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9월 16일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SK가 KIA를 상대로 득점을 올리고 있다. |
‘가을남자’ 김재현 활약 기대
▲SK= “우승? 4위만 해도 다행이다.” 시즌 전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SK 김성근 감독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도 그럴 게 3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오르며 SK는 만신창이 상태였다. 우선 주전 선수 가운데 부상자가 태반이었다.
지난해 왼쪽 아킬레스건을 다친 포수 박경완은 ‘은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부상 상태가 심각했다. 박재상, 나주환, 최정, 정상호 등 주전 야수들도 부상으로 시즌 전망이 불투명했다.
투수진은 더했다. 김광현, 송은범 두 선발 원투펀치는 전력투구하지 못했고, ‘불펜의 핵’인 정대현, 전병두는 공조차 잡지 못했다. 그럼에도, SK는 외부 FA(자유계약선수)를 한 명도 잡지 않았다. 김 감독이 “누수만 있고, 보강은 없다”라며 아쉬운 표정을 지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SK는 강했다. 시즌 내내 1위를 달렸다. 1986년부터 1989년까지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해태(KIA의 전신)에 이어 프로야구 사상 두 번째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팀이 됐다.
그렇다면 SK가 악재를 뚫고 정규시즌 1위에 오른 비결은 무엇일까. 단연 마운드가 탄탄했기 때문이다. 올 시즌(9월 24일 기준) SK의 팀 평균자책은 3.69다. 8개 구단 가운데 유일한 3점대 평균자책이다.
포스트시즌은 확실한 선발 2명만 있으면 우승한다는 소리가 있다. 한국시리즈 우승은 에이스 1명으로도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김광현, 가도쿠라 겐 두 수준급 선발을 보유한 SK는 우승에 가장 가깝다.
평균자책 3.85의 구원진도 SK의 강점이다. 버릴 경기가 없는 단기전에서 3회 이상을 책임지는 롱릴리프는 선발 못지않게 중요하다. 왜냐? 단기전에선 역전과 재역전이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SK는 행복한 팀이다. 고효준, 엄정욱, 이승호 등 롱릴리프가 풍부하다. 삼성 선동열 감독이 SK를 보며 가장 부러워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SK의 약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타선의 파워다. 올 시즌 SK는 팀 홈런 119개를 기록했다. 삼성보단 4개가 많지만, 두산과 롯데와 비교하면 각각 29, 66개나 적다. 무엇보다 3, 4, 5번 중심타순의 타율이 2할8푼에 그친 게 아쉽다. 한방으로 승부가 결정나는 단기전에서 파워의 열세는 심각한 문제다.
SK의 키맨은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김재현이다. ‘가을 남자’로 불릴 만큼 김재현의 포스트시즌 성적은 뛰어나다. 통산 59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7리, 9홈런, 27타점을 기록 중이다.
▲ 사진제공=삼성라이온즈, 두산베어스, 롯데자이언츠 |
▲삼성=삼성 선동열 감독은 ‘무욕의 사령탑’이다. 겉으론 그렇다. SK와 정규시즌 1위를 놓고 접전을 벌일 때도 “우리의 목표는 정규 시즌 2위”라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 선 감독이라고 1위 욕심이 없었겠나. 되레 선 감독은 누구보다 한국시리즈 직행의 의미를 잘 안다. 자신의 입으로 “2005, 2006시즌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건 순전히 정규시즌 1위로 체력을 비축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선 감독이 “정규시즌 2위가 목표”라고 말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1위를 욕심내다 보면 무리수를 두고, 결국엔 부상자가 속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삼성의 강점이 바로 그것이다. 특별한 부상자 없이 주전과 백업이 탄탄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투수진만 봐도 그렇다. 마무리 오승환이 부상으로 이탈한 걸 빼곤 눈에 띄는 부상자가 없다. 되레 시즌 초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갔던 권오준, 윤성환이 포스트 시즌을 앞두고 1군으로 전격 복귀했다.
권혁, 정현욱, 안지만으로 이어지는 특급 구원진도 선 감독의 특별 보호 아래 별다른 부상 없이 포스트 시즌을 맞게 됐다. 더 고무적인 건 배영수, 정인욱, 이우선 등 선발진과 구원진의 백업 투수들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삼성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려면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확실한 선발투수다. 선 감독은 “4선발 체제로 포스트 시즌을 치르겠다“고 밝혔다. 4선발은 차우찬, 장원삼 두 왼손 투수와 경험 많은 배영수, 베테랑 외국인 투수 팀 레딩이 유력하다.
변수는 포수다. 주전포수 진갑용은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렸다. 지난 시즌 57경기 출전 이후 올 시즌도 100경기 이하에 출전했다. 특히나 도루저지율이 서서히 하락하고 있다. 2007시즌 3할5푼이었던 도루저지율은 2008시즌 3할6푼6리를 기점으로 2009시즌 3할8리, 올 시즌엔 2할7푼1리로 뚝 떨어졌다. 한국시리즈에서 진갑용이 얼마나 상대팀의 ‘뛰는 야구’를 잡느냐가 관건이다.
빅게임 강한 고영민 살아나야
▲두산=‘선동열이 없었다면’ 이강철(KIA 코치)은 해태를 대표하는 투수가 됐을 것이다. ‘이승엽이 없었다면’ 심정수는 한국프로야구를 상징하는 거포로 대우받았을 것이다. 두산도 마찬가지다. ‘SK가 없었다면’ 두산은 2000년대 후반 최고의 팀이 됐을 게 자명하다. 그러나 2007, 2008시즌 한국시리즈, 2009시즌 플레이오프에서 SK의 높은 벽 앞에서 좌절해야 했다.
두산 김경문 감독은 “올 시즌은 다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 감독은 “좌절도 경험”이라고 믿는다.
맞는 말이다. 두산의 강점은 경험이다. 두산은 SK와 함께 최근 3년간 가장 많은 포스트 시즌 경기를 치렀다. 그만큼 큰 경기 경험이 많다. 팀의 주포 김현수가 “어떻게 포스트 시즌을 준비하고 치러야 하는지 알겠다”라고 말하는 건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SK, 삼성, 롯데 등 상위팀을 상대로 상대전적에서 모두 뒤지는 건 분명한 약점이다. 실제로 올 시즌 두산은 SK와 삼성에 각각 8승11패, 9승10패로 뒤졌고, 롯데에도 7승12패로 열세였다. 모 감독이 두산을 가리켜 우스갯소리로 “깡패곰”이라고 한 것도 올 시즌 두산이 강팀에 약하고, 약체팀에게 철저히 강했기 때문이다.
두산이 한국시리즈 대권을 잡으려면 ‘기동력 야구’를 다시 가동해야 한다. 준플레이오프에서 만날 롯데보다 ‘힘의 야구’에선 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 시즌 두산은 팀 도루 127개로 4강 팀 가운데 롯데 다음으로 도루가 적다.
‘키 맨’은 고영민이다. 올 시즌 고영민은 타율 2할7리, 6홈런, 35타점으로 매우 부진하다. 도루도 11개에 불과하다. 2007시즌 이후 꾸준히 내림세다. 일부 야구전문가들이 “국가대표 2루수가 이젠 평범한 2루수가 됐다”고 평할 정도다. 하지만, 고영민은 지난해 포스트 시즌 9경기에서 타율 3할4푼, 3홈런, 8타점, 4도루로 맹활약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과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증명했듯 큰 경기에 무척 강하다. ‘고제트’가 살아야 두산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두산 킬러’ 이재곤이 복병
▲롯데=“이번 준플레이오프에서는 롯데가 두산을 뛰어넘을 것 같다.” 많은 야구해설가의 조심스러운 예상이다. 롯데 제리 로이스터 감독 역시 같은 말을 한다.
야구계에서 로이스터 감독의 별명은 ‘준플레이오맨’이다. 2008, 2009시즌 2년 연속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맥없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이스터 감독은 “폭발력 넘치는 타선과 신예 투수들의 등장으로 포스트 시즌 전망이 어느 때보다 밝다”고 주장한다. 틀린 말도 아니다. 올 시즌 롯데의 팀타율은 2할8푼7리로 8개 구단 가운데 부동의 1위다. 팀 홈런 185개는 넥센의 85개와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다.
조성환, 홍성흔, 이대호, 카림 가르시아, 강민호, 손아섭으로 이어지는 타선은 여전히 뜨겁다. 조정훈, 손민한의 부재로 우려됐던 선발투수진은 신예 이재곤, 김수완이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며 오히려 지난 시즌보다 낫다는 평가다.
그러나 단기전은 ‘누가 더 실수를 줄이느냐’의 싸움이다. 롯데 수비진이 약점으로 꼽히는 이유다. 로이스터 감독이 인정하듯 롯데 외야진은 구멍 난 그물이다. 김주찬이 도루에 쏟는 정열을 수비에 1%만 쏟았어도 로이스터 감독의 근심은 덜 했을 것이다.
‘키 맨’은 사이드암 투수 이재곤이다. 올 시즌 이재곤은 두산전에 4번 나와 3승무패 평균자책 4.84를 기록했다. 평균자책은 다소 높지만, 9월 11일 잠실 두산전에서 5이닝 동안 9실점 한 여파가 컸다. 그러나 두산 타자들은 여전히 이재곤을 “공략하기 어려운 투수”라고 말한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김성근 알고보면 ‘로이스터 팬’
▲ SK 김성근 감독 |
김 감독이 직접 롯데 제리 로이스터 감독에게 사과의 뜻을 전해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이 발언으로 야구계는 한동안 벌집을 쑤신 듯 시끄러웠다.
그러나 김 감독이 ‘평소 롯데를 무시했다’는 일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반대다. 김 감독은 롯데 야구를 극찬했던 이다.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훈련에 임하고, 구단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라고 칭찬하기에 바빴다. 로이스터 감독에 대해서도 “배울 게 많은 지도자”라며 “로이스터식 야구가 성공해야 한국프로야구도 다양성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일본통’인 김 감독은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미국 야구에 해박하다. 독학으로 미국야구를 배웠다. 1982년 OB(두산의 전신) 투수코치 때부터 “선발과 중간, 마무리로 투수들을 나눠 기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미국야구의 영향을 받은 까닭이었다. 코치진의 철저한 분업화와 책임제도 전형적인 미국야구 식이다.
그렇다면 로이스터 감독은 SK와 김성근 감독을 어떻게 볼까. “탄탄한 기본기와 수비를 보면 최고가 될 수밖에 없는 팀”이라는 게 로이스터 감독이 평가하는 SK 야구다. 김 감독에 대해선 “승부처마다 놀라운 작전과 선수 기용으로 패배를 승리로 만드는 이”로 극찬한다.
롯데의 한 코치는 “SK에 연패를 거듭하며 로이스터 감독이 한국야구에 대한 선입견에서 벗어난 것 같다”며 “로이스터 감독이 ‘SK를 보고 야구를 보는 시각이 넓어졌다’고 말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 왼쪽부터 삼성 선동렬 감독, 두산 김경문 감독, 롯데 로이스터 감독. |
하지만, 경기의 맥을 정확히 짚어, 지고 있어도 투수들을 총출동시켜 역전을 시키는 김 감독과 달리 선 감독은 ‘지고 이기는 경기’를 확실하게 구분한다.
두산 김경문 감독은 김성근 감독과 인연이 깊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 때만 해도 OB의 안방마님은 김경문이었다. 그러나 김성근이 투수코치에서 OB 사령탑으로 승격하며 허리가 아픈 김경문 대신 백업 포수 조범현(KIA)을 중용했다. 일부 야구 원로는 지금도 “조범현과 김성근이 충암고 사제지간이었기 때문에 김경문이 불이익을 당했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1990년 김경문이 선수생활 연장을 위해 OB에서 태평양으로 이적할 때 이를 도와준 이는 다름 아닌 당시 태평양 사령탑이던 김성근 감독이었다.
김경문 감독은 “SK전은 김성근 감독의 화려한 용병술 때문에 몇 배나 힘들다”고 밝힌다. 그러나 지난해 포스트 시즌에서 김성근 감독은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적장으로 “김경문”을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