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중국을 방문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다롄의 호텔에서 승용차에 오르는 모습이 포착됐다. 로이터/뉴시스 |
정보당국과 외교 소식통들 사이에서는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 배경과 관련해 북한 후계구도 마무리,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 수해피해 및 경제난 타개를 위한 지원 요청, 6자 회담 재개를 앞두고 ‘미국 길들이기’ 전략 등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이 자신의 후계자로 알려진 3남 김정은을 이번 방중에 대동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후계구도를 마무리하기 위한 행보일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북한 소식통들은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중국행을 선택한 배경에는 후계구도 안착 등 북한 지도체제와 관련한 특이사항 내지는 중대한 변수가 자리잡고 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특히 9월 초로 예정된 조선노동당 대표자회의를 앞두고 후계구도 안정화와 관련 후진타오 등 중국 지도부와의 긴밀한 협의가 필요했을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 위원장이 방중 당일(26일)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이 중국 지린시 위원중학교였다는 사실은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김일성 주석의 유적지인 위원중학교를 방문한 것은 후계구도 문제를 확고히 하려는 김 위원장의 대외적인 메시지와 강한 의지가 내포돼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 위원장의 경우 1980년 소집된 제6차 당대회에서 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비서로 선임됨으로써 대내외적으로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임을 공식화한 바 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은 이번 방중길에 김정은을 동행시켜 김일성 유적지를 방문한 뒤 9월 당대표자회의에서 공식 직함을 부여하는 등 자신이 밟았던 것과 비슷한 절차를 밟게 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또 당대표자회의에 앞서 김정은을 중국 지도자들에게 선보여 북한의 세습체제를 용인받으려는 포석도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이 지난 6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3차 회의에서 김정은의 든든한 후원자인 장성택 당 행정부장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발탁한 것이나 선전선동 사업을 맡아온 강능수 문화상을 부총리에 임명한 것도 김정은 권력승계를 염두에 둔 사전포석으로 분석되고 있다.
북한의 세습체제 가속화 움직임과 맞물려 김 위원장의 건강 악화설도 재부상하고 있다. 불과 석 달 전에 중국을 방문한 바 있는 김 위원장이 긴박하게 방중 카드를 꺼내든 배경에는 건강 악화 등 말 못할 사정이 투영돼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대북 소식통들 사이에서는 최근 김 위원장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대북 단파 라디오 ‘열린북한방송’은 김 위원장이 8월 2일부터 14일까지 함경남도 함흥의 서호초대소로 프랑스 의사 2명을 불러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와 뇌혈관계, 중추신경계 정밀검사를 받았다고 8월 20일자로 보도하기도 했다. 일본 <도쿄신문>도 8월 12일 김 위원장의 5월 방중 직후 중국 정부가 ‘김 위원장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요지의 정보를 미국 측에 전달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자신이 건재할 때 세습체제를 매듭지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안고 있는 김 위원장이 심상치 않은 몸 상태를 감안해 극비 방중 카드를 꺼내든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이번 방중 목적이 북핵 문제와 관련한 6자회담 재개 움직임과 맞물려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과거에도 북핵 문제가 한반도 주변국들의 핫이슈로 부상했을 때 중국을 방문해 경제적 지원을 담보로 6자회담 복귀를 선언하는 실리를 챙긴 바 있다. 특히 현재 북한 사회는 화폐개혁 실패와 대규모 홍수피해로 경제난이 극심해지면서 민심 또한 극도로 흉흉해진 실정이다. 김 위원장이 9월 당대표자회의를 통해 세습체제를 공식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심의 동요를 차단할 필요가 있고, 그 대안으로 중국으로부터 대대적인 경제적 지원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절박감이 중국행 열차에 오른 배경이 됐을 것이란 관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정보당국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 다음날 방중길에 올랐다는 점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8월 25일 16년 만에 북한 땅을 밟은 카터 전 대통령은 끝내 김 위원장을 만나지 못하고 27일 오전 귀국길에 올랐다. 미국은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 배경에 대해 북한에 억류 중인 미 국적의 아이잘론 말리 곰즈 씨 석방을 위한 개인적인 방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국내 언론과 외신들은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비롯한 북미관계 해법과 관련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메신저’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카터 전 대통령이 당초 귀국 일정(26일)을 하루 늦춘 것도 김 위원장과의 면담 가능성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김 위원장과 카터 전 대통령이 애초부터 면담 계획이 없었는지 아니면 김 위원장이 일부러 면담을 회피했는지 여부는 명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만 과거 관례를 무시하고 카터 전 대통령을 ‘홀대’한 것은 북한이 미국 측에 고도의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 외교 소식통 일각에서는 6자회담 재개를 앞두고 김 위원장이 ‘미국 길들이기’ 차원에서 카터 전 대통령과의 면담을 일부러 회피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북한 내부의 급박한 정세 변화는 차치하더라도 카터 전 대통령이 방북한 다음날 김 위원장이 곧바로 방중길에 오른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행보라는 것이다.
과연 김 위원장이 또다시 꺼내든 방중 카드 이면에 숨겨진 진짜 노림수는 무엇일까. 세습체제 구축이든 경제난 해결을 위한 고육책이든 분명한 건 현재 북한 사회 곳곳에 이상징후가 포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 정세를 달구는 핵뇌관으로 부상한 김 위원장의 방중 목적 및 향후 행보에 국민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
MB-박, 우리 ‘통’한 거야
특히 천안함 사태 이후 남북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지만 정부당국은 좀처럼 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G20 정상회의가 석 달여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키기 위해 하루빨리 대북관계 해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정치권 일각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대북 특사로 파견해야 한다는 이른바 ‘박근혜 대북 특사설’이 고개를 들고 있어 사실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근혜 특사설’은 8월 21일 이명박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비공개 회동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서히 수면위로 부상했다. 명분을 중시하는 박 전 대표가 그동안 번번이 좋은 결과를 맺지 못했던 이 대통령과의 회동에, 그것도 비공개 회동에 응했다는 점에서 분명 정치적 명분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제안이 담보됐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 대통령에게는 실리를, 박 전 대표에게는 명분을 실어줄 수 있는 공통분모로 다름 아닌 ‘대북 특사’를 꼽고 있다. 이 대통령 입장에서는 북한의 지도체제 변화 징후와 오는 11월 G20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선 어떻게든 남북 긴장 관계를 해소해야 한다. 따라서 여권 내에서 실타래처럼 꼬인 대북관계를 해소할 적임자로 거론되고 있는 박 전 대표에게 ‘대북 특사’를 제안했을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는 것이다.
박 전 대표 입장에서도 ‘대북 특사’는 정치적 명분은 물론 주춤했던 대망론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그야말로 ‘양수겸장’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 일부 친박계 의원들은 벌써부터 박근혜 특사론에 군불을 때고 있다. 친박계인 유기준 의원인 8월 24일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2002년 2월에 박 전 대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적이 있다”며 “남북관계나 대중관계 회복을 위해서 특사로 나서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박 전 대표는 국익을 위해서는 어떠한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 분”이라며 대북 특사론에 힘을 실어줬다. 또 다른 친박계인 구상찬 의원도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현존하는 정치인 중에 김정일 위원장과 만난 분은 박 전 대표가 유일하다”고 그 가능성을 언급했다.
세종시 문제 등 굵직한 현안과 관련해 서로 대립각을 세웠던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으로 상징되는 두 사람이 과연 ‘대북 특사’라는 윈-윈 카드로 정치적 화해를 모색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