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이 지났지만 부동산 시장은 썰렁하기만 하다. 사진은 강남지역 부동산 모습.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최근 정부가 발표한 8·29 대책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시기는 그래서 추석 이후인 10월부터다. DTI 규제가 한시적으로 사라지면서 자금 여력이 생긴 매수 대기자들이 급매물을 사고 새 아파트 분양을 받으면서 시장이 다시 움직일 가능성이 있어서다. 올해 내내 하락했던 부동산 시장이 추석 이후 확 바뀐 날씨만큼 ‘대역전극’을 연출할 수 있을까.
◇ 매도매수 시각차이
추석 직전인 지난 9월 17일 오후 고양시 일산 서구의 부동산중개업소 밀집지역. A 공인 관계자는 “오늘 전세 문의전화만 딱 한 통 받았다”며 “정부가 DTI 규제를 풀어줘 급매물은 좀 팔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부동산 대책이 나온 지 한 달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거래가 되지 않는다”며 답답해했다. 인근 B 공인 관계자는 “집을 팔려는 사람은 8·29 대책으로 집값이 좀 올라갈 것으로 예상하고 호가를 올렸다가 매수자들이 움직이지 않자 다시 호가를 내리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부동산중개업자들은 정부 대책이 매도자와 매수자 간의 시각 차이를 벌려놓아 거래를 더욱 어렵게 했다고 푸념했다. 매도자들은 8·29 대책 효과로 주택시장이 회복할 것으로 기대하고 매물을 회수하거나 호가를 올리고 있는 반면, 매수자들은 여전히 집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관망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C 공인 관계자는 “집값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누가 빚을 내서 집을 사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8·29 대책이 발표된 이후 집값에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9월 서울(-0.2%) 및 수도권(-0.2%) 집값은 모두 내렸다. 모두 6개월 연속 내림세다. 다만 하락폭만 약간 줄었다. 8월 서울과 수도권은 모두 -0.4%, 변동률을 기록했다. 전국 기준으로는 8월 0% 변동률로 움직임이 없었지만 부산 등 집값이 많이 오르면서 0.1%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시장의 이런 분위기가 10~11월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특히 최근 기준금리 동결로 인해 금리 인상 압박은 더 심해질 전망이다. 집값 추가 하락에 금리 인상까지 전망되니 적극적으로 내 집 마련에 나서는 사람들이 늘어나긴 어려운 조건인 셈이다. 투모컨설팅 강공석 사장은 “8·29 대책 이후 용인 분당 등 집값을 알아보는 문의는 늘었는데 매매로 이어진 건은 아직 없었다”며 “상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아직 집값이 더 떨어지길 기대하는 분위기로 이런 추세가 추석 이후라고 달라지진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 새 아파트 공급
서울 독산동 한양수자인 아파트 39가구는 지난 9월 14일부터 3일간 순위 내 청약을 받았으나 단 7명이 청약하는 데 그쳤다. 분양가도 주변 시세에 비해 낮은 편이었고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소형(전용 67~68㎡)으로만 구성됐는데도 대거 미달됐다. 이에 앞선 8~9일 서희건설이 경기도 수원시 율전동에 공급한 서희스타힐스(전용 59㎡) 38가구도 단 2명만 청약했다. 미분양 물량이 넘치는 가운데 수요자들이 분양가 인하 등을 기다리면서 대기하고 있어서다.
10월엔 새 분양 물량이 풍부하다. 기존 미분양과 함께 새 아파트가 넘치면서 치열한 판촉전을 벌일 전망이다. 일단 저렴한 보금자리주택이 올 가을 드디어 분양한다. 1차지구 본청약과 3차지구 보금자리주택 사전예약이 예정돼 있다. 정부는 3차지구 사전예약 물량 가운데 성남 고등지구(2700채) 물량을 이번에 분양하지 않기로 했다.
이 보금자리주택 물량을 제외하고도 올 10월 분양은 올해 월간 기준으로 가장 많은 3만 1031가구(민간분양 기준)나 된다. 상반기 잇따른 악재와 여름 비수기로 분양을 미뤄왔던 건설사가 한꺼번에 쏟아낼 예정인 까닭에서다.
물량이 이렇게 많기 때문에 중대형 위주로 입지가 떨어지는 곳에서는 미분양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가뜩이나 수도권까지 미분양이 늘어나는 판에 새 아파트 공급이 넘치는 셈이다. 스피드뱅크 조민이 팀장은 “건설사들이 기존 미분양 판매를 위해 분양가 인하 등 다양한 판촉 전략을 추진할 것”이라며 “만약 집을 사려고 했다면 신규분양, 미분양, 입주예정단지 등 여러 매물을 비교해보고 선택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 재건축 재개발 위축
강남권 재건축 시장 전망도 그다지 밝지 않다. 일반 아파트 가격 하락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재건축에 대한 기대치 역시 낮아지고 있어서다. 유앤알컨설팅 박상언 사장은 “재건축 시장에는 연말까지 더 이상 호재가 없어 지지부진한 장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재개발 사업도 속도를 내는 곳이 늘어나길 기대하긴 어렵다. 사업 수지를 맞추기 위해 일반분양분의 분양가를 높여야 하는데 지금과 같이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는 분양가를 높일 수가 없어서다.
주택시장과 달리 상가시장에는 분양가 인하 물건을 중심으로 활기를 띨 전망이다. 특히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가격을 낮춰 재분양하고 있는 아파트 단지 내 상가, 역세권 근린상가, 선임대 상가 등의 인기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판교·광교신도시 내에서 상가가 분양돼 높은 경쟁률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역세권 소형 오피스텔도 1인 가구 증가 및 20~30대들의 아파트 기피 등의 영향으로 꾸준히 수요가 붙을 전망이며, 경매시장에서는 유찰 횟수가 많은 저가 매물과 소형 아파트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 듯하다.
◇ 전세난 심화
최근 심화하는 전세난의 추이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전세난이 심화하면서 매수자들이 돈을 좀 더 보태 집을 사자고 마음을 먹을 경우 매매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다만 이런 추세가 일부 소형 주택에만 한정되고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 단지 등으로 확대되지 않는다면 역시 전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란 분석이 더 많다.
세중코리아 김학권 사장은 “전세난이 매수심리를 자극해 신도시나 용인 고양 등 미분양이 많은 지역 매수세로 연결된다면 매매시장 분위기는 급반전할 수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일부 지역에 국한된 상황으로 머물면 시장 분위기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유보적인 전망을 내놨다.
박일한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기자 jumpcu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