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치른 내연녀 박씨의 아들 결혼식 사진. 맨왼쪽이 박씨이고 맨오른쪽이 C회장. | ||
C회장과 박씨 사이에는 현재 사실혼 확인소송과 건물 명의변경 소송, 폭행, 협박 등 4건의 소송이 진행중이다. C회장은 박씨에 대한 폭행건과 협박건으로 법정에 출두했을 때 박씨와 한때 내연관계에 있었지만 사실혼 관계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전면 부인했다. 과거에 한때 만났을 뿐 사실혼 관계에 있지도 않았고, 얼마 전에는 박씨가 미국으로 가면서 관계가 끊어졌다고 진술한 것. 둘 사이에 어떤 악연이 있었던 것일까.
박씨에 따르면 C회장을 만난 것은 지난 67년 일본 도쿄. 마치히상으로 널리 알려졌던 정아무개씨가 운영하는 비원이란 한정식집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이미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두고 있던 박씨는 중견기업인 C회장의 집요한 구애를 받았다는 것.
그렇게 맺어진 인연은 급기야는 박씨가 C회장의 딸을 낳는 것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박씨의 주장에 따르면 C회장은 본처에게서 얻은 딸이 중학교 때 자살하자 이에 대한 상심이 컸던 나머지 집요하게 딸을 낳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박씨는 C회장과의 사이에 얻은 딸을 태어난 지 1백일 만에 C회장 집으로 보내고 C회장은 이후 박씨를 83년 외국으로 보내 그의 존재를 비밀에 부쳤다고 한다.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살던 박씨도 아들 교육을 위해 순순히 미국으로 떠났다는 것.
물론 딸을 출산한 이후 C회장은 박씨 모자를 돌봐왔다는 게 박씨의 주장. 박씨에 따르면 생활비 보조를 중단한 96년 이전만 해도 월 5백만원 정도의 현금을 주는 등 사실상 부부처럼 살아왔다고 한다.
미국으로 간 이후에도 한 달에 한 번꼴로 C회장이 미국으로 오갔고, 때때로 박씨가 홍콩 등지로 C회장을 만나러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 84년 이후부터는 박씨가 미국보다 국내에 체류한 기간이 더 길어지기 시작했고, C회장이 도봉동에 계열사 아파트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C회장은 박씨가 낳은 아들에 대해서도 친자식처럼 대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치러진 박씨 아들 결혼식에도 박씨와 함께 나란히 혼주석에 섰다는 것. 박씨의 주장은 C회장이 사실상 박씨의 남편 노릇을 했다는 얘기다.
그러다 이들 두 사람의 사이가 틀어진 것은 96년 무렵. 91년 미국 생활을 끝내고 완전 귀국한 박씨는 자신이 이민을 가기 전 살던 동숭동집이 C회장 계열사 명의로 넘어간 것을 알고 반환을 요구했다. C회장은 문제의 건물을 자신과 연관이 있는 나라의 대사관측에 임대를 해주고 있었다.
이에 대해 C회장은 박씨에게 이렇다할 답을 주지 않고 문제를 회피했다는 게 박씨의 주장이다. 그 무렵 (박씨가 귀국한 이후) 박씨는 경기도 모처에 전원주택을 짓고 혼자 살고 있었다. 박씨의 주장에 따르면 귀국한 이후에도 C회장은 1주일에 두세 번씩 박씨 집에 놀러왔고, 자고 갔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전원주택 인근의 마을주민들도 기억하고 있었다. 이들은 “박씨의 영감님이 자주 내려와 자고 가기도 했다. 덩치가 큰 분이었고, 그 분이 내려오면 박씨가 음식을 따로 만드는 등 부산했다”고 전했다.
서울 인근의 경기도 북부지역에 위치한 전원주택은 박씨가 93년부터 짓기 시작해 99년 완공한 것으로 마을에서는 약간 떨어진 외딴 곳이다.
문제의 폭행 사건이 일어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8년쯤 전인 96년 8월15일 새벽이었다.
그때 박씨는 3주치 상해진단서와 사진을 찍어놨다. 이후 C회장의 사과로 이 사건은 마무리됐고 여전히 C회장은 박씨의 집을 자주 찾았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둘 사이의 관계가 틀어진 것은 2002년 2월 일본여행을 떠나면서부터였다고. 그해 1월 박씨는 30여 년 만에 딸 Y씨를 만났다. 그리고 2월에 C회장은 박씨, Y씨와 함께 일본으로 온천여행을 떠났다.
세 사람은 온천욕을 마치고 호텔방 하나를 빌려 동침을 했다. 미닫이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박씨와 C회장, 그리고 딸인 Y씨가 자게 됐다. 그런 상황에서 C회장이 박씨에게 동침을 요구했고, 박씨는 딸이 있다는 점을 들어 완강하게 거부했다고 한다.
박씨가 동침을 거부하자 다음날 아침 C회장이 불같이 화를 내며 당장 서울로 돌아가라고 소리를 질렀고 이 사건이 벌어진 뒤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히 악화돼 박씨는 동숭동 집 반환을 거세게 요구했다고 한다.
사이가 악화될 만큼 악화된 C회장과 박씨는 이때부터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박씨는 그해 가을 C회장이 ‘부당하게 빼앗아간 동숭동 집과 사실혼 관계를 폭로하겠다’는 내용의 문건을 내용증명으로 C회장 사무실로 부쳤다.
이때만 하더라도 C회장은 박씨와 아는 사람을 통해 ‘박씨를 잘 좀 다독여달라는’ 부탁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2003년 여름 박씨는 C회장에게 동숭동 집 명의변경 소송과 사실혼 확인 소송, 폭행 소송을 동시에 냈다. 그러자 C회장도 박씨가 자신을 내용증명으로 ‘협박’했다며 검찰에 고소했다.
동숭동 집의 현 시가는 땅값만 60억원에 달한다. 이 소송은 1심에선 박씨가 패소했고, 현재 2심이 진행중이다. 또 사실혼 확인소송에서도 1심에서 박씨가 졌다. 이때 C회장은 법정증언을 통해 박씨는 한때의 섹스파트너였을 뿐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이미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국제결혼을 하는 등 관계가 끊어졌다는 것.
이에 대해 박씨는 미국 영주권을 얻기 위해 미국인과 위장 결혼한 사실을 C회장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2년 뒤 미국 비자를 얻은 뒤 미국인과 이혼할 때 법정 바깥에서 C회장과 아들이 같이 기다리고 있었을 정도였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두 건 모두 항소한 상태로 2심에선 1심에서와는 달리 아들과 다른 증인들도 추가한 상태다. 이 사건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박씨의 아들 결혼사진. 90년 결혼식 당시 C회장은 혼주석에 앉아 있었다. 이는 사실상 C회장이 박씨의 남편 노릇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다. 때문에 사실혼 확인소송의 2심 결과가 주목된다.
한편 동숭동 집 명의변경 건에 대해 C회장은 박씨에게 돈을 주고 샀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씨가 83년 미국으로 갈 때 4천만원을 여비로 준 데다, 6천만원의 은행담보도 대신 갚아주는 등의 방법으로 대금을 다 지불했다는 것.
이에 대해 박씨는 “내가 건물 명의변경 동의서에 도장을 찍어준 적도 없고, 미국으로 나가라고 종용한 것도 C회장이었고 내가 없는 사이 서류를 조작해 건물 주인을 바꿔놨다”며 C회장의 주장을 부인했다.
또 협박건에 대해 해당 법원은 박씨가 그런 서류를 작성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법이라며 지난 1월14일 박씨에게 1백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밖에 남은 것은 폭행건의 1심 공판. 7월1일로 잡혀있던 1심 선고 공판은 C회장측 요청으로 7월 중순으로 연기됐다. C회장은 지난 6월 법정에 출석해 “박씨를 폭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딸인 Y씨를 박씨가 때렸다”고 주장했다. 7월 중순 선고 공판에 출두할 것으로 보이는 C회장의 1심 최후진술과 형량이 어떻게 내려질지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