험대에 올라서게 된다.
또한 당내 경쟁관계에 있는 정동영, 정세균 최고위원이 당권뿐만 아니라 잠재적 대권 경쟁자로서 사사건건 ‘지분’을 요구할 경우 일사불란하게 당을 운영할 수 있는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 손 대표가 당내 계파 갈등의 후유증을 극복하면서 당 운영의 주도권을 어떻게 확보하느냐, 여권과의 경쟁에서 박지원 원내대표와 어떠한 협력관계를 형성하느냐가 그에게 주어진 숙제다.
손 대표의 임기는 대선 후보로 나설 경우 대선 1년 전인 2011년 12월까지다. 1년 2개월 남짓의 기간 동안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당내 기반을 확실히 구축하느냐에 따라 그의 대선 가도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이번 전당대회에서 이인영 후보를 지도부에 입성시키면서 확인된 세대교체의 바람도 흡수해야 한다. 486 세력은 전당대회 초반 이인영 후보를 486 단일 후보로 결정하고, 우상호·임종석 전 의원을 중심으로 전국을 누비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당내에선 벌써부터 손 대표의 잠재적 경쟁자는 정동영, 정세균 최고가 아니라 이인영 최고위원이라는 섣부른 분석도 나오고 있다. 손 대표가 ‘6인6색’의 지도부를 이끌며 어떤 색깔의 민주당을 만들어갈지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