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혼의 복서’로 불린 세계챔피언, 그리고 K-1파이터로도 활약한 최용수(38)가 이번에는 프로모터로 변신한다. 오는 12월 18일 시흥시체육관에서 ‘한일 프로복싱 신인대항전(가칭)’을 치르는 것이다. 한국권투위원회(KBC)에 정식으로 프로모터 등록을 하고, 중계방송사 섭외, 스폰서 확보 등 모든 일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다. 또 시흥시 생활체육복싱협회장을 맡기로 했다. 이제 선수가 아닌 ‘복싱 전도사’로 나선 최용수의 근황을 살펴봤다.
선수 시절 최용수는 ‘남벌’ 전문가였다. 일본 원정으로 치른 세계타이틀매치만 5차례나 된다. 이중 일본 선수에게 진 것은 1998년 9월 WBA슈퍼페더급 8차방어전에서 하타케야마에게 판정패한 것이 유일했다. 심지어 한국보다 일본에서 인지도가 더 높아 타이틀을 잃은 후 일본 프로모션에 스카우트돼 재기에 나서기도 했다. 일본회사가 주최하는 이종격투기 대회인 K-1에 데뷔해서도 일본의 영웅 마사토와 일전(TKO패)을 펼쳤다. 이렇게 일본과 인연이 많으니 프로모터로 처음 기획한 것이 ‘한일전’인 것이다.
“축구 야구는 말할 것도 없이 한·일전은 뭐를 해도 다 재미있다고 하잖아요. 프로복싱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프로복싱 역사에서도 한·일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높습니다. 그런데 복싱 인기가 한국에서는 바닥을 치고 있는 반면 아직 일본에서는 많은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골프에도 한·일전이 있듯이, 프로복싱도 한일 국가대항전을 정기적으로 치러야겠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최용수의 한·일 국가대항전’은 명분뿐 아니라 구체적인 기획 내용도 흥미롭고, 또 파격적이다. 대상은 양국의 신인급 선수다. 미래에 한일 양국의 프로복싱을 짊어지고 나갈 유망주를 발굴한다는 목적이 있는 것이다. 체급별로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10명의 선수가 출전해 맞대결을 펼치는 방식이다. 대전료도 파격적이다. 국내에서는 프로복싱 흥행침체로 인해 신인급 선수(4라운드 기준)의 대전료는 고작 40만 원이다. KBC가 정해놓은 액수다. 그런데 최용수는 이번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에게 100만 원씩을 지급하기로 했다. 잘 모르는 사람은 그 액수가 많은 것이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기준치의 250%가 되는 액수다.
최용수는 “프로복싱이 살기 위해서는 링에 서는 선수들의 생활이 좋아져야 합니다. 일단 대전료부터 현실화할 필요가 있지요. 프로모터로는 손해지만 선수 출신으로 선수들이 잘 돼야 복싱이 산다는 생각만큼은 철저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최용수는 이번 대회 개최를 위해 최근 KBC에 프로모터 라이선스 신청을 했다. 최용수와 같은 챔피언 출신은 일정액의 가입금만 내며 라이선스를 받는다. 또 한 스포츠 전문 케이블TV를 찾아가 중계방송을 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8000만 원에 달하는 경비도 직접 뛰며 마련하고 있다.
사실 최용수의 이런 행보는 지난 봄부터 준비됐던 것이다. 지난 4월 최용수는 경기도 시흥시 은행동에 ‘조용히’ 체육관을 열었다. ‘최용수 복싱짐’이다. 이전에 선배에게 이름과 약간의 돈을 빌려줘 최용수 복싱체육관을 연 적이 있지만, 자기 혼자 직접 복싱체육관 경영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용수는 최근 시흥시 생활체육협의회의 복싱 쪽 회장을 맡기로 했다. 체육관을 운영하는 것은 물론이고, 조금이라도 복싱을 알리고 또 힘을 모아 대회를 치르기 위해 대외활동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웬만해서는 처음 보는 사람과 말문을 터지 않는, 내성적인 성격의 최용수로서는 다소 의외의 행동이었다.
“아마추어에서도 2012년 런던올림픽에 여자복싱이 새롭게 추가됐지요. 복싱은 정말 좋은 운동입니다. 건강, 다이어트, 흥미도는 물론이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등 정신적인 면에서도 아주 좋아요. 해 보신 분들은 다 압니다. 최근 보면 엘리트 즉, 프로 쪽은 고사 직전인데, 생활체육 복싱인구는 늘고 있습니다. 복싱 활성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볼 생각입니다.”
고스톱을 쳐도 재미있다고 하는 한·일전. 어떻게 보면 프로복싱에서는 최용수가 이를 개최하는 게 아주 적당해 보인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