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인 투자자로 명성이 높았던 알 왈리드 왕자는 IMF사태 당시 세 차례 한국을 방문해 현대 삼성 등에 투자했다. | ||
달러 베이스의 경제정책을 취하고 있는 한국 경제에서 달러 창고가 텅 비어 버렸으니 그 고초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달러가 없으니 현찰을 주고 사와야 하는 기름이나, 외채이자를 어떻게 지급해야 할지 정책담당자들은 눈앞이 캄캄했다.
왜 그 지경에 이르렀는지는 새삼 분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정부의 방만한 경제운용과 국제화 운운하면서 달러를 펑펑 써버린 국민 모두의 책임이니 말이다. 어쨌든 달러 창고가 비어버린 상황에서 김대중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모든 경제정책을 달러 창고 채우기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다보니 별의별 사건들이 많았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알짜배기 자산을 외국인들에게 헐값으로 넘긴 일들이었다. 일부 시중은행이나 재벌 계열사 등이 자산가치의 20%도 안되는 값에 넘어갔다. 지금이야 이를 비난할 수 있겠지만 당시로선 정부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의 달러채우기 정책으로 떼돈을 번 외국인들은 부지기수였다. 주식에 투자해 대박을 터트린 곳도 있었고, 헐값에 알짜배기 회사를 인수한 뒤 되팔아 10배 장사를 한 외국계 펀드도 있었다.
강남의 노른자위 땅에 세워진 건물을 반값에 산 곳도 있었고, 어떤 컨설팅 회사는 재벌을 상대로 말도 안되는 컨설팅을 해주곤 수백억원을 챙기기도 했다.
그러나 대다수 외국인들이 지갑을 두둑히 채운 98년 당시 한국에 투자를 했다가 본전은커녕 원금까지 날린 투자자가 있었다. 그것도 세계적인 투자자로 명성이 높았던 인물이면 믿을 수 있을까.
그 주인공은 바로 세계 10대 거부에 드는 시티그룹 총수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왈리드 왕자였다.
왈리드 왕자가 어떤 루트로 한국 투자에 나섰는지는 다음에 다시 언급하기로 하고. 어쨌든 왈리드 왕자는 98~99년 사이에 수억달러를 한국 시장에 투자했지만 결과적으로 막대한 투자금을 날리고 초라하게 한국을 떠났다.
왈리드 왕자가 한국에 투자를 시작한 것은 98년 초였다. 김대중 정부의 한 인사에 의해 한국 투자에 나섰던 그가 투자대상으로 삼았던 곳은 삼성그룹, 현대그룹, 대우그룹 등 당시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3대 빅메이저 기업이었다.
당시 국내 기업들은 어찌됐건 외국인의 투자를 받는 게 지상과제였다. 똥묻은 돈일지라도 달러면 오케이였다. 그런 상황에서 왈리드 왕자의 한국 투자는 그야말로 기업들로선 쌍수를 들어 반길 일이었다.
우선 왈리드 왕자는 현대자동차에 투자를 했다. 이 회사가 발행한 전환사채를 5천만달러어치 인수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현대그룹은 왈리드 왕자에게 현대건설 전환사채도 사달라고 졸랐다. 왈리드 왕자는 수천만달러어치의 현대건설 사채를 매입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삼성도, 대우도 달려들었다. 비공식적인 얘기지만 왈리드 왕자는 한국에 세 번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신라호텔에서 묵었다. 그는 머무르는 동안 신라호텔의 특실 한층 전체를 빌려 숙소, 사무실 등으로 사용했는데, 그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기업인 수십 명이 진을 치고 면담을 요청했다. 이들 중에는 쌍방울, 극동건설, 풍진 등 지금은 회사가 도산해 사라진 재벌급 기업의 오너들도 있었다. 물론 이들은 돈을 빌리진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곳저곳에 투자를 하던 왈리드 왕자가 결정적으로 물린 것이 대우였다. 당시 대우는 거대 재벌 가운데 가장 경영이 어려웠다. 하루하루 급전도 막지 못해 쩔쩔매던 터에 왈리드 왕자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김우중 회장이 직접 신라호텔로 달려갔다.
김 회장은 당시 김대중 정부의 실세였던 유종근 전 전북지사 등을 통해 왈리드 왕자와 줄이 닿았고, 끝내 (주)대우의 사채를 액면 5천원에 1억5천만달러어치(주식전환시 대략 5%의 지분)나 매각하는데 성공했다. 1억5천만달러면 당시 달러 대비 원화환율이 1천7백원 수준이었음을 감안하면 대략 2천5백억원가량의 적지 않은 자금을 긴급 수혈한 셈이었다.
당초 왈리드 왕자측은 (주)대우의 사채를 사는데 매우 망설였다고 한다. 대우그룹의 재무상태를 알고나면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당시 대우는 막대한 부채로 인한 금융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하루하루를 연명하기 힘든 정도였다. 주채권 은행인 제일은행을 반협박해 자금을 끌어댔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왈리드 왕자측은 투자에 주저하다가 결국 사채를 매입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물론 안전보장을 위해 나름대로 이면계약까지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룹이 문제가 되면 가장 먼저 왈리드 왕자의 투자금을 상환한다는 계약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정확치는 않다.
그러나 이 투자는 결과적으로 ‘꽝’이었다. 왈리드 왕자가 투자를 한 지 1년도 안돼 대우그룹은 해체되고 만 것이었다. 거의 모든 대우의 재산은 국내외 채권단의 손에 넘어갔고, 왈리드 왕자는 한푼도 건질 수 없게 되었다. 이면계약서를 들이밀었지만 김우중 회장이 해외로 나가버린 마당에 모두 휴지조각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왈리드 왕자는 엄청난 분노를 표시했다고 한다. 그럴 법도 했다. 그는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 경제위기를 맞았던 곳에 투자를 해 큰 성공을 거두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는데, 한국에서 실패했으니 망신살이 뻗친 셈이었다.
그는 자신이 한국 투자에 나섰을 때 중간다리 역할을 했던 당시 권력층 인사들을 대놓고 비난하는 등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것도 분을 삭이기에 부족했는지 왈리드 왕자는 대우그룹과 몇몇 인사를 상대로 국제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왈리드 왕자가 대우에 투자한 돈의 얼마를 회수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그를 잘 아는 인사들에 의하면 그는 투자금의 대부분을 날렸고, 나중에 주식 전환을 통해 10% 내외를 건졌다는 것이다. 정말 대단한 김우중 회장이 아닌가
정선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