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텔레콤의 단말기 ‘스카이’ | ||
통신업계 패권을 둘러싼 신경전이 휴대폰 시장으로 옮겨붙은 것. 통신장비제조업체인 삼성전자와 국내 1등 이동통신사업자인 SK텔레콤은 사업분야가 다름에도 그동안 통신업계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여왔다.
삼성전자가 1위 유선업체인 KT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홈네트워크 사업 등 밀착도를 높이는 것에 대해 SK텔레콤은 우려 섞인 시각을 견지해왔다. 삼성전자의 제휴업체가 SK텔레콤과 경쟁자인 KTF이고, KTF의 모회사가 KT라는 점, 그리고 KT가 민영화됐기에 언젠가는 지배적 사업자가 될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때문에 SK텔레콤은 유선통신업체인 하나로통신의 경영권을 LG그룹쪽에 넘어가지 못하도록 사력을 다해 방어하는 한편 KT(유선)-KTF(무선)-삼성전자(통신단말기와 장비제조) 연합군의 융단폭격에 대비하고 있다.
SK텔레콤의 경우 유선사업자인 하나로통신과 전략적 제휴를 할 수 있지만 문제는 단말기와 장비 부문이다. SK텔레콤은 단말기를 생산하는 SK텔레텍이란 자회사가 있다. 그러나 이 회사의 경우 내년 말까지는 연간 1백20만대 생산제한(통신서비스와 단말기 제조 공동겸업 금지조항)에 걸려 있어 국내시장 점유율이 미미하다. SK텔레콤쪽의 가장 약한 고리가 바로 이 부분.
하지만 SK텔레콤의 가입자들이 사들이는 단말기 중 삼성 애니콜이 항상 50% 이상이었다. 삼성에서도 대부분의 최신 모델을 먼저 SK텔레콤 011 전용 단말기부터 생산하고 그 다음에 PCS사업자인 KTF와 LG텔레콤 모델을 선보이는 수순을 택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이런 등식이 깨졌다.
올 들어 휴대폰의 마케팅 포인트는 카메라폰과 MP3폰. 특히 카메라폰은 연초 1백만 화소폰 시대가 열린 지 불과 몇 달만인 지난 5월께부터 2백만 화소가 열렸고 다시 이달 들어 삼성, LG, 팬텍앤큐리텔 등 국내 빅3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앞다퉈 3백만 화소폰을 내놨다. 삼성은 2백만화소부터 SK텔레콤에 먼저 공급하던 관행을 끊고 KTF에 먼저 공급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SK텔레콤 사용자들은 첨단메가픽셀폰의 선택권이 KTF 사용자들에 비해 크게 제약받게 됐다. 이런 현상은 과거에는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이런 삼성의 정책변화는 공교롭게도 SK텔레콤과 휴대전화 공급원가 인하 갈등과 맞물려 있다.
삼성에선 SK텔레콤이 휴대전화에 대한 단말기 보조금 지급이 당국에 의해 엄격히 규제되면서 휴대폰 공급원가의 조정과 단말기 보조금 성격의 ‘지원책’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삼성전자 ‘애니콜’ 광고사진. | ||
실제로 SK텔레콤에선 자사고객 중 삼성의 휴대폰을 선택하는 비율이 50% 이상이었는데, 올해 들어선 삼성의 고가폰 전략으로 30%대로 떨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쪽에선 SK텔레콤이 삼성전자의 마케팅 전략을 거론하는 것은 SK텔레텍의 단말기 사업 강화를 위한 명분쌓기용이라는 비난을 하고 있다.
SK그룹은 최근 들어 벨웨이브라는 휴대폰제조업체와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를 교환하고 인수작업을 벌이고 있다. 또 내수에만 국한됐던 SK텔레텍의 단말기의 수출에도 나서고 있다.
최근 국내 휴대폰 제조업체들은 빅3를 제외하고는 경쟁강화로 구조조정에 들어간 상태다. 이 틈에 SK텔레콤은 자금력이 달리는 중소업체를 인수해 북미식과 유럽식 휴대폰 단말기를 포괄하는 종합 휴대폰 제조회사로 키워 본격적인 수출사업으로 나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런 SK텔레콤의 단말기 사업 강화에 삼성전자의 신경을 자극한 셈이다.
SK텔레텍의 스카이모델은 휴대폰 헤비유저이자 트렌드에 민감한 10대후반~20대 중반 소비자들로부터 삼성 애니콜에 버금가는 브랜드로 통하고 있다. SK텔레콤이 삼성의 고가전략을 유지한다고 비난하지만 SK텔레텍의 최신 모델은 늘 삼성 애니콜 최신모델의 값에 버금가거나 더 비쌌다.
그럼에도 지난 99년 첫선을 보인 주력모델이 29만대가 나가더니 올해에는 최신모델인 IM7200모델이 50만대 이상 팔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SK텔레텍의 올해 국내 예상 판매대수가 1백만대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제일 비싼 모델 매출이 전체의 50% 이상이라는 환상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게 된다.
이런 브랜드 파워와 SK텔레콤이란 1등 이동통신사업자를 등에 업은 SK텔레텍이 중소 휴대폰 제조사를 인수하고 월 10만대의 내수 제한규정이 풀리는 내년말이 되면 국내시장의 휴대폰 판도는 예측불허 판국이 될 수도 있는 것.
게다가 삼성은 지난 2분기 실적 발표에서 휴대폰 부분의 영업이익률이 1분기 27%에서 17.3%로 10% 가까이 떨어져 신경이 곤두서있는 상태다. 이는 북미시장 수출 제품의 이익률이 떨어진데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에선 이런 휴대폰 분야의 영업이익률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하반기에 휴대폰 가격을 더 올릴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국내에서 가장 큰 시장을 갖고 있는 이동통신사업자인 SK텔레콤은 공급가를 낮추라고 요구하고 있으니 두 회사의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삼성 쪽에선 오는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최근 상임위 배정이 끝난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의원들과 정보통신부 등에 이동통신서비스업체의 단말기 시장 진출을 규제해줄 것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져 SK텔레콤쪽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삼성 출신 장관이 버티고 있는 데다 대관업무에서 한수위의 솜씨를 보여왔던 삼성의 위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SK텔레콤에선 이동통신 서비스업체의 단말기 시장 진출 규제는 LG텔레콤이나 KTF가 문제라며 삼성이 타깃을 잘못 잡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96년 LG그룹이 PCS사업자 허가증을 받는 순간 이동통신 서비스업체의 단말기 시장 진출 규제는 사실상 물거품이 된 상태이고, SK텔레콤이 계열사인 SK텔레텍에서 공급받는 단말기의 규모가 전체 물량의 7%대에 불과하지만 LG는 60%선, KTF는 40% 선을 넘고 있다며 삼성이 오버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자 정보 통신 분야에서 각각 통신 기반과 장비 기반으로 최고의 반열에 오른 두 기업의 피할 수 없는 한판승부가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