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상을 딛고 K리그에서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는 설기현은 후반기 들어 4골 1도움으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정말 오랜만이다. K리그에서 설기현 선수를 보니까 감회가 새롭다. 그런데 올 시즌 초 부상과 수술 등으로 전반기를 개점휴업하다시피 했다. 힘든 시간을 보냈으리라 짐작된다.
▲무엇보다 팀에 미안했다. 1년 계약을 하고 포항으로 돌아왔을 때는 나름 각오가 대단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고 반드시 해내야 했다. 왜냐하면 월드컵에 나가야 했으니까. 하지만 왼쪽 무릎 연골 파열로 수술대에 올랐을 때에는 한동안 상실감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했다. K리그 복귀의 가장 큰 배경이 남아공월드컵이었는데 그걸 이루지 못한 상처가 꽤 크고 깊었다.
―지금은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한 건가?
▲아직도 후유증이 있다. 몸 상태가 온전하지 않지만 골도 터지고 팀도 연승을 이어가니까 기분은 좋다.
―지난 7월 25일 수원 삼성과의 홈경기에서 K리그 데뷔 첫 골을 터트렸다. 그 골이 터지기까지 우여곡절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K리그 경기에 나선 지 세 번째 만에 터진 골이었고, 1년 만에 맛보는 골맛이기도 했다. 공격수의 임무를 맡아 어떻게 해서든 골을 넣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오랜만에 첫 골이 터져 기분이 좋았다. 내가 만약 20대 초반에 K리그에서 데뷔를 했더라면 큰 부담은 없었을 것이다. K리그에선 신인이지만 실제론 나이 먹은 신인 아닌가(웃음). 오랫동안 유럽에서 축구 생활을 했고 후배들도 나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탓에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조급증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지금은 책 읽는 시간이 많지 않을 것 같다(웃음). 벨기에 시절에는 언어 소통이 안 돼 일부러 책을 들고 다니면서 책만 읽고 지냈다고 하지 않았나.
▲벨기에에선 읽기 싫어도 읽어야 했다(웃음). 여기선 책 말고도 할 게 너무 많다. TV도 보고 가끔 아는 사람도 만나고 대부분 버스로 이동하니까 적절한 휴식도 취해야 하고…. 포항은 내가 좋아하는 홍명보 황선홍 선배가 거쳐 간 팀이다. 그 형들이 입었던 유니폼을 내가 입고 뛰고 있다는 사실이 묘한 흥분과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설기현은 이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황선홍 선배를 한때 라이벌로 생각한 적이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내용을 꺼내 들자 설기현은 정색하면서 “정말 내가 그렇게 말했나?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돌지 않고서 감히 황선홍 선배를 상대로 라이벌 운운 했을 리가 없다. 뭔가 잘못 전달된 것 같다”며 강하게 부정했다. 지난 부산전에서 경기 후 황선홍 감독을 찾아가 인사를 하려 했지만 이미 황 감독이 벤치를 떠나 라커룸으로 들어간 바람에 인사를 하지 못했다는 얘기도 전한다.
―벨기에에 처음 진출할 때만 해도 ‘잠깐’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올 거라는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처음에 벨기에라는 나라를 갈 때는 그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리그가 어떠한지, 아무 것도 모르고 무작정 비행기를 탔었다. 그저 해외 진출을 한다는 사실에 마냥 마음이 부풀었고 기대감이 엄청났다. 사실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나간 터라 거기서 살아남지 못하면 한국으로 돌아올 수도 없고 갈 팀도 없기 때문에 ‘모 아니면 도’의 절박한 심정이 됐었다. 그러다 대표팀의 어떤 선수가 이런 얘길 했다고 하더라. “저 친구는 1년도 견디지 못하고 돌아올 것이다”라고. 그 얘기 듣고 자존심도 상하고 상처를 받았다. 정말 말 한마디 못하는 상황에서 오기로 버텨낸 것 같다.
―설기현 선수가 프리미어리그에 첫 발을 내딛은 2006년 가을, 박지성 이영표 선수와 함께 세 명의 선수가 모두 프리미어리그를 뛰던 시절이 있었다.
▲레딩 입단 초기에는 골도 터지고 하면서 관심을 많이 받았었다. 영표 형과 지성이가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걸 지켜만 보다가 나도 그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사실에 벅찬 감동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아시다시피 많은 우여곡절이 있지 않았나.
―프리미어리그 3인방 중 지금은 박지성 선수만 여전히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 남아 있다.
▲정말 대단한 일이다. 맨유란 최고의 클럽에서 팀의 주축 선수로 뛰고 있다는 건 팬들이 밖에서 지켜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지성이의 뛰어난 실력도 있지만 모두가 인정하는 성실함, 영리함 등이 생존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지성이는 자신이 맨유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감독과 팀이 자신한테 무엇을 원하는지 빨리 파악했고 그에 맞는 선수가 되도록 노력을 많이 했다. 지성이가 남아공월드컵에서 주장을 맡아 뛰는 걸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오갔다. 지성이야말로 대표팀 캡틴으로 충분한 자격이 있는 선수이고 그에 걸맞은 활약을 멋지게 해냈다. 한마디로 박지성다웠다(웃음).
―K리그에 복귀한다고 했을 때 절친 이영표 선수가 어떤 반응을 나타냈는지 궁금하다.
▲나중에 기회되면 한 팀에서 뛰어보자고 말하더라. 이전부터 대표팀에서 영표 형이나 남일이 형을 만날 때 했던 말이 있다. ‘우리 기회되면 한 팀에서 공격수 미드필드 수비수를 맡아 팀이 우승할 수 있도록 뛰어보자’라고. 내가 먼저 포항으로 왔는데 두 형들이 포항으로 오지 않는 한 다 모여서 뛴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나(웃음).
설기현에게 마음 맞는 선수들을 위주로 해서 베스트 11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결국엔 내가 최고의 대표팀이었다고 생각하는 2002년 월드컵대표팀 멤버들을 베스트 11으로 꼽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골키퍼 이운재를 비롯해서 김태형 최진철 홍명보 김남일 이영표 박지성 그리고 설기현 황선홍 등의 이름들이 줄줄이 나열됐다. 설기현의 표현대로 정말 ‘환상의 멤버’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사우디아라비아 알 힐랄 팀에서 6개월가량 임대 생활을 하기도 했었다. 그 즈음에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던 걸로 아는데.
▲풀럼에서 사우디로 임대될 당시 상황이 정말 안 좋았다. 시즌 초반에 골도 넣고 했는데 감독이 제대로 출전 기회를 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감독에 대한 실망이 컸다. 영국에 있는 것 자체가 싫었다. 그 당시 아내도 아프고 해서 정신적인 부대낌이 컸다. 벤치만 달구고 있으면서 ‘뭣도’ 아닌 선수로 머무는 것보다 내가 주전으로 뛸 수 있는 팀이 절실히 필요했다. 왜냐하면 월드컵 때문이다. 때마침 포항에서 러브콜이 있었고 잠시 고민 끝에 더 이상 프리미어리그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지 않는다는 판단에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 것이다.
▲ 지난 7월 25일 설기현은 세 경기 만에 K리그 데뷔골을 넣었다. 사진은 수원 수비수 양상민에게 집중견제를 당해 유니폼이 찢어지고 있다. 사진제공=포항스틸러스 |
▲박태하 코치님이 종종 포항으로 내려오셔서 내 몸 상태를 체크하고 돌아가시곤 했었다. 하루는 전화로 ‘너 요즘 운동하고 있냐?’라고 물어보시더라. 거짓말로 ‘내일 모레 복귀하려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당시 몸은 복귀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지만 아직도 훈련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면 대표팀에 불러주시지 않을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한 것이다. 솔직히 4월 말쯤 마음을 접었다. 아무리 피나는 재활을 해도 예상보다 몸이 더디게 회복되는 상태라 도저히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허정무 감독님이 최종엔트리 발표를 하실 때는 내심 ‘혹시나’하는 생각을 갖게 되더라. 월드컵 경기는 6월에 시작하는 거니까 더 노력하면 가능할 수 있다는 계산도 했다. 결국 내 이름이 없는 걸 확인한 순간 이해도 됐고 아쉬움도 컸다.
―월드컵 때문에 일부러 수술 시기를 당겼다는 얘기도 들었다.
▲3월 중국 전지훈련 중 왼쪽 무릎 연골이 손상되는 부상을 입었다. 곧바로 서울 백병원으로 향했다. 그날이 목요일이었는데 담당 주치의 선생님이 개인적인 사정을 대시며 다음 주 월요일 수술을 하자고 말씀하셨다. 난 하루가 급한 상태라 지금 당장 수술을 했으면 좋겠다고 간청했다. 정말 선생님을 붙들고 매달렸다. 결국 다음날 수술을 하게 됐다. 급한 마음에 수술 당일부터 재활을 한답시고 자전거를 탔다. 수술 후 회복 시간이 필요한 법인데 어떻게 해서든 빨리 회복하려고 무리를 한 것이다. 그 당시에는 재활만 열심히 하면 충분히 월드컵에서 뛸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재활이 길어질수록 점점 의욕이 떨어졌다. 월드컵은 다가오는데 몸은 회복되지 않고 구단에는 너무 면목이 없고… 정말 죽을 맛이었다.
―포항과 1년 계약을 맺었다. 왜 1년이었나.
▲내 자신을 테스트해보고 싶었다. 한국에서 어영부영하며 선수 생활 마무리하려고 들어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1년이란 시간을 정해 놓고 K리그에 올인한 후 나를 평가하고 싶었다. 여기 오면서 K리그 생활이 결코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그런 강한 정신력이나 절박함이 없으면 성공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에 1년 계약을 고집한 것이다.
―앞으로 설기현 선수한테 더 이상의 월드컵은 존재하지 않는 건가.
▲남아공월드컵이 마지막이었다. 그 기회를 잡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대표팀 은퇴? 얼마 전에 운재 형도 했고 또 영표 형도 이어가겠지만 더 이상 대표팀에 들어가지 않게 된다면 조용히 은퇴하는 게 아니겠나.
설기현은 지금 자신한테 중요한 건 대표팀이 아니라고 말했다. 포항 선수로 K리그 팬들을 매주 만나고 그들에게 좋은 플레이, 신나는 플레이를 펼쳐 보이는 게 중요한 숙제라고 덧붙였다. 유럽에서의 선수 생활이 70점이었다면 나머지 30점을 K리그에서 만들어 가겠다고 각오를 다지는 설기현. 그런데 그 30점이 70점보다 훨씬 더 큰 의미로 다가올 것만 같다.
포항=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