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팍스우드 카지노 조감도. |
1964년 공채 1기로 삼성그룹에 입사한 경 전 회장은 20여 년간 에버랜드, 제일제당,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삼성종합화학 등 그룹 주요 계열사의 대표직을 지낸 인물이다. 경 전 회장 딸 연희 씨의 상습도박 사실을 폭로한 인물은 미국의 한 카지노에서 오랫동안 VIP고객을 담당해왔던 A 씨다. 그는 <일요신문>과의 이메일 및 국제전화를 통해 “경연희 씨는 미국의 유명 카지노에 상습 체류하며 도박을 일삼았고 적어도 130억 원 이상을 탕진했다”고 주장해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A 씨의 주장이 단순히 경 씨의 도박사실 폭로에 그치지 않을 조짐이어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경 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 씨로부터 거금을 전달받았다는 구체적인 정황이 폭로됐기 때문이다. 이는 경 씨가 탕진한 100억대 돈 가운데 일부가 정연 씨의 자금일 가능성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따라서 A 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미스터리로 남겨진 노무현 일가의 외화유출 및 비자금 의혹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높아 정치권은 또 한 차례 격랑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재계 유명인사 딸의 100억대 상습도박 의혹을 넘어 ‘노무현 비자금’ 사건으로 확전될 조짐이 일고 있는 사건의 전말을 들여다봤다.
경연희 씨가 출입한 문제의 카지노는 미국 코네티컷 주에 소재한 FOXWOODS CASINO(약 1만 8000㎡)로 현재 세계 2위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곳이다. A 씨에 따르면 경 씨가 F 카지노에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10년이 넘었고, 본격적으로 수십 억대가 넘는 거액의 도박을 하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다.
A 씨는 “2008년부터 2009년 초까지 경 씨가 F 카지노에서 바카라로 탕진한 돈만도 1000만 달러(당시 한화 130여 억 원)에 달하는데 또 다른 L, M 카지노에서 탕진한 금액까지 합하면 1000만 달러가 훨씬 넘는다”고 폭로했다.
그렇다면 경 씨는 대체 카지노에 얼마나 자주 출입했던 것일까. 이에 대해 A 씨는 “거의 매주 2~3일은 카지노에서 살다시피했으며 2008년 1년 동안만 170일 이상 카지노에서 체류했다. 지켜본 바에 따르면 그녀는 ‘노름꾼’이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경 씨가 카지노에 출입한 시간과 숙박기록, 액수 등이 체크된 컴퓨터 전산기록 등 구체적인 물증을 <일요신문>에 제공했다.
실제로 F 카지노 고객관리 시스템 전산기록을 확인한 결과 게임을 한 날짜와 일수 등이 연도별로 구분되어 있었다. 2008년 한 해 동안 경 씨가 F 카지노에 출입한 날짜는 총 173일로 그곳에서 탕진한 액수는 무려 미화 750만여 달러였다. 또 경 씨의 카지노 출입은 2009년에도 계속됐는데 2009년 1월에는 19일부터 26일까지 8일 연속으로 카지노에 체류한 것으로 확인됐다.
A 씨는 경 씨의 도박 규모에 대해 미국에서도 드문 케이스라고 전했다. 경 씨는 카지노를 찾는 손님 중에서 0.1%안에 드는 VIP였는데 이미 500만 달러(한화 53억여 원) 이상을 탕진한 경 씨에게 F 카지노에서 특별히 무이자로 45일간 돈을 빌려주기까지 했다고 한다(개인 신용정도에 따라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제도가 있다고 함).
이번 A 씨의 폭로가 충격적인 것은 재계 유명 인사의 딸이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고액 상습 도박을 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애초 A 씨의 폭로는 경 씨의 상습적인 도박행각을 알리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경 씨와 가까이 교류하는 과정에서 A 씨는 수상한 자금의 흐름을 포착하게 된다. 바로 경 씨에게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 씨로부터 거액의 돈이 유입된 정황이었다.
A 씨는 일례로 자신과 측근이 개입했던 100만 달러 자금 유입건에 대해 밝혔는데 한국에서 미국으로 돈이 흘러들어오는 과정에서 일명 ‘환치기’와 ‘돈세탁’이 이뤄진 정황까지 상세히 언급해 적잖은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경 씨는 지난해 정연 씨가 계약한 것으로 알려진 뉴저지 소재 ‘허드슨 클럽 400호’를 매입한 것으로 밝혀져 노무현 일가의 해외 자금유출 의혹을 풀 수 있는 핵심인물로 떠오른 바 있다. 당시 정연 씨의 수상한 집 계약은 차명계좌 의혹을 증폭시키며 정치권의 핵뇌관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노정연-왕림-경연희의 이상한 거래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지 못한 채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상태에서 정연 씨의 돈이 경 씨에게 유입됐다는 A 씨의 증언은 실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정연 씨의 돈이 경 씨에게 유입됐다는 것은 사실일까. A 씨는 당시 시간과 장소 등을 언급하며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2009년 1월경 FOXWOODS 호텔 스위트룸 23XX에서 경 씨와 노 씨가 통화를 할 당시 내가 옆에 있었다. 경 씨가 노 씨에게 ‘급한 일이 생겨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정연 씨 쪽에서 경 씨에게 다시 전화가 와서 다음날 바로 돈을 전달받을 시간과 장소를 받았다. 경 씨가 ‘한 사흘 정도 시간을 주려고 했는데 그 돈이 하루에 되네’라고 말했다. 돈 전달은 내 측근이 담당했다. 두 사람이 통화한 얼마 후 한국에 있는 내 측근이 경 씨와 통화한 후 서울에서 정연 씨 측으로부터 ‘박스돈’을 넘겨받았다. 장소는 과천역 인근이었고, 만 원짜리가 가득 든 박스 7개로 총 13억 원이었다. 이 돈은 경 씨의 지인을 거쳐 경 씨에게 전달됐다.”
A 씨는 경 씨가 정연 씨 측으로부터 받은 13억 원을 일명 ‘환치기’했다며 당시 관련자들을 거론하며 구체적인 설명도 덧붙였다. “경 씨가 13억 원 전부를 미국으로 빼오는데 무리가 있다고 해서 돈을 건네받은 지 약 사흘 후 당시 미주지역 전 한인회장으로 있던 B 씨에게 5만 달러를 환치기했다. 그중 2100달러가 모자라 내가 경 씨에게 물어줬다. 또 25만 달러는 뉴욕 플러싱 지역에서 자영업을 하는 C 씨와 D 씨가 나누어 각각 5만 달러, 20만 달러씩 환치기 했다. 그 당시 경 씨는 이미 700만 달러 이상을 도박으로 탕진한 상태였고, F 카지노에 왕임(허드슨클럽 공동 매입자) 앞으로 60만 달러 상당의 도박 빚을 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의혹은 이뿐이 아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F 카지노 전산기록을 보면 문제의 허드슨클럽 공동매입자인 왕임 역시 경 씨와 마찬가지로 광적으로 카지노 출입을 한 것으로 나와 있어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전산자료 확인결과 왕 임이 F 카지노에 출입한 횟수는 2007년 199회, 2008년 243회에 달했다. A 씨는 “카지노 출입 횟수는 왕임이 더 많지만 액수는 경 씨가 훨씬 많다. 경 씨는 한 번에 1000만 원 이상씩 베팅했다. 또 경 씨와 왕임은 카지노 시스템상 스파우스(spous· 카지노 출입시 체크하면 같이 어카운팅되는 시스템)로 묶여 있었다”고 주장했다.
경 씨는 미국에서 투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한 명의 직원만 두고 있는 유령회사 수준이라는 것이 A 씨의 얘기다. 경 씨 집안이 상당한 재산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한 개인이 하기에는 도박액수가 너무 크고 2008년에서 2009년 사이 채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1000만 달러 이상을 카지노에서 탕진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더욱 이상한 것은 엄청난 금액을 탕진하고도 모자라 카지노에 거액의 빚을 지고 있던 경 씨가 상당한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A 씨에 따르면 경 씨는 이미 드러난 허드슨클럽에 400호와 435호 외에도 미국 내 다른 주택과 보스턴 등지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는 경 씨 일가의 증여세 의혹으로 확대될 소지도 있다. 경 씨의 아버지인 경주현 전 회장은 1978년부터 매입․배정받은 주식들을 아내와 처남, 또 다른 처남의 아내, 장모 등의 이름으로 관리해 왔는데 조세당국은 조세 회피 목적으로 보고 경 전 회장의 아내에게 43억여 원, 처남에게 20억여 원, 또 다른 처남의 아내에게 30억여 원, 장모에게 9억여 원 등 총 102억여 원의 증여세를 부과한 바 있다. 하지만 2007년 말 “아내 명의로 이뤄진 주식 신탁은 조세회피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행정법원의 판시에 따라 43억 원은 돌려받았다. 경 씨의 거액 도박사실로 미뤄볼 때 당시 딸인 경 씨가 보유하거나 해외로 빼돌린 가능성이 있는 자금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는지 여부는 여전히 궁금증을 낳고 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A 씨가 경 씨로부터 노 전 대통령 일가의 자금과 관련된 얘기도 여러 번 들었다고 밝힌 점이다.
“권양숙 여사가 일련번호가 나열된 새 돈 100만 달러를 국빈특권으로 세관통과해서 경 씨에게 전달했으며, 카지노 호텔방에서 담뱃재를 털어가며 구기고 섞는 식으로 돈세탁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2006~2008년으로 기억하는데 여하튼 노 전 대통령 사망 전에 이런 얘기들을 수차례 들었고 불과 몇 달 전에도 들었다”는 게 A 씨의 주장이다.
하지만 A 씨는 일단 자신이 관여한 100만 달러(13억여 원) 외에 경 씨에게 전해들은 또 다른 자금 유입건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는 “(허드슨클럽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 경 씨가 아파트를 이면계약하고 정연 씨에게 일정기간 후 돌려줄 것을 약속했다는 말을 들었다. 또 노 전 대통령 일가 자금과 관련해서 경 씨를 통해 여러 가지 전해들은 다른 얘기들이 있지만 지금은 언급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전했다.
A 씨는 경 씨로부터 회유와 협박을 당한 사실도 밝혔다. 자신의 도박사실 및 노무현 일가의 돈이 경 씨에게 건네진 정황 등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는 자신에게 경 씨는 ‘입조심하라’ ‘직장에서 잘린다’고 경고했으며 급기야 가족까지 들먹이며 협박했다는 것이다. A 씨는 최근에 경 씨 측근들에게 미행까지 당했고,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져 9월 29일 법정까지 출석했다고 전했다.
A 씨는 “경 씨가 카지노에서 상습도박으로 1000만 달러 이상을 탕진했고, 정연 씨의 돈이 경 씨에게 전달된 것은 빼도 박도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선 경 씨의 도박사실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뤄지길 바란다. 이번 폭로로 내가 겪어야 할 어느 정도의 번거로움은 각오가 되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관련자들만도 여럿 되기 때문에 자금 유입 및 환치기, 돈세탁 등 나머지 의혹들은 한국 수사기관이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밝힐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제보자 A 씨는 15년 이상 팍스우드 카지노에서 VIP담당으로 근무한 사람이다. 그는 경연희 씨로부터 갖은 회유와 협박을 당하고 있는데, 현재 네 살된 딸과 부인까지 거론하며 자신의 입을 막기 위해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A 씨는 기사로 인한 파장이 커질 경우 입국해 진실을 밝힐 각오가 돼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A 씨가 미국에 있기 때문에 취재는 수차례의 국제전화와 여러 통의 이메일을 통해 이뤄졌다. A 씨는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들 및 환치기와 돈세탁을 도운 사람들의 실명까지 기자에게 알려줬다. “과천역 사거리에서 박스돈을 전달한 정연 씨 측근의 명함도 갖고 있다. 또 박스돈을 직접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나의 친동생이다. 하지만 친동생은 심히 부담을 느끼고 있어 명함공개는 법정에 가야할 경우 하겠다고 전해왔다. 부득이하게 동생은 측근으로 처리했고 등장 인물들은 영문으로 처리했다.”
A 씨는 또 “박스돈을 건네받을 당시 휴대폰 사진도 찍은 것이 있지만 이것은 조작가능한 것이기에 법정에 갈 경우 증거로 제출하겠다”고 전했다.
따라서 경 씨의 100억대 상습도박건에 대한 수사가 들어가면 자금 부분에 있어 정연 씨의 개입 여부가 명확히 드러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허드슨클럽과 관련해서도 수상한 점이 다수 포착되고 있다. A 씨는 “왕임도 원래 돈이 별로 없고 호화생활을 할 정도가 못되는 여자”라며 그녀에게도 자금이 유입됐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A 씨는 국내 수사기관이 수사에 들어가면 실명을 밝히고 수사에 협조할 각오가 돼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