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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전문기자 | ||
―먼저 123승 달성과 관련해서 얘기를 나눠야 할 것 같다. 123승을 이루기까지 참으로 깊고 진한 사연들이 존재한다. ‘123’ 하면 무슨 생각부터 드는지 궁금하다.
▲글쎄, 아무래도 좋았던 시간보다 힘들었던 시간들이 더 많이 생각나는 것 같다. 팀을 여러 차례 옮겨 다녔고 선발에서 불펜투수로 보직을 옮기면서부터 1승, 1승을 거두기가 너무 어려웠다. 오래 전부터 소원했던 목표를 이룬 것 같고 이제 한 스텝 옮긴 느낌이랄까? 물론 123승을 이뤘다고 해서 내 야구 인생이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지만 말이다.
―이제 1승만 더 거두면 아시아 최다승 신기록을 이루게 되는데, 욕심이 나나?
▲막상 여기까지 오고 보니 조금 욕심이 생기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 숫자에 집착하고 싶지는 않다. 언젠가 숫자는 누군가에 의해 바뀌게 마련이다. 단, 123승이나 124승은 내 야구 인생에 어떤 목표와 동기부여를 제공했던 숫자들이다. 숱한 고통의 시간들, 그래서 포기란 단어를 떠올려야 했을 때, 한국으로 돌아가 야구하고 싶은 갈등이 심하게 일었던 순간들 속에서도 주저주저하며 계속 이곳에 머물렀던 이유는 바로 그 숫자들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박찬호의 야구인생이 어느 순간부터 도전과 좌절, 그리고 또 도전으로 이어진다. 이게 마지막일 것 같은데 또 다시 올라오는 저력도 있다. 그 비결이 무엇인가.
▲난 두 가지를 갖고 태어난 것 같다. 하나는 미련한 것과 두 번째는 인복이다. 내가 미련하면서도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데에는 남다른 인복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만 해오면서 배우지 못하고 갖추지 못하는 점을 보충해준 은인들이 존재했다.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수 있게 다리를 놔준 에이전트 스티브 김 씨와 LA다저스 전 구단주인 피터 오말리 씨, 그리고 한양대 김종량 총장 등의 결단과 추진이 없었다면 123승도 없었다.
―뉴욕 양키스를 선택했을 때, 우려의 시선들이 있었다. 스타플레이어들이 즐비한 팀에선 연봉이 적은 선수들에 대해 쉽게 생각하는 부분들 때문이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내가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버림받은 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다. 오히려 그런 상황 속에서 날 돌아보고 느낄 수 있는 시간들도 있었다. 만약 버림받지 않고 그 안에 계속 있으면서 등판도 못하고 유니폼에 흙먼지 한 번 묻히지 못한 채 경기장에 출퇴근만 했다면, 그게 더 괴로운 상황이 아니었을까? 버림 받았든, 내가 떠나왔든, 그로 인해 더 좋은 일이 생겼고, 정신적으로 덜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피츠버그로 옮기고 나서 운동도 더 열심히 했고 마음 편히 재활훈련에도 몰두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난 시간들에 대해 아쉬움은 없다.
―보통 잘나가는 팀으로 이적한 선수들은 초반에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들었다. 양키스에서 그런 편이었나?
▲양키스 팀이라서 힘든 게 아니라 시기적으로 좋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정확하다. 겨울에 제대로 준비를 못했고 스프링캠프에 바로 합류하는 바람에 체력적인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부상 회복이 지연되면서 서두르지 않으려고 해도 빨리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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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터칭=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추신수가) 너무 좋은 선수고 잘하는 선수라 긴장이 많이 됐던 게 사실이다. 다행히 주자가 없어서 편하게 상대하는 바람에 삼진으로 끝낼 수 있었다. 아마도 추신수 선수와의 맞대결이 양키스에서 마지막으로 가장 잘 던진 경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박찬호 선수가 언제쯤 한국 무대에 서게 될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야구의 마무리를 한국에서 하고 싶다고 줄곧 말해왔는데, 그 ‘때’가 언제쯤인지를 물어봐도 되겠나.
▲지금은 한화지만 나한테는 빙그레 이글스에 대한 추억이 있다. 고향팀이란 상징적인 의미 이상의 그 무엇이 있다. 한화로 가는 건 내 개인적인, 아주 달콤한 사탕을 먹고 싶은 유혹의 존재다. 굳이 한화가 아니더라도 어느 팀을 가든, 그 유혹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 무대에 선다고 해서 내가 한국 야구에 기록을 세우고 그 팀을 우승으로 이끌 만한 자신은 없다. 다만 나와 같은 문화권의 사람들과 같이 생활해보고 싶은 그리움이 있다. 더욱이 그동안 비난과 비판 속에서도 날 지켜준 팬들 앞에서 직접 내 야구를 펼쳐 보이고 싶은 소망도 있다. 그런데 주위에서 반대를 많이 한다. 왜냐하면 한국으로 돌아가서 내가 다칠까봐, 내가 메이저리그에서 쌓아 놓은 업적이 망가질까봐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을 한국에서 야구하고 싶다는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뜻인가.
▲그렇진 않다. 달콤한 사탕을 먹어서 탈이 났다면 그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없어진다. 그러나 그 사탕을 먹지 못하고 그만둔다면 두고두고 아쉬움과 미련으로 남을 것이다. 주위에선 결과에 대해 걱정을 하지만 난 그게 두렵지 않다.
―만약 한국 프로야구에서 ‘코리안 특급’ 박찬호의 이미지가 망가질 수 있다면? 그래서 팬들이 실망하게 된다고 해도 두렵지 않나.
▲그게 뭐 어떤가. 내가 중요시하는 건 결과가 아닌 과정이다. 내가 몇 승을 올리고 팀에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좋은 피칭을 선보이기 위해 어떤 노력과 연습을 기울였는지가 훨씬 더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그런 모습을 한국에서 언제 볼 수 있는지….
▲그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게 박찬호의 마지막 무대라고만 말하겠다. 그걸 못하게 되면 그 전이 마지막일 수 있다. 팬들이 원하는 대답은 당장 내년 시즌에 한국에서 뛰겠다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얘길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다.
―올 시즌이 끝나면 피츠버그와의 계약이 끝난다. 내년 시즌에는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팀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을 것 같은데.
▲지난해와 비슷하다. 여전히 우승에 대한 갈망이 있다. 그래서 전통 있는 팀, 좋은 팀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고 싶다. 내 별명이 ‘도전’ 아닌가. 밥 먹듯이 도전한다고 해서 누가 그렇게 부르더라. 포기를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노력한다면, 기회는 주어진다고 믿는다.
―선발 투수에 대한 미련은 버린 건가.
▲선발이라…. 그건 잘 모르겠다. 도전은 해볼 수 있는데 그 전처럼 자신은 없다. 내 몸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물론 한두 게임 선발로 뛸 수는 있지만 한 시즌을 끝까지 잘할 자신이 없다. 3년 동안 구원을 맡았는데 힘들지 않을까 싶다.
―메이저리그 17년 동안 한국에선 ‘박찬호=영웅’으로 보는 시각이 확대돼 왔다. 자신을 ‘영웅’으로 보는 부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난 절대로 영웅이 될 수 없다. 야구선수로서, 메이저리그에 처음 발을 내딛은 한국 선수로서의 영웅은 작은 부분에서 존재할 수 있겠지만 인간 박찬호는 또 다르다. 팬들이 좋아하는 건 야구선수 박찬호지 인간 박찬호는 아니지 않은가. 영웅이란 말은 듣기는 좋은데 왠지 외롭고 허하고 뭔가 빈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칭찬의 대상에서 비난의 대상으로 몰릴 때는 순간적으로 ‘나쁜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공인의 외로움…, 쓸쓸함을 혼자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인생을 사는 사람들만이 느끼는 상실감이 있었다. 2007년 이후, 잠시 말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지기 전, 박찬호에게 해외 진출을 꿈꾸는 고향팀 후배 한화 류현진에게 해 줄 말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주저 없이 “어떤 사람이 해외 진출을 도와주느냐가 중요하다. 어떤 에이전트와 손을 잡는지에 따라 자신의 야구 인생이 달라진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 박찬호는 더 이상 시속 160㎞를 던지지 못한다. 팀의 중심 투수도 아니다. 해마다 팀을 옮겨 다니는 ‘저니맨’ 신세라고 폄하해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의 기준이 아닌 그 자신에 목표를 두고 야구인생의 보폭을 넓혀갔다. 그래서 그의 행보를 지켜보는 시선이 ‘감동’이란 단어로 물드는지도 모르겠다.
뉴욕=riveroflym@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