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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우승이닷” 국제축구연맹(FIFA) U-17 여자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한국대표팀이 기념촬영을 하며 환호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 ||
패러다임의 변화
설마했다. 최인철 감독이 이끌었던 국제축구연맹(FIFA) U-20 여자월드컵에서 3위에 올랐던 한국은 불과 한 달여 만에 또 한 번의 기적을 창조했다. U-17 여자월드컵에서 보여준 최덕주호의 퍼포먼스 역시 대단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제 여자축구계의 판도를 이끈 국가는 한국이 아니었다. 남자축구에 비해 역사가 짧은 탓에 ‘전통의 강호’란 수식을 붙이긴 어렵지만 여자축구의 경우, 대개 변화가 빨랐다. 국가간 이동 대신 유럽에서 남미, 남미에서 아시아로의 대륙별 변동이 매우 컸다. 한때 ‘바이킹의 후예’란 찬사 속에 북유럽 노르웨이가 강세를 보였다면 이후 독일과 브라질, 중국, 북한 등으로 판도 변화가 이뤄졌다.
박문성 SBS 축구해설위원은 “여자축구에서 ‘영원한 우승 후보’란 말은 없다. 실력의 격차가 분명히 존재하긴 해도 남자처럼 수십 년씩 차이가 있는 게 아니라 충분히 좁힐 수 있고, 틈새를 파고들 여지가 많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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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민지는 8골 3도움의 맹활약으로 골든슈와 골든볼을 수상했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 ||
축구계 인사들은 20세 미만 여자축구에 새 바람이 불고 있는 현 시점을 3세대의 등장으로 본다. 종목 전향도 드문 만큼, 본인 스스로 축구에 인생을 거는 일이 많아졌다. 가장 흔히 들을 수 있었던 “춥고 배가 고파서 매일 훈련이 끝나면 빵과 우유를 주는 축구를 했다”는 말도 지금 소녀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달라진 인식도 한몫한다. U-20 여자월드컵에서 좋은 성과를 이뤄낸 언니들은 대회가 끝난 뒤 “우린 좋아서 축구를 했고, 자식이 축구를 한다고 해도 전폭적으로 밀어주겠다”고 입을 모았다.
일단 좋아서 축구를 하다 보니 항상 한국 축구를 향해 지적돼 온 ‘기본기가 떨어진다’는 비난보다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상대로 완벽에 가까운 조직력을 발휘하고, 개인 기량을 발휘하는 배경으로 작용한다. 그저 아무런 능력도 갖추지 못한 채 투지와 정신력만 앞세웠던 예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최인철 감독을 도와 U-20 여자월드컵 때 코치로서 기적 창조에 공헌을 했던 대한축구협회 전임 지도자 정성천 코치는 “볼을 다루는 능력이나 상대를 제칠 수 있는 개인기 등이 훨씬 향상됐다”고 말했다. 윤종석 SBS스포츠 해설위원(서울 동명초 감독)도 “철저한 단계를 밟았던 게 언니들과 큰 차이가 있다. 체력을 갖추고, 경험만 지속적으로 쌓을 수 있다면 탄탄한 미래가 보장돼 있다”고 전망했다.
열악한 환경이 되레 도움?
남자 프로축구 K리그도 아직 선진 리그와는 거리가 멀다. 2부, 3부 등 하부 리그가 없고 승격과 강등 제도가 갖춰져 있지 않아 FIFA나 아시아축구연맹(AFC)은 K리그를 훌륭한 리그 시스템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여자축구는 더욱 심각하다. 인식이 아무리 바뀌었다곤 해도 턱없이 부족한 인프라와 환경 조건은 최악에 가깝다. U-20 여자월드컵이 끝난 뒤 축구계에서 여자축구 발전을 위한 긴급 제언으로 풀뿌리 축구 육성과 관련한 목소리가 높아지지만 오히려 학원 축구계에는 팀 창단 소식은커녕, 해체를 고려하거나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는 우울한 얘기가 곳곳에서 터진다. 이미 몇몇 초등학교 팀과 대학 팀들은 여자축구부 해체 과정의 일환으로 신입생 모집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상엽 전 여자대표팀 감독(현 한양여대)은 “4년제 대학에서 대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 학력을 중시하는 한국 정서상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앞서 거론된 열악한 환경이 오히려 실이 아닌, 득이 된 측면도 있다. 워낙 선수를 선발하고, 키워낼 수 있는 폭이 좁다보니 관리 시스템은 훨씬 증대됐다.
축구협회가 야심차게 도입하고 지속적으로 투자, 관리를 하고 있는 대표팀 상비군 체제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전화위복이 됐다고 할까. 협회는 연령에 따라 선수들을 선발, 관리하는 상비군 시스템에 의거, 선수들을 파주NFC 등으로 소집해 정기적으로 훈련시키고 있다. 이곳을 경험하면 마치 자신이 태극마크를 달고 대표팀에 소집된 것과 같은 심리적 효과도 얻을 수 있다는 게 조영증 파주NFC 센터장(U-17 여자대표팀 단장)의 설명이었다.
뿐만 아니라 무엇과도 바꿀 수 있는 소중한 경험도 얻을 수 있다. 대표팀 상비군은 단순히 파주NFC에 모아놓고 훈련만 시키는 게 아니다. 또래 연령에 맞도록 구분된 다양한 국제 페스티벌에 출전시켜 외국 선수들과 실전을 통해 국제 감각과 경험을 쌓도록 한다. 자신감이 배가될 수밖에 없다. 정성천 코치는 “대표팀 상비군은 선별된 선수를 정기적으로 모아 놓고 훈련을 시키다보니 마치 학교 축구부나 클럽과 비슷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동조했다.
결국 시기가 문제였을 뿐, 모든 게 이미 짜인 각본대로 움직인 셈이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
최인철 감독이 말하는 최덕주 감독
“선수들 야단치고 되레 사과하는 분”
“옆집 큰 형님 같은 분이고 선수들에겐 아버지 같은 분이다. 온화함의 대명사라고 할까.”
U-20 여자축구 대표팀을 이끌고 세계 3위의 대업을 이룬 최인철 감독이 최덕주 감독에 대해 입을 열었다. 선수들이 큰 실수를 하더라도 온화함을 잃지 않는다고. 최인철 감독은 “선수들 호통치고 나서 선수 하나하나 일일이 찾아가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분”이라고 덧붙인다. 최인철 감독과 최덕주 감독과는 대한축구협회(KFA) 전임 지도자로 함께 생활하며 인연이 됐단다. 12세, 15세 유소년 대표 선수들을 함께 훈련시키며 축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고.
선수 시절 포항제철에서 뛰었던 최덕주 감독은 독일을 거쳐 1987년 일본 마쓰시타전기(현 감바 오사카)에서 2년간 선수 생활을 했다. 89년 현역에서 은퇴한 그는 곧바로 일본 모모야마 대학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2004년까지 일본에서 지도자 생활을 오래했다. 1992년엔 일본 호고쿠 공업팀의 감독이 됐고, 1998년에는 오사카 조선고 감독을 맡았다. 2002년엔 오사카 실업선발팀에 합류해 37년 만에 오사카에 일본 전국체전 우승컵을 선사하기도 했다.
2006년 12월 대한축구협회(KFA) 전임지도자로 선임된 후로 한국 여자 축구와 인연이 닿았다. 지난해 AFC 여자 U-16 챔피언십에선 막강한 실력을 뽐냈다. 조별예선에서 결승전까지 무패(4승 1무) 행진을 거듭했다. 게다가 여자축구의 강호인 북한, 일본을 차례로 쓰러뜨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U-17 월드컵에서도 뛰어난 지도력을 선보이며 세계 최강 자리에 군림했다. 최인철 감독은 최덕주 감독의 ‘맞춤 전략’에 박수를 보냈다. “상대팀의 성격을 철저히 분석해 그에 딱 들어맞는 전략을 짰더라. 후반에 체력이 떨어지는 나이지리아에 대해선 끝까지 밀어붙여 이길 수 있단 자신감을 불어넣었고, 스페인전에선 패싱 컨트롤과 결정력이 뛰어난 몇몇 선수들의 발을 묶어 득점을 차단했다. 상대팀을 철저히 분석한 최덕주 감독의 지략이 빛나는 대회였다.”
‘우승 기적’ 이끈 4인방 스토리
김민아 ‘뇌진탕 투혼’으로 골문 꽉꽉
세계 정상을 향한 17세 태극소녀들의 도전은 우리의 9월을 더욱 즐겁게 했고, 한가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우승을 향한 어린 여장부들의 당찬 전진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우승 주역으로 꼽히는 여민지 김아름 장슬기 김민아, 이들 4인방의 축구 인생 스토리 속으로 들어가 본다.
우승, MVP, 득점왕을 모두 차지하며 ‘트리플 크라운’의 영광을 차지한 한국의 주포 여민지. 그가 그라운드에서 ‘킬러 본능’을 뽐내게 되기까진 한 살 위 친오빠의 덕이 컸다. 클럽 축구 선수로 활약하던 오빠를 따라다니다 축구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 초등학교 4학년 때 명서초등학교 축구부 감독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본격적인 축구 수업에 들어갔다. 호기심에 잠깐 하다 말겠지 생각했던 부모님도 축구를 향한 딸의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여민지 어머니 임수영 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어릴 때부터 소꿉장난보다 남자애들과 공놀이하는 걸 더 좋아하던 딸이었다. 며칠 동안 여자 축구부에서 본격적으로 숙소생활을 하다보면 마음이 바뀔 줄 알았는데 너무 재밌어 하더라. 일주일도 안돼서 정식으로 축구부에 들어갔다.”
운동신경은 어머니를 닮았다. 여민지 어머니 임수영 씨는 중·고등학교 때 전국체전에도 출전했던 테니스 선수였다. 지도자 못지않은 날카로운 지적으로 딸의 축구 실력을 키운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 어머니를 둔 덕분일까. 여민지는 또래에 비해 성실하고 자기관리가 철저하다. 경남 함안대산고 김은정 감독은 “어린 나이에도 칼로리를 따져 먹는다. 먹어야 할 음식,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을 철저히 구분해서 먹더라”며 혀를 내두른다. 그라운드 위에선 폭발적인 스피드를 자랑하는 여민지지만 평상시엔 그와 정반대로 느릿느릿하단다. “공 찰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밥 먹고, 샤워하고, 심지어 말하는 것까지도 느리다. 특히 식사할 때 기본 30분은 잡아야 한다.”
U-17 여자축구 대표팀의 듬직한 리더, 김아름. 전 경기 풀타임 활약하던 그의 손끝 발끝에서 대한민국 축구 역사가 새롭게 그려졌다. 이번 결승전에선 ‘폭풍 중거리슛’으로 발군의 실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축구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했다. 달리기도 잘하는 데다 공도 잘 다뤄 동네에선 이미 축구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고. 그의 어머니 김순덕 씨는 “여자아이라 운동보단 공부를 시키고 싶었다. 주위에서 소질이 있다고 칭찬을 많이 하고 본인도 축구에 대한 의지가 강해 응원해주고 있다”며 미소를 짓는다.
시련도 있었다. 축구를 막 시작할 무렵,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학교 축구부에서 먹고 자고 하며 하루하루 버텼던 것. 어릴 적 고생 덕분일까. 김아름은 소속팀에서 그리고 대표팀에서 듬직한 맏언니로 성장했다. 반복되는 훈련 생활에 슬럼프도 찾아왔다. 그러나 집에선 절대 힘든 내색하지 않는 속 깊은 딸이었다. 묵묵히 혼자 슬럼프를 이겨냈다고. 본인보다 어머니를 더 챙기는 딸에게 김 씨는 미안한 마음이 한가득이다.
전 경기 풀타임 활약하며 그라운드를 누빈 장슬기. 그는 결승전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서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키며 온 국민에게 우승컵을 안겼다. 대표팀에선 오른쪽 풀백을 맡아 상대팀 공격을 봉쇄했지만 그의 원래 포지션은 공격수다. 1학년인데도 탁월한 실력을 갖춰 팀에선 이미 없어선 안 될 선수라고. 충남 인터넷고 김규태 감독은 “수비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도 대표팀 가서 곧잘 하더라. 원래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게임 조율 능력이 뛰어난 선수”라며 칭찬일색이다. 공간 창출 능력, 빠른 돌파능력은 아버지를 빼어 닮았다. 장슬기의 아버지 장영복 씨는 실업팀에서 축구 선수로 활약했다.
U-17 여자 대표팀이 우승컵을 들어올리기까지 골키퍼 김민아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대회를 앞두고 주전 골키퍼 심단비의 보조 역할에 불과했던 그였다. 그러나 심단비의 부상으로 수문장으로 나선 김민아는 신들린 선방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한 김민아는 골키퍼로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경북 포항여전고 이성천 감독은 “판단력이 좋고 순발력이 뛰어나다. 승부차기에서 선방한 적이 많아 이번에도 잘해낼 거라 믿었다”며 칭찬을 거듭한다. 김민아의 유니폼은 두 개다. 필드 플레이도 잘하기 때문.
슬럼프도 있었다. 김민아의 어머니는 “초-중-고 올라가면서 많이 힘들어했다. 그 고비를 스스로 잘 이겨냈다. 8강전 끝나고 머리가 어지럽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결승전까지 잘해줘 너무 대견하다”며 미소를 짓는다. 8강전 뇌진탕으로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마지막 승부차기까지 든든하게 골문을 지킨 김민아. 한국 여자축구의 수문장으로 거듭날 그의 화려한 비상을 기대해본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
“선수들 야단치고 되레 사과하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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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0 여자축구 대표팀을 이끌고 세계 3위의 대업을 이룬 최인철 감독이 최덕주 감독에 대해 입을 열었다. 선수들이 큰 실수를 하더라도 온화함을 잃지 않는다고. 최인철 감독은 “선수들 호통치고 나서 선수 하나하나 일일이 찾아가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분”이라고 덧붙인다. 최인철 감독과 최덕주 감독과는 대한축구협회(KFA) 전임 지도자로 함께 생활하며 인연이 됐단다. 12세, 15세 유소년 대표 선수들을 함께 훈련시키며 축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고.
선수 시절 포항제철에서 뛰었던 최덕주 감독은 독일을 거쳐 1987년 일본 마쓰시타전기(현 감바 오사카)에서 2년간 선수 생활을 했다. 89년 현역에서 은퇴한 그는 곧바로 일본 모모야마 대학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2004년까지 일본에서 지도자 생활을 오래했다. 1992년엔 일본 호고쿠 공업팀의 감독이 됐고, 1998년에는 오사카 조선고 감독을 맡았다. 2002년엔 오사카 실업선발팀에 합류해 37년 만에 오사카에 일본 전국체전 우승컵을 선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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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덕주 감독이 선수들에게 작전을 설명하고 있다. | ||
‘우승 기적’ 이끈 4인방 스토리
김민아 ‘뇌진탕 투혼’으로 골문 꽉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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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김민아, 여민지, 김아름, 장슬기 | ||
우승, MVP, 득점왕을 모두 차지하며 ‘트리플 크라운’의 영광을 차지한 한국의 주포 여민지. 그가 그라운드에서 ‘킬러 본능’을 뽐내게 되기까진 한 살 위 친오빠의 덕이 컸다. 클럽 축구 선수로 활약하던 오빠를 따라다니다 축구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 초등학교 4학년 때 명서초등학교 축구부 감독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본격적인 축구 수업에 들어갔다. 호기심에 잠깐 하다 말겠지 생각했던 부모님도 축구를 향한 딸의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여민지 어머니 임수영 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어릴 때부터 소꿉장난보다 남자애들과 공놀이하는 걸 더 좋아하던 딸이었다. 며칠 동안 여자 축구부에서 본격적으로 숙소생활을 하다보면 마음이 바뀔 줄 알았는데 너무 재밌어 하더라. 일주일도 안돼서 정식으로 축구부에 들어갔다.”
운동신경은 어머니를 닮았다. 여민지 어머니 임수영 씨는 중·고등학교 때 전국체전에도 출전했던 테니스 선수였다. 지도자 못지않은 날카로운 지적으로 딸의 축구 실력을 키운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 어머니를 둔 덕분일까. 여민지는 또래에 비해 성실하고 자기관리가 철저하다. 경남 함안대산고 김은정 감독은 “어린 나이에도 칼로리를 따져 먹는다. 먹어야 할 음식,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을 철저히 구분해서 먹더라”며 혀를 내두른다. 그라운드 위에선 폭발적인 스피드를 자랑하는 여민지지만 평상시엔 그와 정반대로 느릿느릿하단다. “공 찰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밥 먹고, 샤워하고, 심지어 말하는 것까지도 느리다. 특히 식사할 때 기본 30분은 잡아야 한다.”
U-17 여자축구 대표팀의 듬직한 리더, 김아름. 전 경기 풀타임 활약하던 그의 손끝 발끝에서 대한민국 축구 역사가 새롭게 그려졌다. 이번 결승전에선 ‘폭풍 중거리슛’으로 발군의 실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축구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했다. 달리기도 잘하는 데다 공도 잘 다뤄 동네에선 이미 축구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고. 그의 어머니 김순덕 씨는 “여자아이라 운동보단 공부를 시키고 싶었다. 주위에서 소질이 있다고 칭찬을 많이 하고 본인도 축구에 대한 의지가 강해 응원해주고 있다”며 미소를 짓는다.
시련도 있었다. 축구를 막 시작할 무렵,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학교 축구부에서 먹고 자고 하며 하루하루 버텼던 것. 어릴 적 고생 덕분일까. 김아름은 소속팀에서 그리고 대표팀에서 듬직한 맏언니로 성장했다. 반복되는 훈련 생활에 슬럼프도 찾아왔다. 그러나 집에선 절대 힘든 내색하지 않는 속 깊은 딸이었다. 묵묵히 혼자 슬럼프를 이겨냈다고. 본인보다 어머니를 더 챙기는 딸에게 김 씨는 미안한 마음이 한가득이다.
전 경기 풀타임 활약하며 그라운드를 누빈 장슬기. 그는 결승전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서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키며 온 국민에게 우승컵을 안겼다. 대표팀에선 오른쪽 풀백을 맡아 상대팀 공격을 봉쇄했지만 그의 원래 포지션은 공격수다. 1학년인데도 탁월한 실력을 갖춰 팀에선 이미 없어선 안 될 선수라고. 충남 인터넷고 김규태 감독은 “수비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도 대표팀 가서 곧잘 하더라. 원래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게임 조율 능력이 뛰어난 선수”라며 칭찬일색이다. 공간 창출 능력, 빠른 돌파능력은 아버지를 빼어 닮았다. 장슬기의 아버지 장영복 씨는 실업팀에서 축구 선수로 활약했다.
U-17 여자 대표팀이 우승컵을 들어올리기까지 골키퍼 김민아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대회를 앞두고 주전 골키퍼 심단비의 보조 역할에 불과했던 그였다. 그러나 심단비의 부상으로 수문장으로 나선 김민아는 신들린 선방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한 김민아는 골키퍼로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경북 포항여전고 이성천 감독은 “판단력이 좋고 순발력이 뛰어나다. 승부차기에서 선방한 적이 많아 이번에도 잘해낼 거라 믿었다”며 칭찬을 거듭한다. 김민아의 유니폼은 두 개다. 필드 플레이도 잘하기 때문.
슬럼프도 있었다. 김민아의 어머니는 “초-중-고 올라가면서 많이 힘들어했다. 그 고비를 스스로 잘 이겨냈다. 8강전 끝나고 머리가 어지럽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결승전까지 잘해줘 너무 대견하다”며 미소를 짓는다. 8강전 뇌진탕으로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마지막 승부차기까지 든든하게 골문을 지킨 김민아. 한국 여자축구의 수문장으로 거듭날 그의 화려한 비상을 기대해본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