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간에는 ‘권력은 유한하지만, 금력은 무한하다’는 말도 있다. 옛말에도 ‘부귀’라고 했을 만큼 ‘부’가 ‘귀’보다는 상위개념이 아닐까 싶다. 물론 모든 재벌 2세들이 물려받은 재산을 그대로 지키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의 부러움을 받는 재벌 2세지만, 막상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모든 재벌 2세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기자가 아는 재벌 2세들은 대부분 고민도 많고, 걱정도 많다. 나름대로는 세상의 시선이 부담스럽고, 때로는 두렵기까지 하다.
평소 친분이 있는 H그룹 C부사장의 말. “솔직히 회사 안팎에서 쏟아지는 시선이 가슴을 짓누를 때가 많다. 가족들과 외식을 나가도 금방 신분을 알아채고는 쑥덕거리는 듯해 밥도 제대로 안넘어간다.” 그의 하소연은 그래서 약간은 이해가 갈 것 같다.
S그룹 L상무의 전언은 더욱 실감이 난다. “이런 저런 문제로 신문이나 방송에 얼굴이 나오고 기사가 나오면 면도칼로 심장을 긋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 양말 속이라면 뒤집어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재벌 2세로 살아가는 것도 웬만한 심장을 가지고는 힘들어 보인다는 게 솔직한 생각이다. 그 때문인지 대부분의 재벌 2세들은 끼리끼리 모임을 가진다. 오래 전에는 ‘칠공자’니 ‘팔공자’니 하는 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가진 재벌 2세들의 마이너 커뮤니티가 있었다. 얼마 전에도 ‘신칠공자’ 모임이라는 것이 드러나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재벌 2세들의 모임이 성격이나 개념에서 긍정적인 면으로 바뀌었다는 생각이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피해 음지로 찾아들던 과거와 달리 뭔가를 탐구하고, 공부하는 쪽으로 많이 바뀐 것이다. 재벌 2세들의 새로운 이너서클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 (위 왼쪽에서부터)최태원, 정몽규, 이웅렬,이홍선, 서경배, 이재웅 | ||
흥미로운 것은 회원들의 나이가 당시로서는 젊다고 볼 수 있는 30대에서 40대였다. 이 모임의 초기 회원은 대략 25~30명이었다. 대부분은 재벌 2세였지만, 경제 혹은 경영학과 교수도 일부 가입돼 있었다.
당시 이 모임의 회원을 보면 회장은 김일섭 교수가 맡았고, 감사에는 이승배 당시 한솔투자 사장이 맡았다. 또 총무에는 주진규 당시 사조산업 사장이, 부회장으로는 구자홍 현 LG필립스LCD 부회장이 맡고 있었다.
이밖에 회원으로는 쌍용그룹 김석원 회장의 동생인 김석동 당시 쌍용증권 사장,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동생 김호연 현 빙그레 회장, 대한잉크페인트 차남 한동엽씨, 최병민 대한펄프 사장(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사위), 김응상 당시 한창화학 사장, 김정완 당시 매일유업 사장, 김영진 한독약품 사장, 김재하 당시 삼도물산 부사장, 김정기 당시 뉴욕제과 사장, 문대원 당시 코리아제록스 사장, 이종철 당시 풍농비료 사장, 주진규 당시 사조산업 사장, 장세창 당시 이천전기 사장, 김세휘 당시 함태탄광 사장, 주명건 당시 세종투자개발 회장 등이었다.
YPO는 출범한 뒤 약 5년 동안 활동을 계속했는데, 그동안 중국시장 개척을 비롯해 제법 두드러진 활약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임은 90년대 중반 무렵 멤버들 중 일부가 경영난 등으로 몰락하면서 자연스럽게 해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YPO 이후 눈에 띄는 재벌 2세들의 모임은 없다가 IMF 사태가 터진 뒤인 99년 무렵 새로운 모임이 하나 등장했다. 비교적 널리 알려진 ‘브이소사이어티’가 그것이었다.
최태원 SK(주) 회장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이 모임은 정규, 비정규 회원수가 1백여 명이 넘을 정도로 비교적 큰 조직이었다. 최태원 회장을 비롯해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 이홍선 삼보컴퓨터 회장, 서경배 태평양그룹 회장 등 전통 재벌가의 2세들과 이재웅 다음 사장 등 벤처 재벌가들도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