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전국공무원노조, 공공운수노조 대표자들이 MB정부 특별채용인사 비리 전면조사를 촉구하는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
수장의 딸에게 유리하도록 자격요건을 바꾸는 등 특혜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황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로 인해 온 나라가 ‘낙하산 똥돼지(특채로 입사한 정부 부처·재벌 기업 총수 등 유력자의 자녀들을 비꼬는 신종 비속어) 신드롬’에 격한 몸살을 앓고 있다. 현선 씨가 공모응시를 자진취소하고 유 전 장관이 물러났지만 ‘현대판 음서제(고려·조선시대 양반 자제의 무시험 채용)’를 상기시키는 이번 사태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허탈감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이번 사태가 비단 현선 씨의 경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김동철 민주당 의원은 9월 7일 “일부 전·현직 고위 외교관뿐 아니라 그 지인의 자녀까지 인사청탁과 특혜를 받고 인턴을 거쳐 특채됐다는 제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외교부 최고위급 인사 친구의 딸 A 씨와 전직 대사의 딸 B 씨, 또 다른 전직 대사의 아들 C 씨, 대사의 친척 D 씨를 언급하며 “이들은 5급 특채 계약직으로 채용된 후 2년쯤 뒤에 정규직으로 전환된 유력 인사들의 자제들이라는 의혹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실시한 외시2부 합격자(22명)의 41%(9명)가 외교부 고위직 자녀들로 밝혀졌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홍정욱 한나라당 의원은 외교부 내에서도 만연한 ‘차별’ 행태에 대해 꼬집었다. 홍 의원이 외교통상부로부터 제출받는 국감자료에 따르면 외교부에 근무하는 고위직 자녀의 25%가 전체 본부직원 중 3.7%만 갈 수 있는 핵심부서인 ‘북미국’에 근무하고 있다.
현선 씨 사건으로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외교부는 설상가상으로 외교관 자녀 및 지인 자녀들의 특채 의혹마저 불거지며 편법적 채용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특혜비리 백화점’이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그 불똥은 관가 전체로 번져 심상치 않은 후폭풍을 몰고올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고위직 자녀들의 미심쩍은 특채 의혹은 비단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아들 시형 씨는 정권 출범 초인 2008년 이 대통령의 사위가 부사장으로 있는 한국타이어에 입사한 것이 논란이 됐다. 시형 씨는 2008년 7월 21일부터 한국타이어 국제영업 부문 아시아태평양팀에서 인턴사원으로 근무했는데 무려 10년 동안 인턴채용을 진행하지 않았던 한국타이어가 인턴채용을 재개한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했고, ‘사돈기업 특혜입사’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3개월의 인턴을 거친 시형 씨는 그해 11월 정사원이 됐으나 1년 만에 사직했다.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의 외아들 지형 씨가 2007년 10월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한국법인 대표를 맡아 2년간 이사로 근무한 것도 구설에 올랐다. 맥쿼리 자산운용 대표였던 지형 씨는 골드만삭스가 회사를 흡수하면서 자신의 회사를 합병한 곳의 대표에 올랐다. 맥쿼리는 인천대교의 대주주이자 국내 주요 교량 관리회사로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민자교량 관리에 따른 수백 억 원의 교부금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형 씨가 오래전부터 자산운용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었다는 점에서 특혜 취업으로 볼 수 없다는 시각도 있었지만 한동안 특혜 구설은 끊이지 않았다.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이기택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의 아들 성호 씨도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근무를 시작한 성호 씨는 미국 드렉셀대 경영학 석사 출신으로 귀국 후 태광그룹 케이블 방송 계열사인 강서방송 마케팅 팀장으로 근무했다. 애초 추부길 홍보기획비서관실에서 일하던 성호 씨는 2008년 7월 뉴미디어와 인터넷상에서 여론수렴을 위해 홍보기획비서관실 산하에 국민소통비서관실이 신설되면서 보직을 옮겼다. 하지만 성호 씨의 청와대 입성을 두고 말이 많았다. 부친인 이 부의장이 이 대통령과 같은 경북 포항 출신이자 고려대 선배인 데다가 2007년 한나라당 대선경선 과정에서 이 대통령 지지를 선언한 뒤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 상임고문을 맡은 바 있기 때문이었다. 성호 씨는 용산참사 사건 당시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검거되자 “연쇄살인사건을 적극 활용해 용산참사 여론에 대응하라”는 이메일을 경찰청에 보낸 인물로 드러나 큰 파문을 일으켰고 결국 사퇴했다.
탤런트 이덕화 씨의 아들 태희 씨도 2008년 초부터 청와대에 근무하고 있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때아닌 곤욕을 치르고 있다. 태희 씨는 현재 청와대 총무기획관실 행정관으로 근무 중인데 그의 부친인 이덕화 씨는 “미국 보스턴 칼리지를 졸업한 아들이 IBM·구글 등 세계적 기업의 러브콜을 마다하고 청와대 사무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당시 경쟁률이 9000 대 1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태희 씨가 구설에 오른 것은 부친인 이덕화 씨가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동료 연예인 25명과 함께 이명박 후보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태희 씨는 지방 등에서 온 외부 단체 관광객들에게 청와대 내부를 안내하는 ‘경내관람’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태희 씨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절묘하게 청와대에 입성했다는 점, 현재 태희 씨의 주 업무가 전공분야인 마케팅이나 IT 업무와 거리가 멀다는 점 때문에 특혜채용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2005년 강동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도 인사청탁을 통해 아들이 인천시 경제자유구역청 5급 공무원으로 채용된 것과 관련 장관직을 내놓는 등 곤욕을 치렀다. 당시 박사학위 취득자만 응시가 가능한 시험에서 강 전 장관의 아들은 박사과정 수료자임에도 불구하고 합격했다. 하지만 차점자로 떨어진 인물이 인천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고 조사결과 채용담당 직원들이 강 전 장관의 아들에게 의도적으로 높은 점수를 준 것이 밝혀지면서 물의를 빚었다.
2007년 3월에는 정해방 전 기획예산처 차관이 아들의 에너지기술연구원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해 사퇴했다. 에너지기술연구원은 당초 2006년 1월 직원 채용공고 당시 토익 점수 기준을 700점으로 발표했다가 하반기 모집에서는 내부 합격 기준을 600점으로 낮췄는데 정 전 차관의 아들은 바뀐 기준에 의해 서류 전형을 통과한 뒤 최종 합격, 특혜 채용 의혹을 받았다.
이기환 소방방재청 차장도 지난해 12월 아들이 소방방재청 산하단체인 한국소방공사협회에 입사한 것과 관련해 도마에 오른 바 있다.
고위직 자녀의 특채 의혹은 비단 국가기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한 문창진 포천중문의과대학교 보건복지대학원장의 딸 지영 씨도 대기업 특채 의혹 구설에 휘말린 바 있다. 2006년 사상 최악의 급식사고로 충격을 줬던 CJ그룹에 당시 문 전 청장의 딸 지영 씨가 사실상 특채되어 근무 중인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었다. 당시 도시락 식중독 파문을 조사한 식약청은 식중독 원인균과 CJ푸드시스템과의 상관관계를 밝혀내지 못했고 CJ그룹은 법적 책임을 면할 수 있었다.
일각에서는 당시 문 전 청장이 딸이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 메스를 들이대기 힘들었을 것이라 꼬집으며 지영 씨의 특채과정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CJ 측은 지영 씨가 CJ그룹 사회공헌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과 관련 해 “지영 씨가 월드비전에서 사회공헌활동을 담당한 경력이 있다”며 특혜 의혹에 대해 부인한 바 있다.
한편 10대 외교부 장관을 지낸 홍순영 외교협회장도 아들의 외시 합격을 위해 입김을 넣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며 도마에 올랐다. 홍 회장이 외교부 차관으로 재직하던 지난 94년 외무부가 외무고시 1차 시험과목 중 문화사를 국제법으로, 정치학을 국제정치학으로 변경한 것을 두고 의혹이 일고 있는 것이다. 변경된 국제법과 국제정치학 두 과목은 1, 2차 시험에 중복되는 것으로 이러한 과목 교체는 오랜 외국생활로 문화사에 취약한 홍 회장의 아들에 대해 편의를 봐주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외시 1차에 수차례 낙방했던 홍 회장의 아들은 과목이 바뀐 후 97년에 합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윤철 전 감사원장의 딸도 외교부 특채 의혹을 받고 있다. 전 전 감사원장의 딸은 지난 6월 외교부 프랑스어 특기자(6급) 특별채용에서 응시자 17명 중 혼자 합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외교부가 이미 지난해 하반기에 프랑스어 특기자를 특채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인력 정원을 늘리면서까지 갑작스레 추가특채를 실시한 배경을 두고 의혹이 일고 있다. 특히 전 전 감사원장이 유명환 전 장관과 서울고 선후배라는 점에서 유 전 장관의 개입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여지껏 드러난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부처는 물론이고 지방자치단체와 공기업, 대기업에 고위층 자녀와 비혈연 측근들의 특채에 대한 집중 조사가 이뤄질 경우 상상을 초월할 규모의 비리가 드러날 것이고, 이는 정·관계를 뒤흔들 대형뇌관으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고위층 자녀의 채용과정에 대해 낱낱이 조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자 상당수 고위층 인사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정한 사회’를 모토로 내건 이명박 정부가 이번 사태에 얼마나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하급 기능직까지 ‘빽’ 천지
특혜 채용 의혹은 중앙부처를 넘어 지자체까지 확대되고 있다. 하다못해 하급 기능직 공무원을 채용하는데도 ‘줄’과 ‘빽’이 우선시됐다는 제보들도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과 공공운수노조는 7일 ‘MB 정부 특별채용 인사비리 전면 조사 요구’ 기자회견을 열고 각종 인사 비리 사례를 공개했다. 이들에 따르면 지난 2003년 9월 설립된 서울 A 구청 산하 시설관리공단은 지난 2008년 10월 기준으로 모두 12차례의 채용을 실시했는데 이 중 8차례는 비공개 특별채용이었다. 또 특채 정원 중 특정인맥을 가진 이들이 상당수였으며 자격증도 없는 사람이 기능직 공무원으로 채용되는 사례도 있었다.
실제로 서울 경기 등 전국의 주요 자치단체만 살펴봐도 수십 명에 달하는 전·현직 시장과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 등의 자녀와 친인척들이 부정특채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서류전형과 면접만으로 채용된 경우가 대부분으로 이들의 합격에 유력인사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강북구 도시관리공단 권오도 이사장은 지난 4월 8급 직원으로 5촌 조카를 채용해 수행비서 겸 관용차 운전을 맡겼다가 논란이 되자 지난 7일 사직 처리했다. 성동구 도시관리공단에는 이호조 전 구청장의 조카사위가 실무계약직으로 특채되어 근무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곳은 경기도다. 성남문화재단에는 현직 시의원의 아들을 비롯해 현직 구청장의 조카와 전직 구청장의 딸, 전 감사담당관의 딸, 전 수원시장의 딸, 용인지역 전 국회의원의 딸 등이 공채 또는 특채로 입사해 근무하고 있다.
성남산업진흥재단에는 성남시설관리공단 이사장의 딸이, 성남시설관리공단에는 이대엽 전 성남시장 선거캠프 인사의 아들이, 성남청소년육성재단에는 이 전 시장 비서의 아들이 근무하고 있다. 또 하남도시개발공사 등에는 전직 하남시장의 조카 등이 근무하고 있는데 전 시장의 조카는 2003년 계약직으로 입사했다가 1년 후 정규직으로 전환돼 특혜 논란이 일고 있다.
전국 지자체와 그 산하기관에 채용된 인력들의 채용과정을 샅샅이 조사할 경우 실제로 드러나는 특혜채용 사례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