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민의 7%가 앓고 있는 만성간염. 이를 방치하면 ‘침묵의 살인자’ 간암으로 진행될 위험이 높다. 사진은 간염 검사를 위해 채혈하는 모습. 사진제공=을지대학병원 |
간암 걱정을 줄이려면 간염부터 멀리해야 한다. 간암의 80% 이상이 만성간염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간암 발생 중 70% 이상이 B형 간염과 관련이 있고 10~15%가 C형 간염이 원인이다. B·C형간염만 잘 관리해도 간암 발생률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만성간염 환자는 전 국민의 7%를 넘는 수준이다.
바이러스가 침입했을 때 이에 대응하기 위한 신체의 면역반응으로 간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 간염이다. 간의 염증이나 간세포 괴사가 6개월 이상 지속되면 만성간염으로 진단한다.
간염을 일으키는 주범은 간염 바이러스이고 알코올, 약물, 자가면역, 대사 질환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이 중 만성간염은 B형, C형 간염 바이러스 감염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가장 많은 것은 B형 간염 바이러스로, 우리나라 인구의 약 8%인 300만 명 정도가 B형 간염 바이러스에 의한 환자이거나 보유자인 것으로 본다. 이 수치는 미국 0.2%, 일본 2.0%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
B형 간염이 무서운 것은 만성화된 지 10년이 지나면 전체의 약 11%, 20년이 지나면 35% 정도가 간암에 걸리기 때문이다. 참고로 B형 간염 바이러스를 만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간암에 걸릴 가능성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약 100배 정도 높다.
C형 간염도 요주의 대상이다. C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만성화되는 비율이 50~70%로 B형 간염보다도 더 높다. 만성 간염에서 간경변으로는 진행되는 확률도 25%로 높다.
C형 간염은 B형 간염과는 달리 증상이 없고 황달 등 특별한 증세를 동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알아차리기 어렵다. 간경변증으로 진행돼도 잘 모르고 지내다 복수, 황달, 토혈 등 증상이 나타나고 많이 진행된 후에야 알게 된다.
더욱이 C형 간염은 극소량의 바이러스에도 쉽게 감염될 수 있고, 일단 감염되면 만성화할 가능성이 커 급성 C형 간염은 완전히 낫더라도 4~5년 정기검진이 필요하다.
보통 건강검진에서 나온 간수치를 보고 간의 건강상태를 판단한다. 하지만 단순히 간수치만 믿는 것은 금물이다. 특히 만성간염 환자들은 더 주의해야 한다.
간염바이러스가 간세포를 파괴할 때 나오는 효소의 양을 측정하는 것이 간수치. 만성간염 환자는 건강한 사람과 달리 간염 바이러스가 간세포를 파괴해도 효소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환자의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 기능이 떨어져서 간수치가 정상으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만성간염 환자는 항바이러스제 등의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서 정기적인 검사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때 간수치보다는 간에 바이러스가 얼마나 많은지를 나타내는 바이러스 활성도 검사를 반드시 해야 한다. 간염 바이러스 활성도가 높은 상태로 13년이 경과되면 간경변에 걸릴 확률은 최고 10배, 간암의 위험은 6배나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을지대학병원 소화기내과 김안나 교수는 “6개월마다 복부초음파 검사도 필요하다. 위험도에 따라서 3개월 간격으로 검사를 하거나 복부 CT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조언했다.
간염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할 때는 마음대로 중단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간염이 악화되거나 불규칙하게 복용해 약물에 대한 내성이 생긴 바이러스가 발생할 수도 있다.
△위생에 신경 쓴다=간경화, 간암 등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큰 C형 간염의 경우 주로 혈액을 통해 전파된다. 따라서 주사기나 침, 문신, 피어싱 등에 의해 C형 간염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경우도 있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라도 C형 간염 바이러스 양성이면 칫솔이나 면도기, 치실, 손톱깎기 등 혈액으로 인해 오염될 수 있는 개인 용품을 따로 쓴다. 침을 맞거나 문신, 피어싱을 할 때는 소독된 도구를 사용한다.
△불필요한 약은 삼간다=‘독성 간염’이라고 해서 양약이나 한약, 각종 건강식품 등을 오남용할 때 생기는 간염도 있다. 대부분의 증상 없이 간 기능이 손상되지만 구역질이나 구토, 피로, 황달, 가려움증 등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원인이 되는 약이나 식품을 바로 중단하면 간 기능이 회복된다. 드물기는 해도 만약 급성 간부전으로 진행되면 간이식이 필요할 수도 있다.
때문에 무슨 약이든 필요한 용량만 복용법을 잘 지켜서 복용하고, 건강식품도 안전성이 입증된 것을 고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간염 등의 간질환이 있을 때는 심지어 간단한 감기약조차도 해로울 수 있다. 따라서 약을 쓸 때는 병원을 찾아 간질환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안전한 처방을 받는다.
△예방접종을 한다=간암을 일으키는 가장 큰 위험인자인 B형 간염 항체가 없는 성인은 예방접종을 하는 게 좋다. 지금은 출생 후에 바로 B형 간염 예방접종을 하지만, 성인들의 경우에는 B형 간염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경우가 의외로 많다. 예방접종 후에는 B형 간염 항체가 생겼는지 검사로 확인한다. 어린 나이에 예방접종을 할수록 항체가 잘 생기고, 성인이 된 뒤에 B형 간염 예방접종을 하면 5~10%는 항체가 생기지 않는다.
만성간염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요즘 증가 추세인 A형 간염도 예방접종을 통해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 좋다. A형 간염 백신은 2세 이상이면 접종이 가능하고, 초기 접종 후 4주가 지나면 항체가 만들어진다. 1회 접종 후 6개월이 지나서 한 번 더 접종하는 것이 원칙이다.
△정기검진을 한다=간은 재생력이 뛰어나서 어느 정도 망가질 때까지는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그래서 증상이 나타난 후에 병원을 찾으면 이미 때가 늦다. 사고를 막기 위해 자동차를 정비하는 것처럼 간도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 게 좋다.
간암의 경우에는 다른 암과는 달리 간질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때문에 간암 발생의 위험요인을 가진 경우에는 신경 써서 검진을 받는다. 40세 이상 성인 또는 B형·C형 간염 바이러스 양성자이거나 간경변이 있는 환자, 가족 중에 간암 환자가 있는 경우에는 연 2회, 복부초음파 검사와 암표지자 검사를 정기적으로 받는 것이 좋다.
△술·담배는 멀리=만성간염 환자가 음주를 하면 간경화로 빨리 진행되므로 간의 건강을 지키려면 절주 또는 금주가 필요하다. 흡연도 마찬가지. 건강한 사람은 물론 간염 등 간질환이 있으면 금연하는 게 좋다. 간염이 있는 데도 담배를 끊지 못하면 간암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 간접흡연도 마찬가지이므로 가족 중에 간질환 환자가 있으면 모두 금연해야 한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을지대학병원 소화기내과 김안나 교수
몸살 증세 보이다 황달로…
요즘처럼 기온이 쌀쌀해지면서 감기에 자주 걸리는 계절에는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급성간염인데도 감기로 알고 대처하기 쉽다. 음식이나 물, 혈액, 체액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간염 바이러스가 침투해 급성 간염에 걸리면 7~10일 정도 감기몸살 때와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하지만 감기몸살보다는 심하게 피로하고 콧물, 기침은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열이 나면서 식욕이 없고 머리가 아프기도 하며 구토, 복통, 설사, 변비 등이 나타난다. 관절염처럼 사지의 관절이 아프기도 한다. 감기 몸살, 위장병과 비슷한 초기 증세가 1주일 정도 지나면 사라져 눈의 흰자위가 황색을 띠는 황달이 오고 피부색도 황색이 된다.
이럴 때는 단순히 감기몸살 또는 위장병이려니 하는 생각에 약국에서 약만 사먹거나 관절의 이상인가 싶어 정형외과를 찾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급성간염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병원을 찾아 혈액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급성간염으로 진단되면 만성이 되지 않도록 1~2개월 동안 충분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특히 간염의 초기 증상이 가볍게 나타나고 황달을 보이지 않는 무증상 간염인 경우에 주의해야 한다. 단순히 ‘요즘 일이 많아서 피곤한가?’하고 간염을 앓았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가지만 과로, 과음 등으로 간염이 완치되지 않으면 만성간염으로 진행돼 간경화, 간암이 돼서야 발견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