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한국시리즈가 끝난 야구계에 ‘코리안 특급’ 박찬호(37·피츠버그)의 한국 복귀가 또다시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한화 쪽에서 “박찬호가 한화와 이미 구두계약을 마쳤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동양인 최다승인 124승을 거둔 박찬호는 대기록을 달성한 뒤 “고국 무대에서도 뛰고 싶다”며 자신이 뛰고 싶은 팀으로 대전이 연고지인 한화 이글스를 직접 지목한 바 있다. 박찬호가 정말 한화와 구두계약을 마친 것일까. 박찬호 측근들과 한화 관계자들을 통해 그 소문의 진위를 밀착 취재했다.
▶한화와 구두계약 진실
박찬호의 국내 복귀 논란에 불을 지핀 이는 그 누구도 아닌 박찬호 자신이었다. 박찬호는 124승으로 아시아인 최다승을 달성한 뒤 앞으로의 목표를 묻는 언론에 “한국 복귀 시기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라고 대답했다. 이것이 박찬호 국내 복귀설의 실마리를 제공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박찬호의 국내 복귀는 희망사항처럼 보였다. 박찬호의 발언이 고려 수준에 그친 데다 국내 복귀를 적극적으로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찬호와 절친한 한 야구인은 “한국에서 명예롭게 은퇴하겠다는 (박)찬호의 다짐은 여전히 유효하다”면서 “그러나 줄곧 미국에 있던 가족이 한국에서 잘 적응할까를 두고 몹시 고심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다시 말해 박찬호는 언제라도 한국에 올 의사가 있으나, 아내 박리혜 씨(35), 딸 애린(4)과 세린(2)이 마음에 걸린다는 뜻이다.
그러나 최근 야구계에서 “박찬호와 한화가 입단과 관련해 구두계약에 합의했다”는 소문이 새어나오며 박찬호의 국내 복귀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모 야구관계자는 “박찬호와 한화 고위층이 입단에 원칙적인 합의를 본 것으로 안다”며 “박찬호가 어느 정도 가족을 설득했단 소릴 들었다”라고 전했다. 한화의 핵심관계자도 박찬호와 구단 간 구두계약에 대해선 논평하길 거부하면서도 “양쪽이 원칙적인 입장에 합의를 봤다”고 밝혔다.
박찬호와 한화가 구두계약을 맺건 원칙적인 입장에 합의했건, ‘코리안 특급’의 대전행은 그 어느 때보다 가능성이 커 보인다. 구두계약이라 강제성은 없지만, 계약 주체들의 계약의지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반응
박찬호는 지난 9월 중순, 뉴욕 메츠와의 원정경기 중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한국 무대에 서는 데 대해 가족들과 지인들의 반대가 심하다. 이유는 그동안 메이저리그에서 쌓은 업적이 훼손될까 걱정하기 때문이다”면서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떠한가. 내가 한국에서 뛴다고 해서 팀을 우승시키거나 팀의 승수에 보탬이 되려고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라고 한국행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나타낸 바 있다.
이에 대해 박찬호의 측근 A 씨는 “박찬호가 124승을 달성하면서 더 이상 메이저리그에 남아 있어야 할 목표가 사라졌다. 선발 투수라면 몰라도 더 이상 메이저리그에서 승수를 올리는 게 의미가 없어진 마당에 내년 시즌 박찬호의 한국행은 있을 수 있는 시나리오 아닌가”라고 설명했다.
박찬호의 또 다른 측근 B 씨는 다른 의견을 나타냈다. “한국으로 가기 전 일본행도 고려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왜냐하면 결혼 5년차인 박찬호가 가족들과 계속 떨어져 지내는 데 대해 고민이 많았다. 와이프 가족들이 있는 일본에서 뛸 경우 안정된 가정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듯했다. 일본행에 대해 한국 팬들이 아쉬움을 나타내지 않을 것이냐는 물음에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내 인생을 꾸리는 것이다. 누가 뭐라 한다고 해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달라지진 않는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박찬호는 이전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장 내년 시즌부터 한국에서 뛸지 어떨지에 대해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내가 만약 한국에서 야구를 한다면 그게 내 야구인생의 마지막이라는 사실이다”라고 대답했다. 문제는 박찬호가 이번 시즌을 마치면서 점점 구위가 살아나고 제구력이 좋아졌다는 부분이다. 124승 달성 후에도 실제 박찬호는 “공이 좋아지니까 욕심이 난다”라고 말한 바 있다. 메이저리그 잔류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 지난 9월 중순 뉴욕 메츠와의 원정경기 당시 <일요신문>과 인터뷰한 박찬호는 한국행에 대한 의지가 있음을 내비쳤다. 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전문기자 |
만약 박찬호가 한국으로 돌아온다면 그의 몸값은 얼마나 될까.
한화 윤종화 단장은 “박찬호가 돈을 벌기 위해 국내 복귀를 추진할 리는 없다. 따라서 서로 만나 진심을 토해내면 몸값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으로 전망했다. 윤 단장의 예상처럼 ‘번 만큼 번’ 박찬호가 고액연봉을 요구할 가능성은 작다. 게다가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박찬호의 성격을 고려할 때 돈보단 고향팀으로 돌아온다는 데 더 큰 의미를 둘 게 자명하다.
그러나 일부에선 윤 단장의 발언을 “전혀 프로답지 않은 얕은 수”라고 비판한다. 한 야구해설가는 “윤 단장의 ‘박찬호가 돈 때문에 국내 복귀를 추진할 리 없다’는 말은 ‘박찬호가 높은 몸값을 부르지 않기를 바란다’는 한화의 희망사항이자 양측이 생각하는 몸값 수준이 다를 시 박찬호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려는 사전 장치에 불과하다”며 “프로 선수는 자신의 숙련된 노동을 제공하고, 더 많은 연봉을 받으려는 사람들이지 자선사업가가 아니다”라고 역설했다.
박찬호의 측근 A 씨는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현역 생활을 하고 있는 선수들 예를 들었다.
“탬파베이 트리플A 소속이었던 서재응이 KIA 타이거즈와 계약할 당시에도 계약금 8억, 연봉 5억, 옵션 2억 등 총 15억 원에 입단 합의를 봤다. 메이저리그 투수인 박찬호가 갖는 상징성을 생각한다면 서재응보다는 훨씬 더 많은 돈을 받지 않을까 싶다.”
A 씨는 박찬호의 자존심과 명분을 살려줄 수 있는 액수로 200만 달러에서 300만 달러를 예상했다.
한화 또한 박찬호가 입단만 한다면, 국내 프로야구 선수 가운데 최고 대우를 해줄 참이지만 15억 원 이상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많은 야구전문가는 “한화 입장에서 15억 원 이상은 분명히 부담스러울 만한 금액”이라며 “그래도 프로선수는 연봉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는 점을 고려하고, 코리안특급의 티켓 파워를 예상한다면 박찬호의 연봉은 (계약금 제외) 10억 원선이 적정하다”고 주장한다.
▶보직은 어떻게?
한창 박찬호의 국내 복귀설이 퍼졌을 때 항간엔 “한대화 감독이 박찬호를 껄끄러워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박찬호가 팀에 미칠 영향력에 한 감독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는 게 소문의 내용이었다. 일부에선 “메이저리그 대스타인 박찬호가 감독의 지휘에 반기를 들거나 이의를 제기하면 난감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며 “박찬호가 워낙 거물이라, 한 감독이 아니라 그 어느 감독이라도 박찬호를 전면으로 반기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한 감독의 생각은 다르다. “제 아무리 박찬호라도 선수는 선수일 뿐이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자세다.
한 감독은 되레 박찬호의 한화 입단을 바라고 있다. 이유가 있다. 박찬호만큼 뛰어난 실력과 풍부한 경험을 겸비한 베테랑 투수도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 감독은 “37세지만, 박찬호는 선발과 중간, 마무리 모두를 맡을 수 있는 실력과 체력을 겸비했다”며 “팀 전력과 상황에 맞게 적재적소에 기용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매우 요긴한 투수”라고 평가했다. 특히나 “탁월한 리더십으로 선수단을 이끌고, 후배들에게 경험을 전수해준다면 10승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말로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야구계는 박찬호가 한화에 입단한다면 선발보단 마무리 보직을 맡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한화는 구대성 이후 몇 년째 마땅한 마무리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웠다. 올 시즌 외국인 투수 프란시스코 데폴라를 마무리로 기용했으나, 원체 선발진이 약해 세이브 기회가 많지 않았다. 경기 경험이 풍부하고, 다년간 불펜에서 구원투수로 뛰었던 박찬호가 마무리로 뛴다면 외국인 투수 2명을 선발로 쓸 수 있다.
이용철 KBS 해설위원은 “37세의 나이에도 시속 150㎞의 강속구를 뿌리는 박찬호는 마무리 투수로 제격”이라며 “시간이 갈수록 성숙해지는 와인처럼 박찬호의 제구도 나이가 들수록 더 좋아지고 있어 한화의 뒷문을 책임진다면 최고의 마무리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한국 복귀로는 선배격인 KIA 타이거즈 서재응은 박찬호의 한국행에 대해 이런 기대감을 드러냈다.
“찬호 형이 124승을 올릴 때 경기를 보니까 여전히 볼이 빠르고 제구력과 변화구가 뛰어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만약 한국에서 뛸 경우, 마무리를 맡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은데 지금의 공이라면 한국 야구에서 충분히 통할 것이라고 본다. 단, 한국 야구는 미국과 달리 ‘기다림의 야구’다. 타자들이 웬만해선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기 때문에 하루 빨리 한국 야구 스타일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찬호 형이 한국 마운드에 올라섰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국 프로야구가 더 큰 붐업을 이룰 것이고 한화팀이 큰 주목을 받을 것이며, 유소년 야구 선수들한테 찬호 형의 존재가 엄청난 동기 부여를 제공할 것이라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나 또한 찬호 형과 같이 한 무대에서 뛴다는 상상만으로도 설렘과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이영미 기자=riveroflym@ilyo.co.kr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신인드래프트 거치면 1년 ‘허송’
박찬호가 국내 복귀를 결심했다고 해서 바로 한화 입단이 가능한 건 아니다. 먼저 한국야구위원회(KBO)를 통해 신인드래프트 신청을 해야 하고, 한화가 1차 1라운드에서 지명해야만 이글스 유니폼을 입을 수 있다.
문제는 신인드래프트가 시즌 중반에 열리기 때문에 설령 박찬호가 국내복귀를 선언한다고 해도, 내년 시즌 중반 드래프트를 신청한다면 2011년이 아니라 2012년부터 한화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서게 된다는 점이다. 내년이면 38세인 박찬호가 국내 복귀를 위해 1년을 통째로 쉰다는 건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방법이 없진 않다.
KBO 이상일 사무총장은 “‘한국프로야구 발전’이란 대의명분에 나머지 7개 구단이 동의하고, 총재가 꼭 구제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판단한다면 박찬호에 한해 신인드래프트에 상관없이 당장 뛸 수 있게 ‘특별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화를 제외한 7개 구단이 과연 ‘특별조치’에 얼마나 동의해줄지는 의문”이라고 말해 박찬호 특별법이 난항을 겪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모 구단 사장은 “박찬호 특별법은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다”며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정상적인 순서를 밟아 입단하는 게 좋다”는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SK 신영철 사장은 구단 이익과 상관없이 박찬호의 한화 입단을 “한국야구 발전”이란 거시적인 측면에서 수용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