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동열 감독이 더그아웃에서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제약 심하나 기사거린 많아
‘철의 장막’. SK 벤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취재 제약이 많다’고 기자들 사이에서 붙여진 별명이다. 대표적인 제약 가운데 하나가 배팅게이지 접근 금지다.
올 시즌 중반부터 SK 김성근 감독은 “연습에 방해된다”며 타격연습 시 배팅게이지 뒤로 기자와 해설가가 오는 걸 막았다. 라커룸을 개방하지 않아 선수들과의 접촉이 극히 제한된 한국프로야구의 취재환경에서 배팅게이지 주변 봉쇄는 언론엔 큰 타격이다. 타자들의 취재가 대부분 베팅게이지 뒤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SK만큼 기사 소재가 많은 벤치도 드물다. 매사 진지한 김 감독이 해박한 야구지식과 능변으로 경기마다 맥을 짚고 야구계 현안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기 때문. 어느 베테랑 기자는 “언론에 엄격하나, 펜을 가장 잘 활용하는 곳”이라 말하기도 한다.
#은둔자서 그라운드 신사로
삼성 선동열 감독의 별명은 ‘은둔자’다. 지난해까지 그랬다. 이유가 있다. 경기 전 벤치에 잘 앉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독실에 있거나, 외부와 차단된 곳에 혼자 있길 즐겼다. 그만큼 언론을 피했다. 경기에 이겨 승장인터뷰를 해야 할 때도 “팀 승리 시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는 징크스를 들어 카메라 앞에 서는 걸 고사했다.
하지만 올 시즌은 백팔십도 바뀌었다. 먼저 벤치에 나온다. 기자들과 야구관계자들을 따뜻하게 반긴다. 선 감독이 이렇듯 극적으로 변한 배경은 장기계약 덕이 크다. 지난 시즌 중반 선 감독은 삼성과 5년 재계약을 맺었다. “눈앞의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적 안목으로 팀을 운영할 수 있어 한결 여유가 생겼다”는 게 당시 선 감독의 진심이었다. 그러니까 여유가 선 감독을 은둔에서 개방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결연한 의지가 빛나는 두산
두산 김경문 감독은 경기 전 벤치에서 가장 활발하게 언론을 상대하는 사령탑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특히나 껄끄러운 질문에도 빙빙 돌리지 않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화법 때문에 언론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올 시즌은 “다소 소극적으로 변했다”는 게 야구계의 중평이다. 올 시즌 중반부터 팀 문제나 선수기용에 관해 질문하면 대답을 주저하거나 야구 외적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 야구해설가는 김 감독이 사석에서 한 말에 집중했다. “‘올 시즌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스스로 결단을 내리겠다’고 했다. 그 결단이 뭐겠는가? 감독직 사퇴지.” 김 감독의 결연한 의지가 스민 것일까. 두산 벤치는 그 어느 해보다 엄숙하다.
#자유 속의 원칙주의자
‘기자보다 언론을 더 잘 아는 감독’. 롯데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두고 하는 말이다. 미 메이저리그 사령탑 출신답게 로이스터 감독은 언론의 생리를 정확히 파악하고, 잘 활용할 줄 안다. 특별한 제약도 없다.
벤치는 항상 개방돼 있고 언제 어디서든 취재가 가능하다. 롯데 벤치에선 선수들도 인터뷰 때 감독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다. 다른 팀 선수들이 감독의 눈을 피해 인터뷰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하지만 자유 속엔 원칙도 확실하다. 로이스터 감독은 아무 때나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다. 인터뷰 시간이 따로 있다. 대개 경기 전 30분 정도다. 이땐 어떤 질문이 쏟아져도 피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시간이 지나면 공식적인 질문은 하지 않는 게 예의다.
#분위기 주도하는 초보 감독
LG 박종훈 감독은 초보 감독이다. 올 시즌 처음으로 1군 사령탑을 맡았다. 그래선지 말하기보다 듣는 걸 즐긴다. LG 벤치 풍경도 그렇다. 기자들과 해설가들이 주로 말한다. 박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듣기만 한다. 그래도 많이 좋아진 편이다.
취임 초 박 감독은 수많은 언론을 상대하느라 진땀을 뺐다. 인터뷰가 많아질수록 말 한마디 때문에 진의가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한동안 침묵했던 이유다. 하지만 시즌이 흐를수록 침묵보다 조심스러운 의견개진이 더 유효하다는 걸 알았다. 박 감독은 “초보감독치고는 벤치의 분위기를 주도할 줄 안다”는 평을 듣는다.
#언론을 선수 비판의 창구로
올 시즌 KIA 벤치 분위기는 8개 구단 가운데 가장 어두웠다. 구단 사상 초유의 16연패를 기록한 데다 주전선수들의 부상으로 팀 성적이 하위권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여기다 시즌 중반 김동재 수비코치마저 쓰러지며 벤치 분위기는 최악을 달렸다.
KIA 조범현 감독의 미숙함도 한몫했다. 조 감독은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이지만 벤치에선 신임감독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한 지방지 기자는 “자기 팀 선수를 옹호하고 감싸기는커녕 패배의 원인을 죄다 선수 탓으로 돌리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며 “벤치에서 감독이 기자들과 나누는 대화 가운데 절반이 자기 팀 선수 비판”이라고 털어놨다.
#구단 홍보 역 자처 김시진
넥센은 8개 구단 가운데 가장 언론친화적인 구단이다. 선수단도 적극적이다. 김시진 감독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김 감독은 벤치에서 구단 홍보 역을 자처한다. 구단에 어려운 일이 발생하거나 불미스러운 일이 터지면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직접 나서 구단을 옹호한다.
장원삼 이택근 이현승 마일영 황재균 등 팀 내 주요선수들이 다른 구단으로 이적했을 때도 벤치에서 차분히 기자들을 모아두고 구단의 본의를 전달한 이가 바로 김 감독이었다. 그러나 누가 알랴. 그 속이 얼마나 타들어갔는지.
#꼴찌지만 분위기는 상위권
한화의 2년 연속 꼴찌가 유력하다. 그러나 재미난 건 벤치 분위기는 같은 꼴찌인 데도 지난해보다 훨씬 좋다는 것이다. 한대화 감독의 공이 크다. 벤치에서 한 감독은 행복전도사다. 선수들이 엉뚱한 실수를 범해도 기자들 앞에서 비난하는 법이 없다.
감독 영향 때문인지 한화 벤치는 꼴찌란 성적이 믿기지 않을 만큼 무척 활발하고 웃음이 가득하다. 하지만 선수들이 모르는 게 있다. 실책이나 삼진이 나올 때마다 한 감독이 벤치 뒤에서 줄담배를 핀다는 걸.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