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1차전을 하루 앞둔 지난 6일 대구시민체육관에서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두산 김경문 감독(왼쪽)과 삼성 선동열 감독이 악수를 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선동열 감독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는 ‘국보투수’ 출신이에요. 어딜 가나 그랬어요. ‘무등산 폭격기’, ‘나고야의 태양’ 등 늘 찬사를 받았어요. 고려대 졸업 후 선 감독이 해외진출을 시도하자 연고팀인 해태 타이거즈는 난리가 났어요. 광주 시민들의 피켓 데모까지 동원해서 어떻게든 붙잡는 데 성공했죠.
그 무섭다는 ‘코끼리’ 김응용 감독도 선수 시절의 선동열에게는 함부로 못했어요. 경기 중 라커룸에서 짬뽕 먹다가 갑자기 등판했다는 일화도 있어요. 다른 선수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국보투수’이기에 가능했어요. 이처럼 스타플레이어 출신인 선 감독이지만 지도자가 되고 난 뒤에는 오히려 온화한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어요. 가만히 있어도 뿜어져 나오는 포스 때문에 굳이 화내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없었죠.
김경문 감독은 현역 시절 한마디로 ‘B급 포수’였어요. 82년 OB에 입단한 뒤 10시즌 동안 통산 타율 2할2푼에 6홈런이에요. 프로 첫해인 82년에 박철순과 배터리를 이뤄 초대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지만, 야구팬들 기억에는 박철순이란 이름만 남았어요. 한마디로 그저그런 선수였어요. 하지만 2004년 두산 감독이 된 뒤 올해까지 7시즌 가운데 6차례나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며 성공한 지도자가 됐어요. 2008년에는 베이징올림픽에서 대표팀을 이끌고 한국 남자 구기종목 사상 첫 금메달을 따냈어요. 김 감독, 소원성취했어요. 올림픽 금메달 이후엔 가정주부까지 김경문 감독이 누군지 알게 됐어요.
#일상생활
선동열 감독은 대구에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있어요. 혼자 살다보니 선 감독은 대구 시내의 맛집이란 맛집엔 모두 통달했어요. 본래 음식 맛있기로 유명한 광주 출신이에요. 처음 대구 연고팀의 감독이 됐을 때에는 “먹을 게 마땅치 않다”고 했는데, 이제는 뒷골목의 허름한 닭볶음집까지 꿰고 있어요. 선 감독과 함께 맛집에 가면 페이스 조절을 잘해야 해요. “이것 좀 먹어봐”, “저것도 먹어봐”하면서 챙겨주는 걸 모두 받아먹다보면 배터지려 해요. 겉으로는 말수가 적어 다소 무뚝뚝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정이 있어요.
선 감독은 예의를 중시해요. 일전에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는데 얼큰하게 취한 취객이 “어? 선동열이네. 선 감독, 내 술 한잔 받지”하면서 다가왔어요. 그 취객,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뻘쭘’하게 뒤돌아서야 했어요. 혹시 기분 나빠서 ‘안티팬’이 돼버리면 어떻게 하냐고요? 신경 안 써요. 그게 선 감독의 스타일이에요.
사실 카리스마는 김경문 감독이 더 있는 편이에요. 이런저런 인터뷰에서 온화한 모습을 많이 보이지만 실은 욱하는 성격이 있어요. 평소 신념을 있는 대로 말하는 편이기 때문에 구단 고위층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소문도 있어요. 하지만 구단 직원들은 그런 김경문 감독의 모습에서 카리스마를 느껴요. 애초에 두산 감독이 될 때 직원들이 인기투표를 통해 후보를 정했다는 얘기도 있었어요. 그때 김 감독이 1등을 했다는 말이 있어요.
김경문 감독은 유독 선 감독을 챙기는 편이에요. 정규시즌 때 대구구장 원정경기를 가면 슬그머니 복도로 돌아서 3루쪽 삼성 더그아웃에 나타날 때도 있어요. 선배가 후배 감독에게 인사하러 가는 건 드문 일이에요. 그럴 때마다 선 감독도 “어이쿠, 제가 가야 하는데”라며 민망해해요. 김 감독과 선 감독이 평소 사이가 좋기 때문에 두 팀간 경기에서는 선수들도 험악한 플레이로 상대를 자극하지 않는다는 얘기까지 있어요.
#포스트시즌 승부
이번 플레이오프에선 두 감독이 멋진 승부를 보여줬어요. 그런데 평소엔 나오지 않던 모습까지 등장해 화제가 됐어요. 10월 8일 대구구장의 2차전 때 선동열 감독이 두산 선발 히메네스를 가리키면서 심판에게 어필했어요. 선 감독은 평소 상대팀 선수와 관련해 항의하는 경우가 없어요. 때문에 대구구장 기자실에선 “SK 김성근 감독 스타일로 변신한 것 같다”는 농담도 나왔어요. 그만큼 선 감독 입장에서도 이번 포스트시즌이 중요했기 때문일 거예요.
김경문 감독과 관련된 일화도 있어요. 플레이오프 2차전 9회에 4-1로 앞서던 경기가 4-3까지 추격당하고 역전 위기에 놓였어요. 현장에 있던 사진기자들에 따르면, 김경문 감독은 9회에 마무리투수 임태훈이 삼성 타자와 상대할 때 잠시 그라운드를 못보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장면이 목격됐다고 해요. 천하의 강심장, 김경문 감독도 그만큼 노심초사했던 거예요.
사실 이번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어느 한쪽이 2연승을 하면 3차전은 그냥 져주는 게 아니냐는 전망까지 있었어요. 두 감독이 워낙 관계가 좋기 때문에, SK와의 한국시리즈를 위해 밀어줄 수 있다는 몇몇 전문가들의 예측이었어요. 그런데 그 전문가들, 모두 밥줄 끊기게 생겼어요. 봐주기는커녕, 두 팀은 1, 2차전 모두 한 점차 살얼음 승부로 야구팬들 가슴을 들었다 놨다 했어요. 결국 아무리 친해도 승부는 승부예요.
선동열 감독은 사실 이번 플레이오프 상대로 두산보다 롯데가 올라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롯데가 경기하기 편한 상대라는 것인데, 한편으론 친한 김경문 감독을 상대로는 독한 야구를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믿거나 말거나예요.
김남형 스포츠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