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리부 내용을 다룬 영화 <두 번째 사랑>의 한 장면. |
이러한 대리부는 더 이상 해외토픽에서만 볼 수 있는 생소한 뉴스가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대리부는 불임부부들 사이에서 아는 사람들만 아는 최후의 대책으로 은밀히 성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불임으로 고통받는 부부들의 모임인 인터넷 커뮤니티와 카페를 중심으로 상당히 많은 대리부 지원자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정자가 필요하거나 대리부 구하시는 분 망설이지 말고 연락주세요. 38세 디자이너로 근무하는 신체건강한 남성입니다. 177㎝, 70㎏. 부산 ××대학교 시각디자인 전공.”
“33세 B형 남성입니다. 군필로 신체건강하고 집안병력 없습니다. 머리숱도 많습니다.”
“사정이 어려워 대리부 신청합니다. 정직한 사례비만 받겠습니다. 평생 비밀 보장. 브로커나 중개업자는 사절합니다.”
“35세 O형. 175㎝, 72㎏. 갸름한 얼굴에 이목구비 뚜렷합니다. K 대 졸업.”
“28세 인천 거주남입니다. 영어권 오래 거주. 건강한 정자 보장합니다. 자연수정으로 확실히 책임집니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임하겠습니다.”
5000명 이상의 회원을 두고 있는 한 인터넷 카페에 올라와 있는 대리부 지원자들의 소개글 중 일부다. 카페개설 취지는 불임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모여 여러 가지 정보를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고자 하는 것이지만 이 공간에는 어느 순간부터 자녀를 원하는 사람들의 절박한 심정을 악용하는 불청객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대리부를 알선하는 브로커들과 대리부 지원자들이 대표적이다.
한때 대리모(母) 지원자들로 극성을 이뤘던 불임 관련 커뮤니티에는 이제 대리부 지원자들과 브로커들까지 합세해 불임으로 고통받는 부부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젊은층이 주로 활동하는 한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대리부 아르바이트’에 대해 호기심을 표하거나 정보공유를 요청하는 글도 눈에 띈다.
대리부 지원자들의 자기소개는 그야말로 거침이 없다. 일부 지원자들의 소개서는 마치 입사지원서를 연상시킬 정도다. 2세를 탄생시키기 위한 작업이니만큼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한 신체다. 대리부 지원자들은 자신의 탁월한 신체조건 및 집안내력 등을 거론하면서 신체적으로 우성임을 강조한다. 건강한 신체를 보장할 수 있는 병역사항 및 집안 병력, 대머리 유전 여부, 준수한 외모, 비흡연은 필수다. 일부는 해병대, 카튜사 등 특수부대 출신임을 내세우기도 한다. 또 훌륭한 외모와 더불어 학창시절 수학·과학 경시대회 입상경력이나 예체능에 대한 소질, IQ, 명문대 출신 등도 강조된다. 대리부 지원자에게 확인해본 결과 정자 제공 가격은 보통 100만~500만 원선. 계약금조로 30%~50%를 주고 나머지는 성공시 받는 경우, 혹은 50만~100만 원을 선불로 주고 성공했을 경우 사례비로 일정금액을 추가로 지급하는 경우 등 다양하다.
한 대리부 브로커에 따르면 “자궁을 빌려주고 아이를 대신 출산해주는 대리모에 비해 수고스러움이 없다는 이유로 대리모에 비해 가격은 훨씬 낮게 흥정된다. 하지만 우성인자에 대한 검증을 거쳤거나 까다로운 조건이 붙으면 500만 원 이상에 거래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집안대대로 외모와 지능면에서 탁월한 우성인자를 타고났다는 한 명문 대학생은 “명품종마의 정자는 부르는 게 값이다. 아이에게 우성인자를 물려주기 위해서는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돈이 좀 들더라도 현명한 선택을 하셔야 한다”며 대놓고 가격흥정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성 유전자에 대한 갈망에 앞서 우선시되는 것은 아버지쪽과 최대한 비슷한 조건을 찾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대리부 브로커들의 얘기다. 한 브로커는 “기본적으로 혈액형이나 아버지 집안 쪽 체형을 감안한다. 머리색이 완전 흑색인지 약간 놀놀한지, 직모인지 곱슬인지, 광대뼈가 나왔는지 등 얼굴 특성도 고려된다. 아버지 쪽 사람들이 하나같이 머리숱이 없는데 무조건 머리숱이 많은 대리부를 구한다거나 얼굴이 넙데데한데 갸름한 사람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 불임 부부들의 인터넷 카페에 올라와 있는 대리부 지원자들의 자기 소개글. 신체 조건부터 학력, 지능지수까지 거론하며 카페 회원들을 유혹하고 있다. |
실제로 상당수의 대리부 지원자들은 “급전이 필요하다” “사정이 어려워서 대리부 지원을 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으며 개중에는 “가격은 추후 조정 가능하다” “브로커 없이 직접 거래하고 싶다”며 노골적으로 금전거래를 제안하는 이들도 있다. 일부 대리부 지원자 중에는 ‘정자 무료 제공’ ‘정말 간절히 아기를 원하는 부부들만 연락주세요’라는 조건을 내세우며 순수성을 강조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정작 ‘정자 무료제공’을 언급한 이들과 통화 결과 그들에게서는 “돈 얘기는 만나서 직접 조율했으면 좋겠다” “완전 공짜라는 말은 아니다” “나중에 ‘적당한 수고비’만 감사히 받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리부가 성행하고 있는 것과 관련, 생명윤리협회 등은 “정자를 사고 파는 등 상품가치로서 인체 일부를 사용하는 것은 인신매매나 다름없다”며 심각한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대리부 문제가 단지 생명윤리와 관련된 논쟁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자를 거래하는 대리부 문제는 추후 더욱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충격적인 것은 대리부가 단지 정자를 제공하는 인공수정 방법을 거치는 것뿐 아니라 직접 성관계를 맺어 자연수정시키는 방법이 병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리부 지원자들 중에는 병원출입 등의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지 않는 ‘자연수정’이 빠르고 확실하다며 아예 처음부터 자연수정을 제안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일부 대리부 지원자들은 “‘정력’은 기본이고 만족스런 성적 서비스는 보너스”라는 황당한 문구까지 내걸어 대리부 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대리부에 의한 자연수정이 부부의 합의하에 이뤄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놀라운 일이다. 실제로 부부가 합의하에 대리부 물색에 나선 경우도 있다. 하지만 평범한 부부에게 있어서 아내와 낯선 남성과의 직접적인 성관계는 쉽게 용납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에 인터넷 게시판에는 자연수정 경험자에게 조언을 구하는 글과 자연수정 후 후유증에 대한 불안함에 대한 글도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부부동의하에 이뤄졌다 해도 자연수정은 추후 부부관계의 악화 및 부부갈등의 심각한 원인이 될 소지가 있다. 대리부와 아내의 ‘자연수정’으로 아이를 얻었다는 40대 후반의 한 남성은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더니…”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대리부 경험에 대한 의미심장한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40대가 끝나기 전에 반드시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절박함에 대리부를 선택했지만 그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남성은 “이렇게까지 해서 아이를 가졌어야 했는지에 대해 회의감과 참담한 마음이 든다. 대리부 선택은 아내와 충분한 협의하에 이뤄졌고 자연수정도 내 허락하에 진행됐지만 내 자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괴롭다. 또 아내에 대한 알 수 없는 배신감과 미움으로 견디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남성은 “사흘에 한 번씩 아내를 직접 차에 태우고 대리부와 만나게 해줬다. 그런데 자꾸 두 사람의 모습이 상상이 되어 아내를 전처럼 대할 수 없어졌다. 모든 ‘작업’이 끝난 후 대리부에게 ‘아내를 절대로 만나지 않고 우연히 만나더라도 아는 척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받았지만 자꾸 아내와 대리부 관계를 의심하게 되고 현재 가정은 거의 파탄지경에 이르렀다”고 호소했다.
또 대리부 문제는 유독 혈연과 유전자에 집착하는 우리 사회 풍토와 맞물려 새로운 문제들을 양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위험하다. 대리부를 통해 아이를 출산했을 경우 대리부가 추후 비밀폭로 등을 빌미로 협박하는 등 제2, 제3의 범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불황 탓 출산 대신 인형 ‘입양’
그 주인공인 인형은 바로 ‘리본(reborn·재탄생)인형’이다. 실제의 신생아와 똑같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크기와 체중까지 신생아 평균치로 만들어졌다. 제품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만들고 각각 이름을 지어놓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인형이다. 판매자는 인형을 ‘판다’고 말하지 않고 ‘입양시킨다’고 표현한다. 인형을 ‘입양’해가는 여성들 역시 기저귀를 갈아주고, 옷을 갈아입히고, 안아주는 등 실제로 아이를 돌보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녀들은 그렇게 아이를 돌보면서 스스로에게 큰 위안을 얻는 것이다.
이처럼 ‘리본 인형’이 유행하는 까닭은 이탈리아의 심각한 저출산율과도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세계적인 불황에도 불구하고 국가로부터 육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 거의 없고 일하는 엄마들을 위한 보육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출산을 포기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는 대신 ‘리본 인형’을 입양한다는 것이다.
김지혜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