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여 년간 위폐감별 전문가로 활약해온 서태석 씨. 그는 1981년 미국 중앙은행에서 수입한 200만 달러가 모두 위폐임을 밝혀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연합뉴스 |
드라마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외환은행에서 화폐감별전문가로 일하고 있는 서태석 씨다. 서 씨는 이러한 능력으로 1981년 미국 중앙은행에서 수입한 200만 달러가 모두 위폐임을 밝혀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무엇이 그를 ‘위폐 잡는 귀신’으로 만들었을까. 그 비법을 소상히 기록한 그의 자서전 <서태석의 진짜 인생>을 들여다봤다.
서태석 씨는 그의 자서전에서 위폐감별 전문가로서 성장할 수 있었던 과정, 중학교 중퇴자라는 학력으로 금융권에 입사할 수 있었던 성공 스토리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는 책에서 “끊임없이 ‘가짜’를 분별해내려는 노력 속에서 삶을 ‘진짜’로 만들어 가는 방법을 알 수 있었다”며 위폐 감별 전문가로서 성장해 온 40여 년의 세월에 대해 회고하고 있다.
서 씨는 이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책의 첫머리에서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 준 ‘미국 위폐 200만 달러 사건’ 이야기를 적고 있다. 200만 달러 사건이란 외환은행이 미국 중앙은행에서 수입한 달러가 모두 가짜라는 사실을 서 씨 혼자서 알아낸 것을 말한다. 당시 200만 달러는 40만 달러씩 나눠져 5개의 자루에 담긴 채로 세관에 도착했다. 서 씨는 자루 하나를 들어보곤 직감적으로 무게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 그는 위폐 감별 전문가는커녕 은행의 정식 행원도 아니었다. 중학교 중퇴자라는 학력 때문에 입사 지원자격이 되지 않아 외환은행에서 일용직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그가 자루를 들었을 때 느낀 ‘직감’은 남몰래 오랫동안 훈련한 끝에 터득한 그만의 노하우였다. 당시 서 씨는 위폐감별사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일찍부터 세계 각지의 화폐를 연구해왔었다. 화폐 한 장 한 장에 담긴 무늬의 미세한 차이를 구분하고 단 몇 그램의 무게 차이를 느끼기 위해 부단히 훈련해 왔던 것이다. 그런 서 씨였기에 자신의 직감에 확신을 가지고 “이건 모두 가짜다”라고 자신 있게 외치며 세관 통과를 유보시켰다. 그가 워낙 강력하게 주장한 탓에 관계자들의 입회하에 수사가 벌어졌고, 달러 종이 성분을 세밀하게 검사한 결과 자루에 담긴 돈은 모두 가짜임이 드러났다. 이 사건 이후 그는 세계 언론을 통해 알려지게 되고 미국연방수사국(FBI) 및 미 국토방위청 산하 비밀수사국(USSS) 내에서 위조지폐 정보교환 요원으로 위촉돼 세계를 넘나들며 활동하게 된다.
손과 눈을 사용한 감각만으로 화폐의 진위 여부를 판명할 수 있다는 서 씨. 어떻게 그는 ‘위폐 잡는 귀신’이 될 수 있었을까.
서 씨는 군 제대 후 위폐감별사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외환은행에 입사한다. 그러나 중학교 중퇴자인 그에게 주어진 것은 잔돈을 바꿔주는 보조업무뿐이었다. 위폐 감별 전문가는커녕 정식행원 자리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그는 기회가 올 것이라 믿고 꾸준히 진짜 화폐와 가짜 화폐를 구별하는 연습을 했다. 서 씨는 세계화폐를 모두 마이크로렌즈로 찍어 환등기에 비추는 방식으로 10여 년 동안 홀로 연구를 계속했다. 지폐 안에 담긴 인물의 미세한 부분까지 눈으로 익히고 심지어 필요하다면 표면의 느낌을 알기 위해 혀로 핥아 보기도 했다. 그는 이 시간들에 대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혹독한 시간이었다. 오직 한 가지 꿈을 위해 우직하게 걸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10여 년을 노력한 결과 그는 세관 관계자들도 눈치 채지 못한 200만 달러의 위폐 자루를 직감으로 알아냈고, 그것을 계기로 세계의 인정을 받아 결국 자신의 꿈을 이룬 것이다.
서 씨는 책을 통해 자신이 말하려는 것은 ‘위폐와 진폐만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진짜 인생을 분별하는 법’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는 “세상이 아무리 어지럽더라도 진짜와 가짜는 분명히 가려져야 한다. 모두가 ‘이것은 진짜요’라고 말할 수 있는 진짜 인생을 살았으면 한다”고 적고 있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
이승만 “어찌 내 얼굴을 접을 수 있느냐”
서 씨는 일반인들에겐 알려지지 않은 화폐의 비밀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 화폐 속의 초상화는 왜 오른쪽에만 있을까. 다른 나라는 대부분 인물 초상화가 정 가운데에 있다.
서 씨의 설명에 따르면 1956년만 해도 우리나라 지폐의 초상화 역시 가운데에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모두 오른쪽으로 옮겨 간 계기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강력한 항의 때문이라고 한다.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얼굴이 찍힌 화폐를 보며 “어떻게 대통령의 얼굴을 마음대로 접을 수 있느냐”고 불쾌감을 표현했고, 이후부터 공평하게(?) 우리나라 화폐의 인물 초상은 모두 오른쪽으로 이동하게 됐다는 것이다.
서 씨가 전하는 5만 원권의 위폐 감별법도 흥미롭다. 5만 원 신권에는 한국은행이 야심차게 도입한 특수필름 띠가 있다고 한다. 신 권 옆면 가운데쯤에는 태극무늬를 입힌 청회색 ‘부분노출 은선’이 있는데 이 때문에 돈의 움직임과는 반대 방향으로 태극무늬가 움직인다고 한다. 예컨대 돈을 위아래로 움직이면 태극무늬가 좌우로, 돈을 좌우로 움직이면 태극무늬가 상하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