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코헨 제일은행장,팰론 외환은행장,하영구 한미은행장 | ||
현재까지 외국계 은행들은 국내 시중은행과 비교해볼 때 자산규모나 영업력에서 뒤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이들이 향후 막강한 외국 자본력을 앞세워 국내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이 분석하고 있어 이들의 향후 전략과 경쟁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조흥은행 관계자는 “외국계 은행들이 선진금융기법을 앞세워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할 것으로 보여 국내 은행들이 이들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외국계 은행들은 국내 토속은행과 경쟁하는 것은 물론, 외국계 은행끼리도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여 과연 누가 최강자가 될 것이냐가 관심사다.
주인공은 로버트 코헨 제일은행장과 로버트 팰론 외환은행장, 하영구 한미은행장. 제일은행은 지난 2000년 회사 지분이 뉴브릿지캐피탈로 넘어갔고, 외환은행은 지난해 말 론스타펀드에 팔렸다. 한미은행은 최근 씨티은행이 인수, 10여일 간 노조와 마찰을 빚었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제일과 외환은행의 주인은 펀드이고, 한미은행은 금융그룹이어서 같은 외국계 자본이라고 해도 엄밀히 말해 구분이 된다”고 전제했다. 보통 펀드는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데다 뉴브릿지와 론스타펀드 역시 투자기관의 성격이 강해 씨티 같은 금융그룹과는 차이가 있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업계에서는 하영구 행장이 개인적 능력은 뒤로 하고라도 팰론 행장이나 코헨 행장보다 유리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하 행장은 지난 81년 씨티은행에 입사, 줄곧 씨티은행에서 일하다가 2001년 한미은행장을 맡았고, 이번에 재선임돼 씨티한미호의 수장을 맡게 됐다.
LG증권 백동호 연구원은 “씨티은행과 한미은행이 합칠 경우 한미은행 고객 대부분이 씨티은행으로 흡수돼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대우증권 고용욱 연구원도 “씨티그룹은 글로벌 금융그룹이기 때문에 자금조달이 쉬운데다 수십 년간의 노하우가 축적돼 있어 향후 국내 금융시장의 판도변화에 일조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뉴브릿지나 론스타펀드보다 씨티은행이 국내 시장에 훨씬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얘기. 실제로 국내 은행들도 코헨 은행장이나 팰론 은행장보다 하영구 한미은행장의 향후 전략에 대해 촉각을 세우는 분위기다.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씨티은행이 다양한 은행 상품을 앞세워 한미은행의 기존 고객들을 흡수한다고 볼 때, 기존의 다른 은행 고객들까지 뺏길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다른 은행에서 씨티은행의 진출을 두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사가 깊은 만큼 이미 다양한 은행 상품을 보유하고 있고, 전세계 씨티그룹으로부터 자금을 싼 값으로 조달할 수 있다는 점 때문. 대우증권의 고 연구원은 “씨티가 한미와 합쳐 본격적으로 영업을 할 경우 사실 국내 은행들은 자체적으로 상품을 개발하지 못하더라도 제2금융권 등과 협정을 맺는 등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금융업 일대에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특히 은행업계에서는 현재 대다수의 은행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프라이빗 뱅킹(PB) 분야만큼은 씨티+한미와 대적할 만한 상대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는 그러나 하영구 행장이 씨티의 막강한 후광에 힘입어 독보적인 위치를 유지한다고 해도 뉴브릿지(제일은행)나 론스타펀드(외환은행)의 막강한 자금력과 파워를 감안할 때 이들 역시 무시할 수준은 아니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더욱이 코헨 행장과 팰론 행장은 은행업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국제금융인이다.
지난 1월에 취임한 팰론 외환은행장은 체이스맨허턴, JP모건, 씨티은행 아시아 지사에서 무려 26년이나 근무한 아시아전문금융인으로 꼽힌다. 지난 2001년부터 제일은행장을 맡아온 코헨 행장 역시 프랑스 크레딧 리오네사라는 곳에서 25년간 소매금융을 전문으로 해온 국제 금융인이다. 특히 이들은 은행장을 맡은 이후 매우 공격적인 경영을 고수해 국내 시중은행들을 깜짝 놀라게 한 바 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팰론 행장이 취임하자마자 저돌적인 경영을 추진해 업무처리 시간이 무척 단축됐다”고 전했다. 특히 팰론 행장이 ‘부실자산 정리’, ‘소매금융강화’를 내걸어 현재 돈이 되지 않는 비수익자산 처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만큼 향후 은행 경쟁력이 강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코헨 제일은행장의 실적도 국내 은행들은 부담스러울 정도. 제일은행 관계자는 “과거 소매금융과 기업금융 비중이 4대6 정도였으나, 코헨 행장 취임 이후 7대3으로 역전됐다”며 “기업대출에 대한 리스크가 줄어 은행 자산이 급성장했다”고 말했다. 더구나 코헨 행장은 올해 안에 은행 실적이 호전되는 대로 주식을 국내와 미국시장에 동시에 재상장시킬 예정이어서 향후 자금조달이 훨씬 쉬워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영구 한미은행장은 노조파업에 따른 영향으로 아직 특별한 활동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그가 한미은행장을 역임하기 전 18년 동안 씨티은행에 몸담았던 점 등을 미뤄볼 때 씨티와 한미은행의 통합작업을 무난히 수행하고 본격적인 경영활동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 금융시장을 두고 정면으로 맞붙은 3인의 외국계 행장. 이들의 대격돌이 누구의 승리로 끝나게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