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1위. 연장은 괴로워
감독:선동열 김경문, 주연:삼성 라이온즈 두산 베어스
2010 가을야구 최고의 작품상은 엎치락뒤치락 연장 대접전을 벌인 삼성과 두산의 플레이오프로 선정됐다. 1점차 승부만 5번, 매 경기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박빙의 드라마가 연출됐다. 마지막 5차전까지도 9회로 승부를 보지 못한 두 팀은 연장에 들어갔고, 11회말 2사 만루에서 터진 박석민의 끝내기 안타가 대혈투의 종지부를 찍었다.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으며 경기를 지켜본 야구팬들은 두 팀의 진검 승부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전문가들 역시 ‘2010 포스트시즌 최고의 각본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KBS N 이병훈 해설위원은 “극적인 반전에 소름이 돋았다. 프로야구 태동 이래 최고의 명승부라 생각한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2위. 뒤집기는 내 운명
감독:김경문, 주연:두산 베어스조연:롯데 자이언츠
‘역전의 명수’ 김경문 감독의 연출이 빛났다. 두산은 준플레이오프 1차전 9회초, 전준우에게 역전 솔로포를 맞아 무릎을 꿇은 데 이어 2차전 역시 연장 10회에 터진 이대호의 3점 홈런에 쓰디쓴 패배를 맛봤다. 그러나 그때부터 두산의 뒤집기 본능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3차전부터 내리 3승을 거두는 기적 같은 ‘리버스 스윕’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한 것. 두산은 2009년 준플레이오프에서도 1패 뒤 3승을 거두는 뒷심을 발휘한 바 있다. 롯데는 2년 연속 두산의 뒤집기에 고개를 떨어뜨려야만 했다.
SBS Sports 김용희 해설위원은 “야구는 멘탈 싸움이다. 상대가 보인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든 두산이 정신력에서 한 수 위였다”고 덧붙였다.
3위.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감독:김성근, 주연:SK 와이번스, 조연:삼성 라이온즈
피도 눈물도 없었다. 김성근 감독의 한국시리즈 각본 속에 인정은 없었다. SK 와이번스가 파죽의 4연승을 거두며 손쉽게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렇게 쉽게 끝날 줄 몰랐다”는 김성근 감독의 우승 소감처럼 싱거운 승부였다. KBS 이용철 해설위원도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박빙의 승부에 비해 한국시리즈가 너무 허무하게 끝났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SK는 김 감독이 부임한 2007년 이래, 벌써 3번의 우승과 1번의 준우승을 경험했다. 4년간 한국시리즈 평균자책점도 2점대(2.96)에 불과하다. 1980~90년대 ‘레전드 해태’를 재현하려는 SK의 질주를 과연 어느 팀이 막을 수 있을까.
4위. 거침없이 퍼붓기
감독:가을야구, 주연:SK 삼성 라이온즈 두산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2010 포스트시즌의 대세는 선발 없는 ‘투수 퍼붓기’였다. 14경기가 치러진 가을야구에서 퀄리티스타트(6이닝 3자책점 이하)에 성공한 선발카드는 28번 중 단 3번에 불과했다. 가을잔치에 초대된 4팀이 단기전에서 철저하게 ‘이기는 야구’를 추구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안타를 허용하지 않아도 불안한 기미가 보이면 곧바로 투수 교체가 이뤄질 정도였다. 각 구단 모든 투수가 총출동한 포스트시즌, 눈은 즐거웠지만 마음은 씁쓸했다.
MBC ESPN 서정환 위원은 “시즌 중 투수 혹사에서 오는 결과다. 체력을 비축해뒀던 SK 투수들이 삼성을 손쉽게 이길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며 뼈있는 말을 남겼다.
감독:선동열, 주연:안지만 정현욱 권혁
올 시즌 삼성은 ‘안정권(안지만-정현욱-권혁)’이라 불리는 철벽 불펜의 힘으로 페넌트레이스 2위를 차지했다. ‘철옹성’으로 불리던 ‘안정권 트리오’는 삼성의 승리 공식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포스트시즌에선 ‘안정권’의 위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 부진의 중심에는 권혁이 있었다. 페넌트레이스에서 7승 1패 4세이브 평균자책점 2.04를 기록하며 최강 불펜을 이끌었던 권혁은 한국시리즈서 2경기 출전해 1패 평균자책점 27.00이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KBS N 이병훈 해설위원은 “변화를 주지 못한 예견된 몰락이다. 내년이 더 걱정”이라며 쓴소리를 남겼다.
6위.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감독:롯데 자이언츠, 주연:제리 로이스터, 조연:김경문 김재박
플레이오프 5차전을 앞둔 10월 14일 오후, 롯데 자이언츠는 로이스터 감독과의 재계약 포기를 공식 발표했다. 롯데 구단이 “포스트시즌 성적에 따라 재계약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라고 거듭 밝혀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그러나 로이스터 감독의 ‘화끈한 야구’에 매료됐던 롯데 팬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우승’보다 더 값진 ‘재미’를 선물한 감독이란 것. 김재박 전 LG 감독이 롯데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거론됐다가 롯데 팬의 뭇매를 맞았고, 두산 김경문 감독 이적설까지 흘러나왔다.
결국, ‘새 얼굴’ 양승호 감독이 낙점을 받아 의아함 속에 새출발 의지를 다지고 있다. 오리무중에 빠졌던 롯데 구단에 딱 맞는 영화다.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7위. 디워(D-WAR)
감독:KBO, 주연:야구를 사랑하는 모든 팬, 조연:G마켓
가을 야구 잔치, 포스트시즌은 경기장 밖에서 먼저 막이 올랐다. 야구 티켓을 손에 넣기 위한 ‘전쟁’이 벌어진 것.
2010 포스트시즌은 현장 판매분 없이 모두 인터넷 예매로만 판매됐다. 0.01초 만에 동이 나버리는 티켓 때문에 야구팬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15만 원까지 치솟은 티켓 값에 암표상들만 신이 났다.
팬들은 “표가 있긴 한 거냐”, “KBO나 G마켓은 팬들을 위한 티켓을 충분히 마련해두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8위. 더그아웃 습격사건
감독:KBO, 주연:양준혁, 조연:김성근
한국시리즈에 초대받지 못한 손님, ‘양신’의 가을은 쓸쓸했다. 양준혁은 지난 9월 19일 은퇴식 이후에도 포스트시즌 내내 후배들과 함께했다. 더그아웃에서 선수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며 마지막 가을야구를 만끽하고 있던 양신에게 스승 김성근 감독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엔트리에 등록되지 않은 양준혁이 더그아웃에 있는 건 규정 위반이라는 것. 플레이오프 땐 두산 김경문 감독의 배려로 더그아웃에서 팀을 응원할 수 있었지만 한국시리즈선 ‘원칙’을 고수하란 스승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양준혁은 구단 버스에서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마지막 4차전 중반 이후 더그아웃 구석에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 ‘양신’은 우승을 만끽하는 SK 선수들의 모습을 바라보다 쓸쓸히 돌아섰다.
주연:박경완 박한이 김재현 김동주
2010년 포스트시즌에선 ‘노장의 반란’이 일어났다. 박경완, 박한이, 김재현, 김동주 등 베테랑 선수들은 그동안 산전수전 다 겪으며 쌓아온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두산 김동주는 데뷔 후 10번째 밟은 포스트시즌 무대에서 관록을 발휘하며 중심 타자의 진가를 보여줬다. 삼성 박한이 역시 플레이오프 1차전의 역전 결승 3점포를 쏘아 올리는 등 자신의 9번째 포스트시즌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SK 노장 박경완, 김재현은 연승 행진의 디딤돌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KBS N 이병훈 해설위원은 “젊은 선수들을 분발케 한 일등 공신들”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0위. 박수칠 때 떠나라
감독:김성근, 주연:김재현
SK 와이번스의 ‘캡틴’ 김재현이 행복한 은퇴 무대를 가졌다. 이번 한국시리즈를 마지막으로 현역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한 김재현은 팀의 우승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마지막 날까지 행복하다”는 말을 남겼다. 그는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재역전 2타점 적시타를 뽑아내며 팀 승리의 선봉에 선 바 있다. 최고의 무대, 그 중심엔 김재현이 있었다.
한편, MBC ESPN 한만정 해설위원은 “가을잔치에 초대된 4팀 모두 공격과 수비의 조화에 더욱 중점을 둬야 할 것이다. 롯데와 두산은 투수력의 부재에 대비해야 한다. 삼성은 불펜에 의존하는 야구에서 벗어나 중심타자를 키워야 하며, SK 역시 투수 로테이션에 집중하기 보단 호쾌한 거포 육성을 위해 노력해야할 것이다. 투타 밸런스야말로 야구 흥행을 이끄는 열쇠”라며 가을 야구 총평을 남겼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
국민 드라마 따로 없네…
해설위원이 선정한 가을야구 시나리오 10편 중 최고의 흥행작품은 무엇일까. AGB닐슨미디어리서치가 제공한 포스트시즌 시청률을 분석한 결과 연장 11회까지 가는 삼성과 두산의 대접전, 플레이오프 5차전이 15.458%란 경이적인 수치의 시청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써 삼성과 두산이 연출한 ‘연장은 괴로워’가 작품상에 이어 흥행상까지 거머쥐게 됐다. 삼성과 SK의 한국시리즈 1차전이 13.3%의 시청률로 그 뒤를 이었다, 한편, 플레이오프 4차전 경기는 13.2%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8.1%, 10.9%, 10.1%을 기록한 한국시리즈 2~4차전보다 높은 흥행을 이끈 것으로 나타났다.
‘가을 남자’ 어김없이 불방망이
박정권, 그는 역시 ‘가을의 전설’이라 불릴 만했다. 지난해 플레이오프에서 21타수 10안타 타율 4할7푼6리 3홈런 8타점, 한국시리즈에서 28타수 11안타 타율3할9푼3리 2홈런 9타점을 기록하며 연일 불방망이를 휘둘렀던 그다.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도 박정권은 ‘가을 사나이’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6회 말 쐐기 투런포를 쳐낸 그는 4차전에서도 2타점 2루타로 삼성의 기를 꺾는 한 방을 쏘아 올리며 팀의 우승에 앞장섰다. 그는 “작은 일에 소심하고 큰 일에 침착한 제 성격 덕분인 것 같다. 큰 무대에서 오히려 즐기게 된다”며 가을에 ‘미치는’ 까닭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