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성 |
#해외파 없으면 안된다?
축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는 스포츠 팬들이라면 쉬이 알 수 있을 터. 대표팀 소집이 가까워질 때마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게 ‘해외파 공문 발송’이다.
어떤 특정 선수가 몸담고 있는 소속 클럽에 ‘A매치 차출 공문’이 전달됐다면, 또 다른 클럽의 선수에게는 공문이 발송됐는지 항상 화두에 오르곤 한다. 스포츠 언론들의 관심도 대부분 여기에 쏠려 있다.
국제 축구계 룰에 따라 특정한 대회를 앞둔 대표팀 최종 엔트리는 보통 23명. 국제축구연맹(FIFA)에 의해 짜인 연간 계획에 따른 ‘오피셜’ 평가전 혹은 친선 경기 때는 적게 23명, 많게는 25명까지 선발되곤 한다.
국제 경기 경험이 곧 개인 경쟁력으로 통하는 요즘, 해외파의 비중은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먼저 허정무 전 대표팀 감독(현 인천 유나이티드)이 2010남아공월드컵을 위해 선발한 23명 중 절반에 가까운 10명이 해외 무대를 누비는 선수들이었다. 골키퍼 등 일부 특수 포지션을 제외한 나머지 베스트 진용을 해외파로만 정리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유치원장’ 조광래호로 새로이 탈바꿈한 뒤 8월 처음 치렀던 나이지리아와의 A매치. 허 감독 체제 때와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오히려 해외파의 비중과 수치는 늘었다. 25명 중 50%를 넘어선 13명이 해외파였다.
‘쌍용 대체자원 발굴’을 일찌감치 선언한 현 대표팀은 단기적으로는 내년 1월 카타르에서 열릴 2011년 아시안컵, 장기적으로는 2014브라질월드컵을 대비해 세대교체를 염두에 둔 뉴 페이스들의 발굴 작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는데, 문제는 계속 수혈되는 젊은 선수들이 대부분 해외에서 뛰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해외파라고 해서 항상 같은 입장에 처한 것은 아니다. 일본, 중국 등 비교적 가까운 지역이라면 사정이 다르겠으나 유럽에서 활약 중인 선수는 지구를 반 바퀴 도는 수고를 줄곧 감수해야 한다. 그것도 왕복 스케줄까지 고려하면 ‘이틀 담금질 후 A매치 출전’은 무척이나 괴로운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소속 팀에서 경쟁 중이고, 아직 자리를 확고히 잡지 못했다면 더더욱 쓰라리다.
7~8시간 시차에 유럽-한국-유럽을 오가면 컨디션과 경기력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등 중동에서 활약하는 멤버들도 비슷하다. 최소 5시간 이상 시차가 있어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유럽과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선수들은 “대표팀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겠다”고 입을 모으지만 속내까지 파악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해외 클럽에서 활약 중인 선수 A의 측근은 “내색조차 할 수 없어 A가 무척 힘들어하고 있다. 프리시즌이 막 끝나고, 새 시즌이 시작된 상황에서 태극마크라는 영예를 선뜻 받아들일수도, 그렇다고 사양할 수도 없어 이에 따른 고충은 더욱 크다”고 했다.
또 다른 대표팀 선수 B의 지인도 몇몇 해외파가 빠졌던 나이지리아전을 예로 꼽으며 “(대표팀에) 부르려면 모두 불러야 구설이 나오지 않는데, 솔직히 아쉬웠다”고 조금은 부정적이었던 분위기를 설명했다.
#해외파 만약 안 뛴다면?
물론 대표팀도 할 말이 있다. 몇 푼 안 되는 A매치 흥행수입은 대한축구협회의 살림살이에서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때문에 해외파가 뛰고, 안 뛰고의 차이는 크다. 인터넷 티켓 판매 업체를 통한 입장권 예매율부터 확실히 다르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스포츠 마케팅 업체의 한 담당자는 “대개 주말이 아닌, 주중에 치러지는 축구 A매치의 현실에서 인기 스타가 많이 나오는 경기가 훨씬 관심을 끄는 게 당연하다. 여기서 스타라고 함은 대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등 빅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다. 팬들의 눈높이는 한껏 올라왔는데, 국내파로 꾸려진다면 딱히 메리트가 부여되기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축구협회의 생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협회 내 한 고위 관계자는 “사실 협회 내 수익 사업에는 고정 및 서브 스폰서 확보 외 A매치가 거의 전부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월드컵 특수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상황에서 최대한 흥행과 이슈를 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귀띔했다.
조 감독과 함께 선임된 박태하 코치, 김현태 골키퍼 코치 등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새로 지휘봉을 잡은 시점에서 A매치를 꾸준히 승리로 이끌고 싶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당장 우승을 목표하는 아시안컵까지 남아있는 시간이 워낙 부족한 탓이다. 조금이라도 많은 선수들을 불러들여 최대한 실험을 해보고, 손발을 맞춰봐야 하지만 물리적인 시간과 기회는 턱없이 부족하다. 새로운 전술적인 색깔을 입히는 과정에 있어 조직력 담금질도 필수 요소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더욱이 8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지는 나이지리아, 이란, 일본전은 모두 각별한 의미가 있다. 축구협회에게도, 대표팀 코칭스태프에게도 ‘버릴 카드’가 없다는 얘기다. 또한 11월 FIFA A매치가 있음에도 불구, 올해 초 프로축구연맹과의 약속에 따라 대표팀 스케줄은 마련돼 있지 않다. 이로 인해 예정된 경기에 해외파를 최대한 불러들일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대체 무엇이 옳은 것일까. ‘두 마리 토끼’를 붙잡을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한 번쯤은 진지한 검토가 필요한 것 같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