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 와이번스 김성근 감독이 박재홍과 타격 훈련을 마치고 공을 줍고 있다. 연합뉴스 |
1. SK는 ‘제2의 해태’가 될 수 있나
1980~1990년대 최강의 팀은 해태(KIA의 전신)였다. 한국시리즈에서 무려 9번이나 우승했다. 그렇다면 2000년대 최강팀은 어디일까.
후보는 많다. 그 가운데 1순위는 단연 SK다. 올 시즌 정규 시즌 1위에 오르며 SK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오른 프로야구 사상 두 번째 팀이 됐다. 이전까진 1986년부터 1989년까지 한국 시리즈에 진출한 해태가 유일했다.
2007, 2008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SK가 올 시즌에도 챔피언이 된다면 우승 3회로 삼성과 함께 2000년대 가장 많은 우승컵을 손에 쥔 팀이 된다.
만약 준우승에 그친다면?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2년 연속 우승의 영광과 2년 연속 준우승의 좌절을 차례로 경험한 전무후무한 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어디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좌절이라 할 수 있으랴. 롯데는 1999년 이후 11년 동안 한 번도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지 못했다. LG는 2002년 이후 8년째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2. 초보 마무리 송은범의 활약 여부
올 시즌 이승호(SK)는 마무리로 변신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20세이브를 따냈다. 손승락(넥센)과 이용찬(두산)에 이어 세이브 부문 3위에 올랐다. 그러나 한국시리즈에서 SK의 뒷문은 다른 선수가 맡을 전망이다. 송은범이다.
올 시즌 송은범은 선발로 등판했을 때 6승5패 평균자책 3.22를 기록했다. 그러나 8월 말부터 마무리를 맡으면서는 2승2패 4홀드 8세이브를 거뒀다. 이 기간 평균자책은 ‘0’이었다.
한국시리즈에 대비한 자체 청백전에서도 송은범은 마무리로 등판했다. 지난해 마무리 부재로 곤욕을 치렀던 김성근 감독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그러려면 송은범의 호투가 절실하다.
하지만, 초보 마무리는 변수가 많다. 한국시리즈처럼 큰 무대에서 선발과 마무리가 갖는 부담감은 하늘과 땅 차이다.
선발에서 마무리로 전환하며 대성공을 거뒀던 전 LG 투수 김용수 중앙대 감독은 “송은범이 얼마나 뻔뻔해지느냐가 관건”이라고 조언했다. 현역 시절 김용수는 블론세이브를 기록해도 동료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되레 “네가 9회까지 0점으로 막았으면 내가 등판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며 책임을 선발투수에게 돌리곤 했다. 이유가 있었다.
“마무리는 자신감이 생명이다. 그러나 ‘미안하다’는 말이 입에 배면 투수는 자신감을 상실하고, 동료도 ‘쟤가 잘 막을 수 있을까’하고 불안해한다. 초보 마무리 송은범이 성공하려면 무조건 뻔뻔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시리즈에서 떨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송은범은 SK에서 가장 낯이 두꺼운 선수로 통한다.
정규 시즌은 5선발 체제다. 5명의 선발투수가 하루 던지고, 나흘을 쉬는 식으로 순번이 돌아간다. 그러나 한국시리즈는 대개 3선발 체제다. 7차전까지 3명의 선발로 버티게 마련이다.
SK는 두 명의 선발투수를 확정했다. 올 시즌 17승7패 평균자책 2.37을 기록한 에이스 김광현과 14승7패 평균자책 3.22를 올린 외국인 투수 가도쿠라 켄이다. 나머지 한 자리가 공석이다.
김 감독은 내심 게리 글로버가 선발진에 합류하길 기대한다. 글로버는 올 시즌 6승8패 평균자책 5.66을 기록했다. 지난해엔 시즌 중반 팀에 합류하고도 9승3패 평균자책 1.96을 기록했다. 1년 새 다른 투수가 된 셈이다. 그러나 글로버는 스프링캠프 때부터 팔꿈치 부상에 시달렸다. 올 시즌 힘을 내지 못한 이유다.
8월 15일 잠실 두산전 이후 글로버는 1군에서 사라졌다. 김 감독의 배려로 재활에만 매달렸다. 배려가 약이 된 걸까. 글로버는 10월 5일 문학구장에서 라이브 피칭을 소화하고서 8일 자체 청백전에 등판했다.
김 감독은 “아직 만족스러운 상태는 아니지만, 팔이 아프지 않고 실전 감각도 조금씩 찾고 있다”며 “한국시리즈까진 컨디션을 끌어올릴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이날 글로버의 속구 최고구속은 145㎞였다. 구속만 보자면 글로버는 이미 정상이다.
4. 금이 가지 않는 SK의 철통수비
삼성 선동열 감독은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엄포를 놨다. “수비가 되지 않는 선수는 타격을 아무리 잘해도 주전으로 쓰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선 감독이 SK 사령탑이었다면 그런 엄포는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SK 수비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프로야구에서도 정평이 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신 타이거스는 정근우, 나주환, 최정 등 SK 내야수를 스카우트 대상으로 관리하고 있다.
올 시즌 SK의 팀 실책은 81개였다. 한화의 80개에 이어 최소실책이었다. 그러나 한화와 SK의 수비를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한 야구인은 “‘치기 어려운 공은 치지 말고 받기 어려운 공은 받지 말자’던 과거 삼미처럼, 한화 수비수들은 실수를 두려워하는 소극적인 플레이로 실책이 적은데, 호수비도 그만큼 적다”며 “그러나 SK는 적극적인 수비를 펼치면서도 실책이 적은 세련된 팀”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시리즈에서 ‘실책은 곧 패배’를 의미한다는 경험을 되새길 때, SK 내야진의 탄탄함은 우승으로 가는 보증수표다.
5. ‘강한 훈련’이 전사를 만든다
한국시리즈를 준비하는 SK에게 휴식은 없다. 표면적으론 ‘3일 훈련, 1일 휴식’이지만, 실제론 휴식일에도 연습하는 선수가 꽤 많다.
SK의 훈련스케줄을 보면 이 팀이 과연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팀인가 의구심이 들 정도다. 먼저 훈련 시작시간이 오전 7시 30분이다. 다른 팀 선수 같으면 잠자리에 있을 시간이다. 훈련 종료시간도 오후 6시 30분으로 꽤 늦다. 보통 11시간을 훈련에 매달리는 셈이다.
SK 선수들은 “이렇게 훈련했는데도 한국시리즈에서 지면 억울할 것”이라며 “훈련한 게 억울해서라도 반드시 우승을 차지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6. 베테랑이 살아야 팀도 산다
김 감독은 “큰 경기에선 눈에 보이는 성적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포스트 시즌만 되면 베테랑을 중용한다. 결과도 좋았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정규 시즌 내내 부상으로 부진했던 이호준을 전격 투입해 결승 홈런을 이끌어 낸 게 대표적이다.
이번 한국시리즈에선 박재홍의 활용 여부가 관심거리다. 올 시즌 박재홍은 82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2푼, 8홈런, 27타점을 기록했다. 프로 데뷔 이후 15년 동안 가장 저조한 개인기록이었다. 특히나 장기였던 도루를 단 1개만 기록하며 “박재홍도 나이는 속일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박재홍은 ‘가을 사나이’다. 포스트 시즌 통산 69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5푼3리, 9홈런, 34타점을 기록했다. 9홈런 가운데 4개는 한국시리즈에서 뽑은 것들이다.
김 감독은 한국시리즈 경험이 풍부한 박재홍이 젊은 선수들을 잘 이끌어주길 기대한다. 물론 타격에서도 한방을 기대한다.
7. ‘가장 관심 있는 개인타이틀? 받고 싶은 타이들은 우승뿐’
‘캐논 히터’ 김재현이 은퇴한다. 지금은 아니다. 한국시리즈가 끝나고서다. 35세의 나이를 고려하면 현역에서 한창 뛸 나이다. 하지만, 김재현은 은퇴를 번복할 뜻이 없다.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이가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이 강한 까닭이다.
이번 한국시리즈가 은퇴 무대가 될 김재현의 각오는 남다르다. “반드시 V3에 성공해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다짐이다.
SK의 실질적인 리더인 김재현의 각오가 동료 선수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다. 정근우는 “선배의 마지막 무대가 축포 속에서 끝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며 “전체 선수들이 ‘꼭 우승하자’라며 똘똘 뭉쳐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김재현을 적재적소에 투입할 계획이다. 김재현은 통산 포스트 시즌 59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7리, 9홈런, 27타점을 기록했다. 그가 타석에 서면 오른손 투수들은 아직도 긴장한다.
김재현은 가장 받고 싶은 개인타이틀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꼽았다.
8. 백전노장 박경완의 활약
한국 프로야구는 포수의 비중이 높은 리그다. 야구전문가나 야구팬 할 것 없이 경기에서 지면 ‘포수 탓’을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포수 탓’을 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박경완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분명히 그랬다.
박경완은 포수의 격을 높은 이다. 많은 이가 박경완을 포수의 기준으로 삼으면서 그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포수를 ‘탓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김 감독이 한국시리즈에서 박경완에게 큰 기대를 거는 것도 같은 이유다. 박경완이 조금이라도 부진하면 투수진뿐만 아니라 야수진도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혹시나 있을 박경완의 부상을 대비해 훈련량을 조절하고 있다. 지난해 박경완은 부상 때문에 한국시리즈에 출전하지 못했고, 팀은 준우승에 그쳤다. 이번 한국시리즈도 결국, 승패는 박경완의 미트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9. ‘현미경 야구’로 무장한 SK 전력분석
“현미경 아래에 놓여 있는 곤충이 된 기분이다.” 2008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은 SK에게 먼저 2연승을 하고도 4연패하며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당시 모 두산 투수는 SK 타자들을 상대하느라 무진 애를 먹었다. 던지는 족족 안타를 맞거나, 회심의 결정구를 던져도 SK 타자들이 꿈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이 투수는 SK 타자들이 자신이 어떤 공을 던질지 이미 예상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니까 자신의 미세한 투구습관이 SK 타자들에게 걸렸다는 뜻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전적으로 SK 전력분석팀의 힘이었다.
SK 전력분석팀의 양축인 김정준, 노석기 코치는 8개 구단 전력분석원 가운데 가장 경험이 많다. 1990년대 초반 한국에 처음 ‘전력분석’의 필요성이 대두했을 때, 이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이들이 두 코치였다.
주로 타자를 분석하는 김 코치와 투수 부분을 맡은 노 코치는 상대 선수들의 은밀한 버릇까지 체크해 이를 역이용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SK 전력분석팀은 그간 수집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분류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SK의 현미경 야구가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도 어떤 힘을 발휘할지 상대팀은 초긴장 상태다.
10. 수석코치 이만수의 운명
2006년 SK 신영철 사장은 일본프로야구 지바롯데 마린스에서 인스트럭터로 활동하던 김성근 전 LG 감독에게 SK 사령탑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 자리에서 신 사장은 조건 하나를 달았다.
“다른 건 몰라도 수석코치는 프런트에서 추천하는 이를 써달라”는 것이었다. 그가 바로 현 SK 수석코치인 이만수다.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를 합성한 ‘스포테인먼트’를 통해 성적과 흥행을 동시에 구현하고 싶었던 신 사장은 성적은 김 감독, 흥행은 이 수석코치가 맡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주변에선 우려의 소리가 컸다. “일본식 야구를 지향하는 김 감독과 메이저리그식 야구를 배운 이 수석코치가 과연 화합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였다. 일부에선 “물과 기름은 절대 하나가 될 수 없다”며 “결국 불협화음이 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4년이 흐른 지금까지 특별한 불협화음은 나지 않았다. 시즌 중반 이 수석코치가 2군 감독으로 내려가긴 했지만, 후반기 들어 다시 수석코치로 복귀했다.
물과 기름이라던 두 사람의 조화는 그러나 SK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 큰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을 전망이다.
야구계에 “롯데가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후임으로 이 수석코치를 고려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때문이다. 모 야구해설가는 “로이스터 감독의 지도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단기전에 강한 팀이 되도록 선수들을 이끄는 데 이 수석코치만 한 적격자도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이 수석코치가 선수들을 압박하지 않고 창의적인 야구를 강조하는 야구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4년 동안 김성근 감독 밑에서 배운 노하우를 적절히 가미한다면 선수들의 동요를 막으면서도 롯데를 한국시리즈 정상까지 올리는데 큰 효과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