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련시간 절대부족 등 난관에 봉착한 조광래 감독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1 누가 스케줄 좀 잡아줘요!
2014브라질월드컵 선전을 위한 첫 번째 관문으로 한국은 아시안컵 정상을 꿈꾸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조 감독에게 너무 적은 기회가 주어졌다는 게 아쉽다.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한 차례씩, A매치를 3번 치르는 데 그쳤다. 아무래도 시기가 시기인지라 이란, 일본 등 아시아 2개국과 격돌했고, 한 번은 월드컵 16강을 기념해 나이지리아와 평가전을 가졌다.
하지만 이게 끝이다. 더 이상 기회는 없다. 굵직한 평가전을 치른 일본의 행보와는 너무 대조적이다. 한국은 11월 17일 국제축구연맹(FIFA)이 명기해 둔 공식 A매치 일정을 활용할 수 없다.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11월(12~27일) 열리는 탓이다. 홍명보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 감독이 발표한 20인 최종엔트리 중 절반이 넘는 11명이 성인대표팀에 승선한 경험이 있거나 주축으로 활약 중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시안게임은 프로축구 K리그 플레이오프 기간과 딱 겹친다. 올해 초 축구협회는 프로축구연맹과 11월에 대표팀을 운용하지 않기로 일찌감치 합의한 상태. 결국 조 감독으로서는 실전이나 별도 소집 훈련 없이 비디오 분석과 시뮬레이션 게임 등으로 간접 체크에 만족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급한 만큼 조 감독은 11월 A매치 기간에 맞춰 아시안게임 출전 멤버, 혹은 K리그 포스트시즌에 참가할 국내파가 아닌 일본 J리거 및 유럽과 중동 리거들을 따로 불러 유럽에서 훈련을 하는 방안까지 모색했으나 역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다 축구협회로선 전혀 계획해둔 바 없어 곤란한 게 사실이다.
조 감독은 내년 1월 10일 아시안컵이 개막하기 때문에 12월 중순께부터 본격 아시안컵 체제로 돌입한다는 복안을 세워뒀다. 그러나 K리그 시즌이 종료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선수들이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하면 컨디션 하락 등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나올 수도 있다.
조 감독의 한 측근은 “대표팀이 중동으로 전지훈련을 떠나는 것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주변 상황이 좋지 못해 확정된 게 전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 일본과의 친선경기를 앞두고 지난 7일 오후 경기도 파주 NFC에서 열린 축구대표팀 훈련에서 박지성과 차두리 등이 조광래 감독의 지시를 받으며 몸풀기 게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된 후 조 감독은 “브라질월드컵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선 ‘쌍용(이청용-기성용)’의 뒤를 받쳐줄 뉴 페이스들을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만큼 세대교체의 중요성을 역설한 셈. 그러나 아시안컵 우승과 매끄러운 세대교체까지 두 마리 토끼몰이를 한 번에 성사시키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분석이다.
일단 세대교체에 중점을 두면 어리고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선수들이 대거 엔트리에 뽑힐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베테랑들이 젊은 피들에게 자리를 내줘야 하고 전력은 일정 수준 약화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국내 축구계 정서상 이번 아시안컵에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1956년과 1960년 열렸던 1, 2회 대회를 거푸 석권한 뒤 한국은 아직 우승 경험이 없다. 아시아 최강이란 수식이 부끄러울 정도. 조 감독이 앞서 “아시안컵 우승도 세대교체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말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51년 만의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선 결국 최상의 전력을 구축해야 하는데, 현재로선 경기 경험이 풍부한 노장들이 상당수 발탁될 가능성이 높다. 세대교체는 차 순위로 밀리는 게 당연지사.
#3 신뢰와 믿음 더 쌓여야
아직 출범 초기 단계이고,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조광래호는 한번쯤은 꼭 겪어야 할 중간 과정을 거치고 있다.
대표팀이든, 프로 클럽이든 성적이 좋으면 찬사가, 성적이 나쁘면 비난과 비판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조 감독도 전임 대표팀 사령탑들이 거쳤던 것처럼 단물과 쓴물을 두루 마셔보고 있다.
솔직히 현재 대표팀이 완전히 정착됐다고는 보기 어렵다. 평가전 결과나 내용과 관계없이 워낙 많은 선수들이 대표팀을 오가고 있고, 조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 철학과 전술적 흐름도 확실히 녹아들지 못했기 때문에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실제로 선수들이 너무 자주 변화하다보면 일정한 틀이 유지되기 어렵고, 매번 앞서 했던 과정을 또 한 번 반복해야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나타난다.
또한 선수들이 조 감독을 사제지간으로 만나본 경험이 없다면 고충은 더욱 커지게 된다. 대표팀에서 오랜 시간 활약했던 노장들도 제대로 조 감독을 경험하지 못한 마당에 젊은 피들에게 뭔가 강렬한 임팩트를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욱이 전술적 선택에서 확인했듯이 허정무 전 감독과 조광래 감독의 지도법에는 차이가 큰 것으로 알려진다.
화끈한 성격의 허 감독이 믿고 맡기는 경향이 짙다면 젊은 선수들을 육성해 쏠쏠한 재미를 봤던 조 감독은 ‘유치원장’이란 닉네임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일을 세밀히 계획한 뒤 이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따져 확인하는 타입이다.
몇몇 젊은 선수들의 지인들은 “전임과 현재 감독 스타일이 원체 달라 혼란을 겪고 있는 걸로 안다”면서 “결국은 벤치와 선수들 간의 상호 신뢰와 믿음이 중요한데, 다행히 아직까지는 대표팀에서 엇박자가 나고 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