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일부 산은 직원들의 도덕불감증에 포커스가 맞춰졌음에도 여전히 각종 루머가 나돌고 있다.
다음은 산은 자체 조사에 의해 밝혀진 사건의 전말.
사건이 시작된 것은 지난 1999년 무렵. 문제가 된 사람은 산은 자본시장실의 정아무개 차장(41). 산은의 자본시장실은 주로 기업들의 회사채를 주관하는 곳이다. 주위 사람들에 따르면 정 차장은 당시 이 부서에서 주식투자에 성공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고 한다. 그가 큰돈을 번 것은 IMF시기인 지난 98년.
정 차장은 자랑삼아 회사에 와 동료들에게 주식투자 성공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이에 몇 명의 직원이 정 차장에게 대신 돈을 굴려달라며 돈을 맡긴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산은 관계자에 따르면 행내 규정상 직원들의 주식투자를 금지하는 조항은 없다. 다만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은행 직원들 간에 금전적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은 있다는 것.
그러나 처음에 정 차장에게 돈을 맡긴 사람들은 금전적 거래를 한다는 생각은 그다지 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 차장은 직원 몇 명이 맡긴 돈으로 주식에 투자, 수익을 올릴 때마다 투자자들에게 돈을 배당했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 정 차장을 믿고 돈을 투자했던 한 사람에 따르면 1천만원을 투자해 3백만원을 돌려받은 적도 있다는 것. 30%대의 고수익률을 올리자 산은 내부에서 정 차장은 어느새 유명인사가 되고 있었다.
산은 직원들 사이에서 정 차장에게 다리를 놔달라는 직원들도 부지기수로 늘어났다. 급기야 정 차장은 증권가의 ‘큰손’이 되고 말았다. 산은 선·후배 직원 60여 명과 친척 및 동문 50여 명 등 1백10여 명이 그에게 돈을 맡겼기 때문이다. 정 차장의 주식계좌의 금액은 금세 58억원으로 불어났다.
이 펀드에 가입한 일부 직원들은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 그에게 맡기기도 했다는 것이 은행 관계자의 얘기. 더군다나 일명 ‘정 펀드’의 리스트에 오른 사람은 산업은행 본점 직원뿐이 아니었다. 여의도 지점장, 전주지점장, 목포지점장 등 산은 지점 관계자들과 프랑크푸르트사무소장 등 산은 해외 직원까지도 그에게 돈을 송금했다.
산은 관계자에 따르면 처음에 정 차장은 이 돈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려 투자자들에게 고수익의 배당금을 준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정 차장은 산은 직원들로부터 주식 운용 대가로 일정 금액을 받았다.
정 차장에게 돈을 맡긴 사람들은 처음에는 쏠쏠한 재미를 봤으나, 지난 2002년부터 2003년 사이 주식시장이 폭락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정 차장은 투자자들의 원금보존이 힘든 상황에 이르자 보다 리스크가 큰 선물, 옵션에 손을 댔다. 요동치는 장세 속에서 정아무개 차장은 결국 돈을 모두 날려 원금 회수가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고 한다.
이즈음 산은은 정 차장을 비롯한 일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자체 감사에 들어가 정 차장을 비롯한 산은 일부 직원들의 주식투자 사실을 밝혀냈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한 산은측의 이 같은 조사 내용에 대해 금융 관계자들은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첫째는 정 차장이 주식운용과 관련된 부서에 재직하고 있지 않았음에도 어떻게 60여 명에 이르는 직원들이 그에게 돈을 맡겼느냐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산은 관계자는 “당시 정 차장의 주식 성공담이 회자되면서 많은 직원들이 그에게 개인돈을 맡긴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부분에 대해 검찰은 정 차장에게 집중된 자금의 규모가 50억원대에 이르는 거액이라는 점에서 혹 은행 공금까지 유용된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만약 공금까지 유용됐다면 이 사건은 최고위층까지 수사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
다음은 이 사건이 처음 시작된 것은 무려 6년 전이었음에도 은행측이 자체 감사에 들어간 시점은 2003년 말이었다는 부분이다.
산은 관계자는 “2002년과 2003년 사이에 주가가 크게 떨어지면서 회사 내에 이상한 소문이 돌아 진위 파악에 들어갔다. 조사 결과 직원 수십 명이 연루돼 있다는 것을 파악해 징계를 내렸다”고 말했다.
산은이 자체적으로 직원 감사를 벌인 시기는 지난 6월. 직원 60여 명이 사내에서 돈놀이를 하는 동안, 6년 넘게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지난 6월에서야 자체 감사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그러나 ‘정 펀드’에 돈을 맡긴 사람 중에는 감사업무를 맡는 검사부 팀장도 있어 사실 6년 동안 은행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또다른 의문은 사건을 조사한 은행측이 전모를 밝혔지만, 고위 간부까지 연루된 사실 때문에 사건 자체를 고의은폐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실제로 확인 결과 정 차장에게 돈을 맡긴 인사들 중에는 2급 이상 부서장급 간부가 무려 9명이나 포함돼 있어 산은 내부에서도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산은 직원 주식 사건’은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다. 감사원이 국책은행에 대한 정기 감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이 알려졌다.
감사원 관계자는 “정아무개 차장이 주식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은행 내부 정보 등을 이용하지 않았느냐는 것과 산은이 지난 6년 동안 이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의문”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 감사원, 금감원 등 감독 당국의 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 또다른 사실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산은 안팎의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