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12월 유세 중인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 |
여의도 정치권이 검찰발 사정태풍의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2007년 대선자금 뇌관이 폭발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대기업의 비자금 용처를 철저히 파헤칠 경우 비자금 중 일부가 2007년 대선자금으로 유입됐을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검찰 일각에서는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50억 원이 이명박 캠프로 유입됐다는 소문이 나도는가 하면 이명박 대통령의 절친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검찰에 소환될 경우 대선자금 문제가 핫이슈로 재부상할 것이란 관측도 나돌고 있다. 과연 서슬 퍼런 검찰의 사정칼날이 살아있는 권력까지 겨냥할 수 있을까.
“살아있는 권력도 범죄 혐의가 있으면 단죄할 것이다.” 최근 기자와 만난 대검 고위관계자가 던진 일성이다. 이번 대기업 사정 칼날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태로 충격과 함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검찰이 작심하고 꺼내든 대대적인 사정몰이라는 점에서 검찰 내부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발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검찰은 대검 중수부까지 동원해 대기업 사정 수사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한화 태광 C&그룹 등에 대한 전 방위적 수사가 진행되고 있고, 국세청은 롯데에 이어 제일기획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여기에 대기업 서너 곳도 검찰의 사정 타깃으로 거론되고 있다. 사정당국의 거침없는 칼날은 결국 정·관계를 겨냥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검찰 수사의 초점이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 및 정·관계 로비 의혹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전·현 정권 실세를 비롯해 여야를 망라한 전·현직 중진들과 현역의원 10여 명이 ‘사정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검찰의 고강도 사정 드라이브가 정·관계를 넘어 살아있는 권력이 직접 연관된 2007년 대선자금 뇌관을 건드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과거 대선정국 때 대기업들은 수천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해 여야 대선캠프에 보험용으로 거액의 자금을 불법으로 지원해 온 전례가 적지 않았다. 실제로 2002년 대선 때 대기업들이 여야 대선캠프에 불법으로 지원한 돈은 밝혀진 액수만 1000억 원대에 달했다. 2004년 검찰이 발표한 불법 대선자금 수사 내역에 따르면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은 4대그룹으로부터 거둬들인 699억 원을 포함해 모두 823억 2000만 원을 모금했다. 민주당 또한 113억 8700만 원을 불법 조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4년 불법 대선자금 사건으로 재계 총수들은 검찰에 줄소환됐고, 정치권 또한 친노인사들을 비롯해 여야 의원 10여 명과 관련자 수십 명이 사법처리되는 등 격랑에 휩싸인 바 있다.
정치권과 재계가 혹독한 시련을 치르고 3년이 지난 2007년 또 다시 대선정국은 도래했다. 대선을 무사히 치르고 이명박 정권이 집권 후반기로 접어들었지만 2007년 대선자금 X파일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2007년 대선정국 때도 대기업들이 여야 캠프에 보험용 자금을 은밀히 지원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2004년 불법 대선자금 사태를 감안할 때 액수는 다소 줄어들었을 개연성이 높지만 검은 돈의 전달 수법이나 유입 과정은 더욱 주도면밀하게 진행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실제로 현 정부 출범 후 야권 일각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자금 의혹이 몇 차례 불거지기도 했다. 2009년 11월 이 대통령의 사돈기업인 효성그룹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던 송영길 인천시장은 국회대정부질문을 통해 “2007년 유력 대통령 후보의 친인척 비자금 수사라면 비자금이 선거자금으로도 들어갈 개연성이 있는 매우 민감한 사안인데 검찰이 BBK 사건 부담 때문에 효성 수사를 아예 대선 이후로 미뤘다”며 효성 비자금의 이명박 캠프 유입 의혹을 제기했었다.
이 대통령의 친구이자 최측근인 천신일 회장도 대선자금 뇌관으로 부상한 바 있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캠프 후원회장을 맡았던 천 회장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7억 원과 3억 원씩 모두 10억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이 돈이 대선자금으로 유입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산 바 있다. 천 회장은 또 2007년 이 대통령의 특별당비 30억 원을 대납하고, 주식을 매각해 306억 원을 마련하는 등 대선자금으로 의심할 만한 자금거래 정황이 포착돼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천 회장에 대한 수사를 치일피일 미루다 지난 2월에서야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
천 회장에 대한 ‘무혐의’ 처분으로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2007년 대선자금 의혹은 검찰이 대기업을 겨냥한 대대적인 사정 칼날을 꺼내들면서 다시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1년 4개월여 만에 사정 메스를 꺼내든 대검 중수부가 대기업 비자금 사건에 화력을 집중할 경우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대형 비자금 사건이 터질 수 있고, 그 불똥이 2007년 대선자금 사건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10월 28일 천 회장 사무실을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하는 등 심상치 않은 기류마저 감지되고 있다. 검찰은 천 회장이 임천공업으로부터 40억 원대 금품을 수수한 혐의에 대해 이수우 임천공업 대표(구속)의 진술과 관련 물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 8월 19일께 출국해 두 달 이상 외국에 체류하고 있는 천 회장에 대해 사실상 사법처리 수순에 돌입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 2007년 유세 중인 정동영 민주당 대선후보. |
사정당국 일각에서는 신한금융그룹 경영층의 내분사태가 현 정권 대선자금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10월 22일 국회 정무위 국감에서 신건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검찰 수사 등으로 드러난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차명계좌 50억 원과 관련해 “50억 원은 차명계좌 1000여 개 중 일부를 돌려 재일교포와 신한은행 직원 등 20여 명의 계좌를 통해 박연차 회장에게 보낸 것”이라며 “전체적으로는 수백억 원을 상회하는 엄청난 규모의 비자금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우제창 의원은 “상촌회(경북 상주 출신 모임) 회장인 라 회장이 지난 8월 24일 이 모임 회원인 류우익 주중대사를 만났는데 금융실명제 위반이 문제되던 시점”이라며 “류 대사와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 등 상촌회 실세들이 라 회장에 대한 금감원 조사를 무마한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라 회장이 박연차 전 회장에게 건넨 50억 원이 이명박 캠프로 유입됐을 것이란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10월 20일 기자와 만난 민주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라 회장은 2007년 대선 전에 자신의 아들을 태광실업에 취직시켜준 박 전 회장을 통해 이명박 캠프에 대선자금을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라 회장은 박 전 회장에게 50억 원을 송금했고, 박 전 회장은 라 회장이 건네준 50억 원은 그대로 두고 각종 후원금 형태로 총액 50억 원을 만들어 이명박 캠프에 전달하는 일종의 ‘자금세탁’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검찰의 대기업 비자금 수사가 2007년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정동영 캠프의 대선자금을 겨냥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대검 중수부가 활동 재개 첫 작품으로 호남기업인 C&그룹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점은 이런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구정권 실세들을 비롯해 호남권 정치인들 다수가 C&그룹 리스트에 거론되고 있다. 따라서 중수부가 C&그룹의 비자금 용처를 샅샅이 파헤칠 경우 비자금 중 일부가 어떤 식으로든 정동영 캠프로 유입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전·현 정권을 망라하고 여의도 정치권 전체를 메가톤급 폭풍전야로 몰아넣고 검찰의 서슬 퍼런 사정 칼날이 베일에 가린 2007년 대선자금 판도라 상자를 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