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엽은 최근 1군 복귀 3게임 만에 2군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다. 사진은 지난해 대만 대표팀과의 연습경기에서 삼진으로 물러나며 눈을 만지는 모습. 연합뉴스 |
“올해도 안 되면 미련 없이 유니폼을 벗겠습니다.” 2006년 지바롯데 마린스에서 요미우리로 이적할 때 이승엽이 밝힌 각오였다. 당시 많은 야구관계자는 “설령 요미우리에서 실패하더라도 삼성으로 돌아오면 그만 아니냐”며 그의 다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삼성 받아준다는 보장 없어
하지만, 아니었다. 이승엽은 삼성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내막은 이랬다. 2005시즌이 끝나고 이승엽은 모 삼성 코치를 통해 친정팀 삼성으로의 복귀를 조심스럽게 타진했다. 그 코치는 이승엽의 뜻을 곧바로 선동열 삼성 감독에게 전달했다. 잠자코 듣던 선 감독은 그러나 다음날 언론을 통해 “힘들더라도 일본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며 이승엽의 삼성 복귀를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훗날 선 감독은 “이승엽이 독하게 마음먹고 운동에 매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 같은 말을 했다”고 밝혔지만 당시 이승엽이 받은 마음의 상처는 컸다.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절벽에 서야 산의 높이를 알 수 있다’고. 돌아갈 곳이 없던 이승엽은 2006년 믿기지 않는 투혼을 발휘했다. 타율 3할2푼3리, 42홈런, 108타점으로 요미우리 타자 가운데 최고의 성적을 냈다. 그 해 연말 요미우리가 이승엽과 장기계약을 맺은 건 전혀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다음 해인 2007년 이승엽은 왼쪽 무릎과 어깨부상으로 타율 2할7푼4리, 30홈런, 74타점을 기록하며 전 해보다 부진했다. 2008년도 왼손 엄지인대 수술 이후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하며 성적이 뚝 떨어졌다.
이때만 해도 이승엽의 부진은 부상이 주원인으로 꼽혔다. 실제로 이승엽은 해마다 크고 작은 수술을 받은 까닭에 몸이 성하지 않았다. 일본야구계에선 왼쪽 무릎과 왼손 엄지인대 수술을 받으며 이승엽의 배트 스피드가 느려졌다고 분석했다. 결국 2008, 2009시즌에도 이승엽은 부활하지 못했다. 올 시즌엔 타율 1할7푼4리, 5홈런으로 일본 진출 후 최악의 성적을 내고 있다.
2007년부터 올 시즌까지 이승엽이 부진할 때마다 그의 주변을 맴도는 소문 몇 가지가 있다. ‘아내와의 불화설’이 대표적이다. 언제부터인가 야구계에선 “이승엽이 아내와의 갈등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과연 소문은 사실일까.
“전혀 사실이 아니다.” 지난해까지 요미우리에서 코치로 활약했던 김기태 LG 2군 감독은 양손을 저었다. 김 감독은 “(이)승엽이에게 불필요한 영향을 줄까 봐 제수씨가 매사 사려 깊게 행동했다”며 세간의 억측을 일축했다.
‘아내와의 불화설’이 한국야구계에서 떠돈 억측이라면, ‘약물복용의혹’은 일본야구계에서 돌았던 소문이다. 2006년 이승엽이 맹활약을 펼치다 4년 연속 부진하자 일본야구계 일각에서 “2006시즌과 비교해 (이승엽의)체격이 많이 왜소해졌다. 혹시 금지약물을 복용하다가 중단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로 일본프로야구는 2006년까지 금지약물의 천국이었다. 그러나 2007년부터 강력한 반 도핑 정책을 도입하며 상황이 바뀌었다. ‘쳤다 하면 홈런’이던 몇몇 외국인 선수들이 고전을 면치 못했다. 언뜻 보면 이승엽도 외국인 선수이니만큼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승엽의 몸은 2006시즌이나 올 시즌이나 달라진 게 없다. 무엇보다 이승엽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엄격한 도핑검사를 차례로 통과하며 ‘약물 청정 선수’임을 인정받았다.
그렇다면 이승엽은 어째서 부진한 것일까. 이세 다카오 야쿠르트 타격 인스트럭터는 부상이나 심리적 요인에서 부진의 원인을 찾지 않았다. 2007년 요미우리 타격코치 시절 이승엽과 인연을 맺고 2008년부터 2년간 SK 타격코치로 활약한 바 있는 이세 씨는 “선수생활의 정점 뒤에는 항상 내리막이 있게 마련”이라며 “이승엽이 다소 일찍 내리막을 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승엽의 내림세가 자연스러운 쇠퇴라는 뜻이다.
올 시즌 이승엽은 1루 주전 경쟁에서 밀려 줄곧 2군에 있었다. 그러던 9월 3일 74일 만에 1군에 복귀했다. 하지만, 3경기에서 5타수 1안타로 부진하며 3일 뒤 다시 2군으로 강등됐다. 일본 언론은 “이승엽과 올 시즌으로 4년 계약을 마무리 짓는 요미우리가 시즌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그를 2군으로 보낸 건 사실상의 결별 통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요미우리 구단 수뇌부는 이승엽과의 재계약을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다른 일본 프로팀들도 이승엽 영입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는 점이다.
난색의 가장 큰 이유는 높은 몸값이다. 올 시즌 이승엽의 연봉은 6억 엔(한화 84억 원)이다. 히로시마 도요카프의 선수단 연봉 총액이 16억 엔인 걸 고려하면 이승엽의 몸값은 높아도 한참 높다. 일본야구전문가 기무라 고우치 씨는 “6억 엔을 주고 타율 1할 타자를 영입할 팀은 세상에 없다”며 “몸값을 대폭 낮추는 길만이 이승엽이 다른 팀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몸값 낮추면 3~4개 팀 관심”
일본 프로야구 스카우트들은 이승엽의 적정 몸값을 8천만 엔(한화 11억 원)으로 본다. 만약 이승엽이 8천만 엔 이하로 몸값을 낮춘다면 3, 4개 팀에서 관심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구단이 한신이다. 8월 말 한국에서 만난 한신의 한 관계자는 “이승엽의 몸값이 6천만 엔 정도면 현 주전 1루수 크레이그 브라젤의 포지션 경쟁자로 영입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오사카에 재일교포가 많이 살아 이승엽의 영입이 구단 흥행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신이 수년째 한국 선수에 관심을 나타내면서도 정작 스카우트한 선수가 한 명도 없음을 고려하면 이번에도 말치레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승엽의 국내 복귀 가능성은 어떨까. 삼성 영입은 어렸다손 쳐도 국내 다른 구단에선 뛸 수 있지 않을까. 방법은 있다. 삼성 이외의 구단이 이승엽을 영입하려면 일본 진출 직전인 2003년 그가 삼성에서 받은 연봉 6억 3천만 원의 최대 450%인 28억 3000만 원을 삼성에 보상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