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헝가리에서 바둑을 보급하는 김성래 8단이 명절을 쇠기 위해 잠시 귀국, 현지 활동의 애로점과 한국 바둑 세계화에 대해 얘기했다. |
우리는 프로의 단이 실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서양에서는 여전히 단의 숫자를 액면 그대로 믿어 주는 친구들이 많다. 게다가 과거에 우리 승단대회가 일본보다 상당히 어려웠고, 중국은 어려운 승단대회를 거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거의 지명되는 식이어서 우리는 상대적으로 실력에 비해 단위는 낮았다. 그러나 이제 특히 해외 보급에서는 구태여 단의 엄격함, 승단의 어려움, 그런 걸 내세우는 게 의미가 없어졌다. 김 8단의 얼굴은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밝아진 것 같았지만, 몸은 많이 빠진 모습이었다. 떠난 지 석 달 열흘, 약 100일이다. 길지는 않은 시간인데, 꽤 힘들었던 모양이다.
“6㎏쯤 빠졌더군요. 결혼한 직후에 살이 쪘다가 이후엔 빠진 적이 없었는데, 20년 전 몸무게로 돌아갔어요. 몸이 가벼워진 건 좋은데, 갑자기 흰머리도 생기고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 이번에 온 김에 한 2㎏은 늘리려고 열심히 먹습니다…^^”
김 8단은 1963년생, 1996년에 입단했다. 아마추어 시절 대학 바둑과 직장 바둑을 주름잡으면서 국가대표선수로 활약하며 이름을 날린 것에 비하면 서른셋 프로 데뷔는 한참 늦은 셈인데, 그때는 굳이 프로가 되겠다는 생각이 없었던 까닭이다. 입단 후 성적은 보통 수준. 대신 강의와 저술, 지도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2002년에는 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헝가리를 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특별한 건 없습니다. 다만 요즘은 유럽 바둑이 서유럽에서 동유럽으로 옮겨가는 추세이고, 물가도 동유럽이 싸고, 또 한국에 와서 프로가 된 헝가리의 디아나 코세기 초단(27)에게 들은 얘기도 있고 해서…. 유럽 바둑은 러시아가 땅이 워낙 넓으니까 그렇겠지만 인구가 제일 많고 실력도 세지만, 5명씩만 대결한다면 헝가리가 러시아보다 강합니다. 우선 프로가 있고 아마 7단, 6단도 있습니다. 잘 둡니다. 러시아에는 한국에서 입단한 샤샤와 스베타가 있고 헝가리에는 일본기원에서 입단한 카타린 타라누가 있는데, 샤샤와 타라누는 비슷하다고 쳐도 아마 쪽 꼭대기 부분은 헝가리가 셉니다. 물론 30명이나 50명씩으로 대결한다면 러시아가 세겠지요.
-어려움이 많지요? 한국기원에서 1년에 2000만 원 지원하는 걸로 버틸 수 있는지?
▲이번에 디아나 부모님이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고생했고, 지금도 고생하고 있지만, 그분들 도움이 없었더라면 고생을 훨씬 더했을 겁니다. 우선 말도 잘 안 통하니까요. 그러나 일하는 건 설령 고되다 하더라도 보람도 있고 즐겁습니다. 1년에 2000만 원은, 한 달에 200만 원이 좀 안 되는 건데, 그게 혼자 같으면 그런 대로 괜찮고, 기혼자인 경우 식구들이 함께 갔다면 또 어떻게 꾸려가는 길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식구들 놔두고 혼자 간 경우는 힘들지요. 가정 경제에는 전혀 도움을 못 주고 있습니다…^^
-기원을 내신 건가요?
▲기원은 아니고, ‘코리아 바둑 센터’라고 했습니다. 현재 스무 살 전후의 7~10명이 고정적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그보다 어린 학생들도 있는데, 학교 때문에 방학 때나 돼야 합니다. 한 달 정기권이 5만 원입니다. 바둑센터 사무실은 부다페스트 중심가, 40평 크기입니다. 집세가 우리 돈으로 70만 원, 제가 묵고 있는 원룸이 월세 30만 원에 관리비, 집세는 우리보다 싸지만 먹는 건 우리와 비슷해서 한 끼에 5000~6000원 정도입니다. 한국음식이요? 시내에 한국 식당이 다섯 군데 있는데, 제일 싼 게 1만 2000원 하는 자장면이고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같은 찌개 종류는 1만 7000원 정도 합니다. 비싸서 못 먹지요…^^
▲ 헝가리에서 바둑 대국을 펼치는 모습. |
▲아직은 뭐라고 말하기가 좀 어려운데… 떠나기 전부터도 개인적으로 생각하던 것이고 한국기원이나 유럽바둑협회, 미국바둑협회 등에서도 거론되던 것인데, 요컨대 유럽프로바둑연맹 같은 걸 만드느냐, 못 만드느냐 그게 관건입니다. 프로기사가 배출되고 프로기전이 생긴다면 그게 기폭제 역할을 할 겁니다. 다만 유럽바둑협회나 미국바둑협회는 자체적으로는 힘이 없습니다. 특히 유럽은 나라도 많아서 어느 한 나라가 주도하는 것도 힘듭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얘기가 한·중·일 세 나라가 좀 도와달라는 거지요. 현재로선 한국기원이 제일 관심을 많이 갖고 있고, 우리가 깃발을 든다면 중국이나 일본도 협조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 석 달 동안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핀란드, 스웨덴, 이탈리아 등지를 돌며 현지 바둑인들에게 한국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제가 밝혔으니까 한국기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서구 바둑계에서 이니셔티브를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거든요. 그게 곧 한국 바둑의 세계화잖습니까. 한국기원 유럽지부를 만들어 거기서 프로 입단대회를 열고 기전을 주최하는 겁니다. 1년에 2억 원 정도면 유럽바둑연맹의 이사장도 맡을 수 있습니다. 올해 시작된 프로-아마기사 해외 파견이 대한바둑협회가 ‘바둑 종주국화’ 사업명목으로 정부에서 받는 1년에 받는 지원금 6억 원 중 2억 원으로 이루어지는 건데, 이쪽으로 더 끌어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8단은 종주국화 사업의 지원금 배분에 대해선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모양이었다. 올해 안에 논의를 시작하고 내년에는 실천에 옮겨 후년부터는 한국기원 유럽지부가 본격적으로 가동한다는 일정을 누누이 강조했다.
-다른 어려움은 없나요?
▲밤이 무서버~요…^^ 말할 상대도 없고, 술 한잔 할 수도 없고, 상대도 없고, 그렇다고 딱히 할 일도 없고, 그쪽엔 밤 문화라는 것이 거의 없어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공포가 밀려오는 겁니다. 하하. 다뉴브강이 걸어서 5분 거리입니다. 힘들고 외로우면 밤에 다뉴브강변에 나가 멍하니 앉아 있거나 그냥 서성이다가 돌아옵니다.
김 8단의 주머니엔 신경안정제가 들어 있었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뭔가 낭만의 선율이 흐를 것 같은데, 한국 바둑 해외보급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